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4월 05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왕위를 둔 골육상쟁은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재계의 성장과정에서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가족분쟁을 목도했다. 부자, 형제, 사촌 등 가족도 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최근 한미약품그룹의 오너가 분쟁이 사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흔한 부자나 형제갈등이 아닌 모자갈등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딸 편 드는 엄마 모습이 또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슈가 재계에서 특별하게 각인되는 건 상속세 문제의 파괴력을 분명하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간의 가족분쟁이 승계경쟁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한미 케이스는 상속세에서 촉발된 비극이었다.
갑작스러운 창업주 타계, 준비되지 않은 지분 승계, 구체화 되지 않은 후계자, 현금여력 없는 오너일가. 재계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총체가 바로 이번 한미 사태다.
누구나 불로불사를 꿈꾸지만 누구도 이룰 수 없는 허상, 승계는 그 비밀스러운 욕망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회장님께 누가 감히 승계를 논할까. 승계라는 의미에 내포된 불편함이 사실 상속세율의 벽보다도 더 높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그 파급이 상당히 강력하다. 부모 자식, 형제가 등돌리며 일가가 파탄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한 기업의 존폐, 더 나아가 산업이 흔들리기도 한다는 건 엄중하게 봐야 한다. 누가 정의고 누가 불의인지도 모를 정도의 격렬한 싸움에서 결국 피해는 주주는 물론 그 이상으로까지 번진다.
석달이나 격렬하게 전략을 다퉜고 그 승패가 표결로 가름됐지만 여전히 한미가 나아갈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5400억원의 상속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한미의 미래보다도 오너의 앞길에 대중의 관심은 더 쏠려있다.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던 사모펀드 매각 이슈는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더 진전된 구체적 얘기들이 오간다. 이 수순이면 매각 말고는 사실 답이 없다는 회의감도 밀려온다.
창업주 '임성기 정신'은 흩어지고 이젠 한미의 생존마저도 가능할 지 불확실하다. 표대결로 누군가의 손을 들어준 건 '수습'을 기대하는 심리였지만 지금으로선 한미 이슈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태가 비단 한미만의 문제일까. 이 지점에 명쾌하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없다. 기업을 하는 오너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승계는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이슈, 건들면 안되는 금기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번 한미 사태를 많은 회장님들이 유의주시하고 있다는 전언이 흘러나온다. 본인 세대에 이룬 모든 것들이 단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승계가 단지 기업의 대물림, 부의 영속성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직시했으면 한다. 승계를 고민하고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경영상의 의사결정이라는 점을 지금 우리는 아주 큰 출혈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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