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Showbiz]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넥스트 K무비’현지 협업 확대, 할리우드 제작역량 내재화…국경·언어 뛰어넘는다
고진영 기자공개 2024-03-11 08:19:18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6일 17: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의 성장엔 개척자(Pioneer)가 필요하다. 한류 문화에서 CJ그룹이 이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을 말하긴 힘들다.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었고 이제껏 300편이 넘는 영화에 수조원을 투자했다. 그 중에서도 이미경 부회장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진정한 영화광(true film fanatic)이며, 한국 TV나 영화산업에서 그가 관여하지 않는 곳은 드물다.” BBC가 이 부회장을 두고 했던 묘사인데 과장으로 보기 어렵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다시 주목받는 이 부회장의 다음 비전은 뭘까.
◇'비저너리' 이미경 부회장
이 부회장은 미국 대중문화 업계에서 꾸준히 인정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영화매체 ‘할리우드 리포터’가 뽑은 ‘엔터테인먼트 여성 파워 100인’에 3년 연속 선정됐다. 아시아인으론 처음이다. 또 미국 ‘버라이어티’가 발표하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리더 500인(버라이어티 500)에도 4년 내리 포함됐다.
브루스 파이스너 국제TV예술과학아카데미(IATAS) 회장은 2022년 이 부회장에게 국제 에미상 공로상을 수여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탁월한 사업적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류라는 세계적인 현상을 끊임없이 주도해 온 비저너리 리더(visionary leader)”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달엔 유명 매거진 배니티페어(Vanity Fair)가 ‘2024 할리우드 이슈’에 이 부회장의 이름을 올려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비저너리(visionary)로 꼽았다. 배니티페어는 이 부회장을 ‘대모(godmother)’라 칭하며 “올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총괄 프로듀서로 역량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 <헤어질 결심>, <브로커>, <패스트 라이브즈>등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 등 영화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이중 <기생충>은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및 감독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수상했고, A24와 공동 투자배급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이 부회장의 물밑 노력이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오스카의 '진짜 가치'는
오스카 노미네이션이나 수상기록은 왜 중요할까.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기 위한 캠페인에는 보통 1000만달러에서 3000만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무게 4kg이 채 안되는 조각상치곤 엄청난 몸값이다. 수상을 위한 ‘오스카 레이스(oscar race)’가 1년 내내 진행될 정도로 경쟁도 치열하다.
물론 오스카상엔 상업적 이득이 따른다. 오스카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할 경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시장조사전문기관 IBISWorld 연구에 의하면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영화 수익이 22% 증가했다. 그래서 시상식 시즌에 맞추기 위해 영화 개봉을 미루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가령 영화 <문라이트>는 북미 티켓 수익이 22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2017년 작품상을 받은 이후 주말에 230만달러를 더 벌어들였다.
하지만 오스카의 진짜 가치는 측정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격적으로 인재를 구하는 스튜디오들이 작품 노미네이션이나 수상에 성공할 경우 제작자나 감독, 배우를 섭외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훨씬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네임밸류를 쌓으려는 신규 플레이어들일수록 오스카가 주는 인정의 ‘뱃지’는 더 절실히 추종된다.
A24의 사례를 보자. 원래 작은 인디 스튜디오에 불과했지만 첫 제작 영화 <문라이트>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으면서 엄청난 도약을 했다. 이제 다윗이 아닌 골리앗이다. 지난해엔 A24의
또 미국과 캐나다에서 <기생충> 배급을 전담한 신생기업 네온(Neon) 역시 오스카 이후 입지가 달라졌다. 할리우드 입지를 확대하려는 CJ ENM 입장에서 아카데미의 인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K무비' 방향성…할리우드 제작역량 내재화
CJ ENM은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현지 제작사와 협업하는 형태의 새로운 한국영화를 제시했다. 기존 한국영화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콘텐츠 또는 리메이크 권리를 그냥 팔거나, 글로벌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공개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한 단계 도약했다고 볼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현지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통해 K무비의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면서, 위기에 봉착한 한국 영화계가 나아가야 할 'Next K무비'의 방향성에 대해 인사이트를 제시했다고 본다”며 “'K무비'를 국경이나 언어에 한정되지 않는 새로운 창작물로 재정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된 <운명을 읽는 기계(The Big Door Prize)>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CJ ENM의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이 미국 스카이댄스 미디어(Skydance Media)와 손잡고 제작했다. 국내 제작사가 미국 현지 드라마를 직접 만든 최초 사례다.
이 시리즈는 애플TV+에서 101개국의 TOP10 차트에 진입하는 등 좋은 인기를 보인 덕분에 시즌2도 공개될 예정이다. 제작에는 스카이댄스 미디어의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CJ ENM은 앞으로도 미국 현지 스튜디오들과 협업하면서 할리우드의 제작 역량을 내재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궁극적으론 단독 제작이 가능하기를 기대 중이다. 사업 진행엔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엔터산업은 '피플 비즈니스'
이 부회장은 오랫동안 미국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각계각층과 네트워크를 쌓아왔다. 평소에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피플 비즈니스(People Business)’라고 강조한다고 알려졌다. 감독이나 배우, 작가 등 관련 크리에이터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이 부회장은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 IATAS 이사진, 미국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 이사진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할리우드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교육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다.
그는 2월부터 5월까지 LA 해머뮤지엄에서 열리는 한국 미술 전시회(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를 위해 한국 아티스트를 초청, 오프닝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다. 문화와 예술의 연결을 통해 전 세계 문화의 메인스트림에서 한류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CJ ENM 관계자는 "지난 20여 년간 K콘텐츠와 크리에이터를 전 세계에 알리고 경쟁력을 증명하고자 했는데 <기생충>과 <패스트 라이브즈> 등으로 이 부회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며 "세계적으로 K콘텐츠를 주목하고 있는 지금 K콘텐츠 지평을 확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지속가능한 한류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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