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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심사조직 집중해부]'흐릿해진' 거래소-금감원 업무분담, 틈바구니 낀 '모험자본'⑤20년 이상 이어진 '시장 주도' 원칙, 지난해 이후 약화…증권신고서 '3회 이상' 정정 폭증

안준호 기자공개 2024-06-26 07:31:55

[편집자주]

거래소의 꽃'으로도 불리는 상장심사부. 때론 모험자본 상장촉진을 위한 개척자가 되기도 했다가, 자격 미달 기업들의 시장 입성을 엄격히 제한하는 포청천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IPO 허들을 넘으려는 자들에겐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다.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은 상장심사 키맨 변화, 심사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더벨은 거래소의 상장심사 조직의 대내외 위상 변화 양상을 짚어보고, 조직 변천사, 주요 키맨 이동 현황 등을 다각도에서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21일 15: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거래소가 상장 심사 권한을 오롯이 행사한 것은 2000년 이후다. 과거 금융감독원이 심사 권한을 거래소와 증권업협회에 넘기며 본격적인 시장 주도 상장이 시작됐다. 거래소-금감원 간 역할 분담 역시 상장(예비심사)-기업공개(공모 증권신고서)로 나뉘어졌다.

명확했던 두 주체 간의 업무 영역은 최근 들어 흐려지고 있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검토 과정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거래소 상장예비심사 문턱도 덩달아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심사 창구를 일원화했던 취지를 되새겨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비상장-코스닥-코스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00년 시장 주도 심사 체계 정립…'상장은 거래소, 공모는 금감원'

한국거래소에 상장 심사 권한이 넘어온 것은 지난 2000년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공시감독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신규 상장·등록에 대한 심사를 거래소와 협회로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증권신고서 심사 업무도 대폭 간소화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당시에도 기업공개(공모)와 상장(등록) 과정은 분리되어 있었다. 다만 요건이 동일해 사실상 금융당국 승인이 유일한 관문이었다. 거래소 심사의 경우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특히 1999년 전후에는 코스닥시장 과열로 금융당국이 신규 상장 심사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다만 당시 업계에서는 이런 구조가 자율성을 저해하고 이중심사 문제를 초래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심사 기간도 길어지며 기업의 공시 부담이 과중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를 반영해 금감원도 상장 심사를 일원화하고, 증권신고서 검토 역시 대폭 간소화하기로 결정했다.

공모 증권신고서 심사의 경우 기업의 상장 적정성이 아닌 허위기재나 투자 정보 누락을 살피는 것이 원칙이다. 때문에 당시 금감원의 개선방안은 상장 관련 심사 권한을 시장에 위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장은 거래소, 공모는 감독당국'이라는 원칙이 정립된 계기였다.

이 원칙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예비 발행사나 상장 주관사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최근 몇 년 사이 공모주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검토 기조도 달라졌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런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한다.


◇지난해 금감원 '색깔' 달라져…'3회 이상 정정' 세 배 가까이 증가

상장 증권신고서는 방대한 규모로 인해 1~2회 정정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모주 호황기 이전이던 2019년에도 증권신고서를 2회 정정한 기업은 많았다. 다만 그 이상 정정이 이뤄진다면 15일의 효력 기간을 다시 계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들어 '3회 이상' 증권신고서 정정 건수는 전년 대비 세 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5월까지 상장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기업은 23개사였다. 이들 가운데 신고서 정정이 3차례 이상 이뤄진 비중은 13%였다. 한주라이트메탈, 미래반도체, 에스바이오메딕스 3개사다.

올해 5월까지 제출된 공모 증권신고서는 총 25건이었다. 이 중 DXVX, 이엔셀의 경우 금융감독원의 정정 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았다. 두 회사를 제외한 23건 중 신고서가 3회 이상 정정된 곳은 8개사, 비중은 약 35%에 달했다. 수요예측이 마무리된 기업 중 증권신고서를 정정하지 않았던 곳은 아이빔테크놀로지가 유일하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10여년 전에는 증권신고서의 ‘기재정정’으로 일정이 연기될 경우 증권사 IPO본부에서는 '대형사고'라고 받아들였다"며 "현재는 2회 정정은 기본에, 정정요구 제출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에서 과거의 심사 기능을 부활시키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시장 주도 심사로 혁신기업 키워야"

금융당국이 과거 심사 권한을 시장 주체에 넘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투자자 보호를 위한 취소한의 조치는 필요하지만, 혁신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자율적 심사도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원금 손실이 가능한 모험자본시장을 국가에서 간접적으로 육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시장, 특히 변동성이 큰 코스닥 시장을 정책적으로 만든 이유는 이 곳에 입성하는 100여개 기업 가운데 일부만 성공해도 국가 경제 전체에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이들 가운데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이 1~2개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벤처 생태계에서 시작해 코스닥 시장, 유가증권시장을 거쳐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현재는 국내 IT 생태계의 거두로 성장했지만 상장 과정에선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회사가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과정에서 ‘3수’를 겪은 것은 증권업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주요 투자자와의 분쟁이 빚어지면서 여러 차례 등록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모험자본의 힘으로 성장한 기업이 네이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코스닥을 거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셀트리온, 우회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했던 카카오, 밸류체인별 자회사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한 에코프로그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두 2000년 이후 주식시장에 등장한 혁신기업들이다.

앞선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거래소와 금감원 간 심사 정보 공유가 시작되면서 일부 트랙의 상장 과정이 지나치게 깐깐해진 측면이 있다"며 "금감원이 증권신고서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거래소 심사에도 영향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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