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vs성장' 기로에 선 제약사]일양약품, 희미한 과거의 영광…성장 골든타임 놓친 이유 '리더십'①슈펙트·놀텍 신약 레코드, 대내외 악재로 성장정체 및 사업표류
정새임 기자공개 2024-07-25 08:18:54
[편집자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제약사들은 '제네릭·상품유통·리베이트'라는 틀 안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약가규제, 불공정 관행 철퇴 등 과거와는 다른 규제환경에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더해 오너십이 바뀌는 과도기까지 겹치면서 가지각색 '생존전략'이 등장했다. '위기냐 성장이냐'를 놓고 각각 다른 전략을 펼치는 제약사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7월 24일 08: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양약품은 한때 신약 슈펙트와 놀텍을 내놓으면서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곳이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출축소와 같은 눈에 띄는 실적 문제는 아니지만 성장이 멈춰 정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침체를 끝낼만한 승부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자체 제품으로 매출을 늘려 또 다른 신약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키도 어려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알짜 중국법인의 청산, 놀텍과 슈펙트의 해외진출 지연 등 산적한 과제는 부담이 된다. 소극적인 경영기조라는 본질적인 문제 역시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신약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던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업들이 표류하고 있다.
◇신약개발·중국진출로 빛난 실적, 2020년대 접어들며 한계
일양약품은 드링크제로 번 돈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던 제약사였다. 2012년 세계 4번째, 아시아에선 최초로 백혈병 신약 '슈펙트'를 개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짧은 국내 신약 개발사에서 일양약품은 '놀텍'과 '슈펙트' 2건의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로 이름을 올렸다. 2010년대만해도 일양약품은 모범 제약사의 표본으로 꼽혔다.
놀텍과 슈펙트 개발은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서 속도감 있게 추진됐던 사안이었다. 당시 경영을 지휘했던 오너 2세 정도언 회장이 신약 개발에 쓰라고 사재 30억원을 쾌척한 일화는 유명하다.
놀텍과 슈펙트는 일양약품을 단숨에 매출 2000억원대 제약사로 성장시켰다. 원비디 등 일반약 위주로 영업하던 당시에는 1000억원대 초반 매출 외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문약, 그 중에서도 자체 개발 신약으로 경쟁력을 쌓은 덕분에 퀀텀점프를 이룰 수 있었다.
일양약품은 일찍이 중국에도 현지 생산시설을 만들어 기반을 닦았다. 일반의약품(OTC)을 생산하는 통화일양보건품유한공사(이하 통화일양)와 전문의약품(ETC)을 생산하는 양주일양제약유한공사(이하 양주일양)다. 각각 1996년, 1998년 설립하며 중국에 진출했다. 이 중 양주일양은 한·중 합자회사로는 최초로 중국 생산시설 GMP 인증을 획득했다.
중국 두 현지법인은 2010년대 들어 의미있는 실적을 내며 일양약품 성장에 기여했다. 통화일양은 드링크제 원비디, 양주일양은 위궤양 치료제 '알드린'이 대표 품목이다. 양주일양의 경우 설립 25년 만인 2023년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일양약품의 성장시계가 멈추기 시작한 건 2020년대 들어서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반약과 전문약 매출이 눈에 띄는 성장 없이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양주일양의 성장이 돋보였지만 통화일양의 청산으로 의미가 부각되지 못했다. 통화일양은 일양약품에 연 400억원 매출을 안겨다주는 곳이다. 통화일양의 존재감은 수익성에서 빛을 발한다. 40% 육박하는 영업이익률로 일양약품이 두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파트너사와 갈등으로 통화일양을 청산하며 매출의 10%, 영업이익의 절반 가까이 해당하는 실적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이 여파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2%, 36% 감소한 785억원, 29억원을 기록했다.
◇오너2세 퇴임 후 대내외 악재로 소극적 경영기조 극대화
2020년대 일양약품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건 신약 수출이었다. 놀텍의 기술수출, 슈펙트의 글로벌 임상을 통한 매출 확대를 꾀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글로벌 진출이 쉽지 않았고 임상 난이도와 스케일도 국내보다 몇 배 높았다.
그 와중에 경영활동마저 소극적으로 변모했다. 과거 오너 리더십을 중심으로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진행 중인 수사가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슈펙트를 코로나19 치료제로 활용하려는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가 불거졌다. 경찰은 오너일가가 슈펙트의 코로나19 치료제 가능성을 타진한 연구를 조작해 주가를 올린 후 고점에서 매도해 차익을 실현했다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변화한 경영 구도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약 개발을 주도했던 정 회장은 2013년 돌연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이사회에서도 빠졌다.
오너 3세 정유석 사장이 이사회에 있지만 당시 상무급으로 전면에 설 위치가 아니었다. 한동안 정 회장이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를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등기임원으로 남아 유일하게 5억원 이상 보수를 수령했다.
자연스레 과거처럼 목표한 사업을 이끌어가는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가 됐다. 이 구조는 작년에야 변화를 맞이했다. 오랜 기간 사내이사로만 머물렀던 오너 3세 정 사장이 지난해 전문경영인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에 오르면서다.
하지만 경영 전면에 선 정 사장의 지배력과 지위는 아직은 미완성 상태다. 그는 지분 21.84%를 쥔 부친에 비해 단 4.08%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직급은 작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전문경영인인 김동연 대표이사 부회장과 비교해 나이와 직급이 낮다.
일양약품은 놀텍과 슈펙트 이후 전문의약품 영역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에 해외에서 관련 매출을 빠르게 늘리는 일이 중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수사 리스크, 글로벌 임상의 높은 장벽, 새로운 신약 등장 등의 대내외 이슈가 맞물리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슈펙트와 관련된 내용은 공시사항이 발생할 경우 공시하며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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