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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벤처·대기업 'M&A' 동상이몽 [thebell desk]

최은진 제약바이오부 차장공개 2023-09-20 13:00:49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9일 07: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수합병(M&A) 딜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갑을관계가 존재한다. 사고 싶어 몸달아 있다던가 팔고 싶어 애를 쓰는, 팽팽한 긴장이 균형을 이루며 딜이 이뤄진다. 누가 얼마나 안달난 '티'를 내느냐 혹은 내지 않느냐가 적정가격을 결정하고 협상의 우위를 점한다.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각자 주판을 튕기면서 적절한 표정관리를 한다.

최근 '바이오기술'을 겨냥한 대기업들의 M&A 물밑 작업이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딜이 이뤄지지 않는 사례들이 대부분인 건 이 '표정관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자금력을 쥔 대기업들은 K-바이오의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며 지분투자부터 M&A까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단순히 '오픈이노베이션'이나 '신약의 상업화' 관점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어떻게 사업을 하고 돈을 버는 지 아는 대기업들은 바이오벤처가 보유한 기술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타산이 선 상황이다.

문제는 M&A를 대하는 바이오벤처의 태도다. 금융기법으로써의 M&A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 회사를 팔아야 하는가, 적정한 수준의 가격인가 등 파는 입장에서 당연히 가져야 할 기준점에 분명한 원칙이 없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몇달 전 깨진 오리온그룹의 알테오젠 인수 딜이 그랬다. 일반에 공개된 적 없지만 SK그룹의 상장 바이오텍 L사에 대한 인수 딜, 롯데그룹의 ADC 비상장 벤처에 대한 유의미한 투자 딜도 결과적으로 같은 이유로 어그러졌다. 이들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평가를 내렸다. "대체 팔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기꺼이 딜에 나섰던 벤처들이 갑자기 '기술탈취' 등을 우려하며 딜 중단을 선언하는가 하면 M&A를 기회삼아 한 몫 챙기려는 내부 인력을 '관리'하지 못해 불가피 하게 딜이 종결되기도 했다. 벤처입장에선 표정관리에 능숙한 대기업의 태도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한평생을 바친 연구물에 돈의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M&A 논리가 상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M&A는 빼앗는 게 아닌 거래다. 대기업들이 해당 바이오텍을 인수하려 했던 건 한단계 더 도약할 충분한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다. 반대로 벤처는 대기업과 섞이며 자금력을 바탕으로 퀀텀점프를 하거나 지속가능한 기업모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설립 10~20년 된 1세대 바이오텍들이 언제까지 소액주주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버틸 수 있을까. 기업의 영속성을 고려하면 당장 신약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한 M&A는 가야만 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사고싶다. 바이오시장에 뛰어들 무기가 필요하고 K-바이오가 그 대안이 된다는 걸 안다. 그러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지 조차 알 지 못하는 벤처들과는 딜을 논하기 힘들다.

신약개발의 냉혹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고싶어하는 대기업만 마냥 '을'일 순 없다. 어쩌면 바이오벤처가 M&A에 임하는 태도와 표정관리를 고민하는 것부터가 K-바이오가 한단계 더 도약하는 시작점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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