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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신탁사 수난시대

김지원 기자공개 2024-06-11 07:37:53

이 기사는 2024년 06월 10일 07: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부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 평가기준 손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처음 내놨던 평가기준의 현실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업계 의견을 수렴한 후 조만간 최종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부실 사업장 정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시행사와 시공사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기존 사업장 관리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PF 대출 기준이 까다로워진 탓에 대규모 신규 개발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고민스러운 건 신탁사들도 매한가지다. PF 사업장이 있어야 그에 대한 '신탁(信託)'업을 수행할 수 있는데 일감 자체가 없다. 올해 1분기 신탁사들의 분기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책임준공형 사업 수주는 전무한 수준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탁사들에게 쏠쏠한 수익을 안겨줬던 상품이지만 부실 건설사들이 늘어나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 틈을 타 건설공제조합은 책임준공 보증상품을 새로 내놨다.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건설사의 기준을 시공능력평가순위 100위 이내, 회사채 등급 BBB+ 이상 등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신탁사의 기존 상품과 영역이 완전히 겹치진 않는다. 다만 조합이 상품 범위와 규모를 차차 넓힐 경우 시장 내 신탁사들의 파이는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벌여놓은 사업장들도 신탁사들의 골칫덩이다. 보증 범위와 기한 등을 놓고 대주단, 시공사와의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리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아직 관련 판례가 많지 않아 책임소재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패소할 경우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작은 관리신탁과 담보신탁 등 비토지신탁을 통해 수익을 메꿔본다지만, 박리다매 전략도 한계가 있다. 수수료가 차입형 토지신탁이나 책임준공형 토지신탁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해당 상품만으로 이전 수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몇몇 신탁사들의 경우 일찌감치 리츠를 통한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해 운영 수수료를 확보하고는 있지만 이는 전체 신탁사 중 일부에 불과하다. 리츠를 통해 물류센터, 오피스와 같은 실물부동산을 들고 있는 곳들도 제법 있으나 이 경우 운영사와 경쟁을 해야 한다.

신탁사 실무진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봐도 썩 명쾌한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힘든 시기가 길어지면 시장에서 신탁사가 예전의 자리를 되찾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 있었다.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신탁사들이 기존 사업장의 리스크 관리와 신규 먹거리 발굴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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