[SK 반도체 리빌딩]'수직계열화 정점' SK하이닉스, 최태원 연이어 방문①그룹 편입 11주년, 불황 속 피어난 HBM…흑자전환 임박
김도현 기자공개 2023-12-14 13:08:44
[편집자주]
섬유, 정유, 통신 등으로 사세를 확장해온 SK그룹이 재계 2위로 올라선 건 반도체 덕분이다. 지난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기점으로 수차례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키워온 결과다. 그룹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도 반도체다. SK하이닉스는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가 소재·부품 내재화로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2024년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반도체 육성에 대한 의지가 드러난다. SK그룹의 반도체 수직계열화 현황과 전략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2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단순히 제품을 개발, 판매해왔던 기존 사업 구조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시장 역학의 변화부터 지정학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를 감안해 유연하게 대응해달라."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SK하이닉스 현지법인을 찾아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이 미주사업장을 찾은 건 2년5개월 만으로 올해와 같은 반도체 부진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단행된 임원인사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SK하이닉스는 곽노정 사장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한 데 이어 김주선 GSM(Global Sales & Marketing) 담당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곽 사장을 보좌하게 했다. 세대교체와 차세대 제품 경쟁력 향상을 동시 추진하는 결정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 인수부터 육성까지 '진두지휘'
SK하이닉스 전신인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2011년 SK텔레콤에 인수된 바 있다. 이듬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SK그룹에 편입됐고 SK하이닉스로 다시 태어났다. 2013년 일본 엘피다가 파산하는 등 메모리 치킨게임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도 당시 기준 사상 최대 연매출(약 14조원)을 기록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이는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던 덕분이다.
일련의 과정을 주도한 건 최 회장이다. 일찌감치 SK그룹 총수에 올라선 최 회장은 정유(SK이노베이션), 통신(SK텔레콤)을 이을 '캐시카우'로 반도체를 낙점한 것. 당시 그는 SK하이닉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등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인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을 거친 이석희 전 사장을 영입하고 측근인 박정호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앉히는 등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SK하이닉스의 4개 팹이 들어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찾았고, 이달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로 날아가 ASML 클린룸을 둘러볼 예정이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하는 회사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하반기 들이닥친 반도체 한파로 작년 4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예상보다 길어진 부진 속에서 희망이 있었으니,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주인공이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쌓아 만드는 고부가 메모리다. 인공지능(AI) 수요가 폭발한 가운데 관련 서버를 운용하는 데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보조 수단으로 HBM이 급부상하면서 존재감이 대폭 커진 제품이다.
이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독보적이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을 제치고 4세대 HBM인 'HBM3'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 중이다. 5세대(HBM3E), 6세대(HBM4) 등에서는 경쟁사의 추격이 본격화할 전망이나 SK하이닉스의 우위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대다수다.
서버용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D램, 모바일용 로우파워(LP)DDR5 D램 등에서도 SK하이닉스의 선전이 돋보인다. 일부 제품은 메모리 1위 삼성전자보다 먼저 출시하는 등 기술 경쟁력에서도 차이를 크게 줄였다는 평가다.
아울러 선제적 감산으로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적자 규모가 지속 줄어드는 추세다. 증권가에서는 이르면 올해 4분기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과 낸드플래시 범용제품의 11월 고정거래가격이 전월대비 3.33%, 5.41% 올랐다. 10월에 이은 연속 상승으로 4분기 실적 개선의 신호로 읽힌다.
◇흑자 전환 가시권…내년 회사운영 관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지난 3분기 D램 시장점유율을 삼성전자 38.9%, SK하이닉스 34.3%로 추산했다. 양사 격차가 5% 미만인 것은 사상 처음이다. 만년 2인자 신세였던 SK하이닉스의 반란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HBM, DDR5 등이 올해 4분기를 거쳐 내년 본격 개화할 예정이어서 SK하이닉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2023년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면 2024년에는 이를 현실화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우선 박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게 되면서 곽 사장 중심으로 회사 재편이 이뤄질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개편에서 'AI 인프라' 조직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AI 인프라 산하에는 HBM 관련 역량과 기능을 결집한 'HBM 비즈니스'가 신설되고 기존 GSM 조직도 함께 편제됐다. 김 사장이 AI 인프라 담당으로 선임됐다.
또한 AI 인프라 산하에 'AI&넥스트' 조직이 신설돼 차세대 HBM 등 AI 시대 기술 발전에 따라 파생되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 및 개척하는 패스파인딩 업무를 주도하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여유롭지 못한 재무상태에도 HBM 생산능력(캐파) 확장을 추진하는 등 관련 투자를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본사이자 최대 캐파를 갖춘 이천사업장이 꽉 찬 만큼 청주사업장에 실리콘관통전극(TSV) 등 HBM 후공정 라인을 추가할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짓고 있는 M15X 팹 등이 대상이다. 추후 M17 팹(청주), 용인 신규 팹 등에도 HBM 시설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D램 의존도를 낮춰줄 낸드플래시 사업은 아픈손가락이다. D램처럼 확실한 '킬러 아이템'이 부재한 데다, 인텔로부터 인수한 솔리다임이 부진에서 벗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 탓이다. 일단 노종원 사장을 앉혀 급한 불을 끄게 했다. 중국 장비 반입 리스크가 일부 해소되면서, 솔리다임의 다롄 낸드 공장과 자체 우시 D램 공장 가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낸드와 솔루션 사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N-S 커미티'도 신설했다. 낸드 및 솔루션의 컨트롤 타워로써 제품 및 관련 프로젝트의 수익성과 자원 활용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이달 20일까지 SK하이닉스는 경력직원도 모집한다. D램 설계, 패키지 개발, 품질보증, 상품기획 등 총 28개 직무 인력을 충원하기 위함이다. 업황 회복에 맞춘 인재 영입으로 고객 대응력을 향상하겠다는 의지다.
한편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직계열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C 등은 조단위 투자, 중간지주 역할 수행 등을 통해 SK하이닉스를 지원하는 동시에 외부로도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전력반도체 등 메모리 영역 이외 영토 확장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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