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6월 14일 07시0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전 오랜만에 한 IT 창업가를 만났다. 20대 시절을 창업한 회사에 꼬박 바친 그는 이제 사업체를 어엿한 중견규모로 키워냈다.한 회사의 대표이지만 기술과 혁신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늘 눈을 반짝이며 격없이 열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얼굴에서 창업 당시 보였던 어린 티가 사라졌음에도 야심에 찬 대학생처럼 보일 정도였다.
1년 만에 만난 그와의 대화에서는 아직도 열정이 보였지만 지친 기색도 함께 느껴졌다. 그는 숨기지 않고 "사실 조금은 지쳤다"고 말했다.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지치게 했지만 그중 하나가 '복장'이라는 점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그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사업을 키워가는 데서 보람을 느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장을 차려입고 불려 나가는 일이 더 많아져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을 해야 할 시간에 복장을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의 상황이 안타까운 듯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더는 그의 아이디어를 볼 수 없는 건 아닐지 염려됐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유독 편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여름에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미팅에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프리한 옷차림은 누군가에게 불편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복장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인 만큼 때와 장소에 맞춘 의복을 갖춰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대로 창업가 중 일부는 이런 비판을 "고리타분하다"고 표현한다. 산업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복장에 대한 전통과 신생산업의 간극은 아직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와 안드로이드의 일화가 떠오른다. 지금은 전세계 과반에 가까운 스마트폰 OS 점유율을 차지한 안드로이드도 직원 8명의 창업 초기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이들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을 인수해 줄 대기업을 찾았다. 삼성전자도 만났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의 작은 팀 규모를 이유로 인수를 거절했다고 알려졌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앤디 루빈 안드로이드 CEO의 복장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는 비하인드도 전해진다. 루빈은 그 날 청바지를 입고 미팅에 참여했다고 한다. 결국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돼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오래전부터 의상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편한 복장은 자유로운 아이디어 개진, 무궁한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 등 자신들의 이상향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닐까.
물론 때에 따라선 자리에 맞는 복장을 갖춰야 하지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옷차림을 따지다 창업가의 열정은 꺼지고 전통기업은 혁신을 놓치는 사태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혁신의 핵심과 동력은 옷이 아닌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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