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비즈니스 2.0]쉰 목소리의 갤러리스트 "수십년 뒤를 보는 선투자 사명"⑥아트사이드갤러리 2세 이혜미 대표 "작품 안목에 대한 책임, 힘들지만 기대되는 일"
서은내 기자공개 2024-03-11 08:18:22
[편집자주]
화랑업계가 2세 경영을 통해 새로운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부모 세대 갤러리스트들이 이뤄온 고미술, 근대미술 중심의 비즈니스에서 탈피, 현대미술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컬렉션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경영 전면에 나선 3040의 젊은 갤러리스트들은 디지털, 글로벌 등을 키워드로 정보력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더벨은 2세 갤러리스트들을 인터뷰하고 한국 미술 유통업계 비즈니스의 새 모델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5일 16: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작가들은 공간이 주는 아우라에 의미를 많이 두며 자신이 피땀흘린 작업이 전시되는 공간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한다. 아트사이드갤러리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들이 전시하고 싶어하는 갤러리가 되고 싶다."아트사이드갤러리가 마더화랑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수십년 뒤를 내다본 선투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혜미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39)는 더벨과의 인터뷰에서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신진작가들의 그림에 투자하는 것이 궁극적인 갤러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트사이드갤러리를 설립한 이동재 사장의 큰 딸이다. 이 대표는 "부친의 갤러리 운영은 이윤을 남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힘들어보였다"며 "단기적으로 이익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아버지의 방식이 옳았다는 걸 깨닫는다"라고 되뇌었다.
이 대표는 미국 시카고 미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상당한 창의성을 요구받고 오랜 외로움에 시달려야하는 작가의 길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느끼던 중 미국의 한 갤러리에서 인턴을 경험했고 그 일이 적성에 맞았다고 한다. 2007년 중국 북경에 진출한 부친의 갤러리에서 대학 졸업 전부터 통역 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 16년째 이어졌다.
최근 이혜미 대표는 서울대 경영대학원 EMBA에 진학했다. 3년 전 아트사이드갤러리는 법인 전환도 이뤘다. 갤러리 경영의 체계를 갖춰가는 모습이다. 그는 "미술 경영은 일반 기업체 경영과는 다르다"며 "갤러리스트로서 믿음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표는 부친의 길을 따라 지금도 신진 작가들의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는 "느리게 가는 것 같아도 어느순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해주고 있고 수십년씩 함께한 좋은 작가들이 옆에 남아있게 되는 것 같다"며 "사실 30명 중 한두명만 성공해도 엄청난 것인데 그만큼 힘들지만 기대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부친인 이동재 대표는 이호재 가나아트갤러리 회장의 동생으로 오랜기간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일하다 1999년 아트사이드갤러리를 설립했다. 이혜미 대표와 이정용 현 가나아트갤러리 대표는 사촌지간이다.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동생인 박영덕 사장이 독립해 만든 박영덕화랑(현 BHAK갤러리)과 갤러리현대의 관계와 비견된다.
아트사이드갤러리는 한국 미술계에서 중국 미술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크게 주목을 받은 갤러리다. 이 대표는 "아버지는 매주 인사동에서 시인들을 불러 공연, 영화 기획을 하는 등 문화예술 자체를 깊이 사랑하는 분"이라며 "아웃사이더 느낌이 들기도 했던 우리 갤러리를 일컬어 작가 선생님들은 '진짜 미술관 같은 갤러리'라 평했다"고 말했다.
부친의 갤러리 사업은 줄곧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나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대표는 "미디어아트나 설치 작업은 판매가 잘 안된다"며 "그런 갤러리 일이 너무 고되보여 다른 방식을 추구하고 싶었는데 되돌아보니 어느새 나도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 호기심 부르는 이미지 + 공감 주는 작품에 컬렉터 관심
이 대표는 아트페어에 나갈 때마다 항상 목이 쉬어서 돌아오곤 한다. 자신이 '픽'한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터들에게 끊임없이 설명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아트사이드갤러리의 방향은 중소화랑으로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를 "작가와 함께 발전해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트사이드의 전속인 최수인 작가는 이 대표와 인연이 깊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갤러리 사업에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만난 작가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였다. 이 대표는 "최수인 작가 작품이 처음 팔렸을 때 손님 앞에서 울었다"며 "'이것봐, 나랑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잖아'란 생각에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수인 작가의 작품 <프렌즈>에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에 관한 스토리가 담겨있다. 친구는 물론 가까운 가족, 배우자와의 관계까지도 어느것 하나 쉬운 관계란 없다. 관계에서 비롯된 마음 속 상처들이 자연히 캔버스에 옮겨졌다. 이는 그의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신기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표는 "최수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받고 공감을 통해 에너지를 받는다"며 "구름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그 옆에는 열이 뻗치는 형상이 나타나있고 동시에 구름이 날 외롭지 않게 감싸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그림이란 처음 봤을 때 이미지에서부터 호기심이 들고, 큐레이터에게 설명을 들었을 때, 컬렉터가 더 깊은 공감에 빠질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최근 아트사이드갤러리는 기존 사무실로 사용하던 3층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바꿨다. 아트사이드갤러리의 통창 너머로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이 모두 펼쳐져보이는 곳이다. 이혜미 대표는 3층 공간을 보다 실험적인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오는 15일 오픈을 앞두고 전속 최진욱 작가가 이곳에서 작업 중이며 해당 작품을 그대로 전시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2세대 갤러리스트로서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눈치를 볼 때도 많았다"며 "3층 공간은 눈치보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또 "비상업적 작가의 그림도 다양하게 선보여 컬렉터들의 안목을 더 높여주고 싶다"며 "설치 작업을 포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작가들이 인정해주는 화랑으로 자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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