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해운사 사이클 점검]SM상선, 캐시카우와 원양선사 사이의 고민⑧'집안의 가장'된 SM상선, 노후 선단 교체는 아직…원양선사 정체성은 확립
허인혜 기자공개 2024-05-30 10:50:18
[편집자주]
외부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이 어디 있겠느냐만 해운업은 특히 파고에 크게 휩쓸리는 업종이다. 호황기와 불황기라는 거대한 사이클 속 유가 흐름과 국제 정세 등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해운사의 명운은 호황기에 얼마나 곳간을 쌓고 불황기를 어떻게 잘 헤쳐나가느냐에 달렸다. 선제 대응은 기초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 법, 중견 해운사들이 불황기 대응에 더 고심하는 이유다. 해운업 불황기 초입에 들어선 지금 더벨이 중견 해운사들의 현황과 사이클 대응 방안, 앞으로를 점검해 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8일 15: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룹의 캐시카우'라는 수식어는 기업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다른 식구들을 챙겨줘야할 입장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열사 지원 빈도와 금액을 보면 SM상선이 그런 경우다. 스스로의 건전성에 문제는 없지만 미래자산 투자비용을 충분히 쌓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문제는 SM상선이 꾸준히 새 선박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 선사라는 점이다. 운항 중인 대부분의 배가 2000년대 생산으로 다른 선사 대비 낙후돼 있다.
SM그룹 인수 후 유의미한 유형자산 취득액이 보이는 때는 2021년 한해 뿐이다. 해운업 불황기가 찾아온 데다 자금대여로 책임지고 있는 계열사들이 있어 앞으로도 신규 선박 발주가 활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선사와의 협업 등이 활로다.
◇번 만큼 떼주는 SM그룹의 가장
SM상선의 지난해는 한진해운에서 SM그룹으로 넘어왔던 2016년만큼 파란만장했다. 불황기에 더해 HMM 매수 도전 불발과 그에 따른 우오현 회장의 SM상선 매각 가능성 언급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SM상선 등 해운 부문이 SM그룹의 캐시카우가 된 만큼 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최근 SM그룹을 둘러싼 잡음도 SM상선의 현금 창출력이 전제 조건이다.
SM상선이 다른 해운사들 만큼 현금을 조단위로 쌓지는 못한 가장 큰 이유로 계열사 지원이 꼽힌다. 스스로의 건전성을 헤칠 만큼 살을 떼주지는 않았지만 탄탄한 건전성 외에 미래 투자비용을 두둑히 챙기지는 못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2022년을 거치는 동안 HMM과 고려해운, 장금상선은 역대 최대 규모의 현금량을 보유하게 됐고 SM상선은 번 만큼 많은 돈이 빠져 나갔다.
SM상선의 계열사 지원은 지난해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SM상선의 특수관계인에 대한자금대여 공시를 보면 올해만 7차례, 지난해에는 19차례 자금대여가 이뤄졌다. 2021~2022년도 활발하게 계열사를 지원했다. 새로운 자금 대여 외에도 대여기간 연장 등이 섞여있다. 계열사 대여금 총액은 팬데믹 기간인 2022년 7401억원으로 불었다. 2021년 3500억원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당분간 이 역할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기간인 2022년 SM그룹 내 계열사들의 매출액 순위를 보면 가장 역할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SM상선과 함께 그룹 내 실적 2위로 캐시카우 역할을 맡은 대한해운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5900억원, 1130억원 수준이다.
◇2000년대 선박 대부분…유형자산 취득 소극적
SM그룹의 중심축이라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그룹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핵심 계열사지만 SM상선의 본질은 선사고 선사는 꾸준히 신조선박을 발주해 선단을 교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SM상선의 경우 중견 해운사 중 유일하게 원양선사로 분류되다보니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유형자산 투자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SM상선의 선박 노후화는 개선점으로 꼽힌다. SM상선이 홈페이지로 공개한 선대 현황과 선박 트래킹 웹페이지인 베셀 파인더(vesselfinder)에 따르면 SM 칭다오만 유일하게 2010년 제작됐고 다른 배들은 모두 2000년대 건조됐다. 현재 미국 시애틀 항구로 향하고 있는 SM 뭄바이는 2009년 건조됐다. 그외 대부분의 선박이 2006~2007년 탄생했다.
다른 중견 선사들은 2020년대 선박을 이미 갖춘 데다 신조선박 발주에도 한창이다. 최근 투자가 활발했던 고려해운은 리스선이 아닌 자사선만으로도 2010년대 이후 선박을 6척 갖췄고 이중 일부는 2020년대 지었다. 장금상선도 2020년대 적어도 4척의 신조선박을 발주해 받았다.
기업공개(IPO) 추진 당시 발표한 자금 투자 계획을 보면 SM상선도 단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M상선은 2024년까지 보유 선박을 총 26척까지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IPO 자금을 통해 신조선 8척을 추가 발주한다는 내용이다. 기업공개가 미뤄지며 계획대로 되지는 못했다.
SM그룹 인수 후 유형자산 취득 규모가 눈에 띄는 건 2021년 한해 뿐이다. 2021년 유형자산 취득을 위해 3700억원을 집행한 바 있다. 선박에 3000억원, 컨테이너에 700억원을 썼다. 지난해부터는 현금 창출력이 하락하며 선박 등을 포함한 유형자산 취득 규모가 감소세다. 2022년 208억원을 유형자산 취득에 썼지만 지난해에는 52억원만 지출했다. 규모로 보면 선박을 발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HMM 협업·미주 사업 확대는 활로
다만 원양선사로의 정체성은 굳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HMM과의 미주항로 협력이다. 미주 노선에서 화물을 적재하는 선박 내 공간인 선복을 공유하기로 했다. 최근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에 각사의 아시아~미주 서안 노선 간 선복 공유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선복 공유 대상은 HMM의 PSX 노선(상하이~부산~로스앤젤레스~오클랜드)과 SM상선의 CPX 노선(칭다오~상하이~부산~롱비치~포틀랜드)다. 이르면 오는 6월부터 양사가 선복 공유를 시작한다. 글로벌 해운동맹이 와해·재편되는 상황에서 국내 원양선사가 맞손을 잡게 됐다.
선박 서비스는 아니지만 미주 지역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주 서안과 내륙 철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J대한통운과 함께 북미 육상물류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도 국내 해운사로서는 독특한 전략이다. '리퍼 라운드 트립 서비스·트럭킹'(Reefer Round-Trip&Trucking)을 활용해 선박이 해운물류를, 대형화물차가 내륙운송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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