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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에 도전한 미술품 조각투자 [thebell note]

서은내 기자공개 2024-08-05 11:39:11

이 기사는 2024년 08월 01일 07: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술품 투자계약증권이 최초 발행되고 반년이 지났다. 과거 제도적 가이드 없이 행해져온 미술품 조각투자가 투자계약증권이란 이름으로 자본시장법상 형식과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조각투자사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투자자를 모집해왔다. 올해부터는 감독원에 발행 조건과 투자 리스크가 상세히 적힌 증권신고서를 내고 심사에 통과해야만 투자자 모집이 가능하다.

미술품 조각투자는 미술품을 여럿이 공동 구매하고 지분증권 비율만큼 소유권을 갖는다는 개념이다. 일반 대중이 고가 작품을 소유하기 어렵다보니 대안 투자로 소개되고 있다.

투자계약증권 신고서에는 블루칩 작품을 중심으로 온통 수치화된 평가 정보들이 빼곡히 쓰여있다. 매매 기록이 투명하지 않고 가격 정보가 쉬쉬되는 미술계 특성에 비춰보면 진일보한 시장의 형태를 띤 셈이다.

신고서 내용 중 기초자산의 밸류에이션 부분은 조각투자 제도화 논의 초반부터 예민했던 이슈다. 미술품 가치평가 전문 인력이 부족한 국내 상황에서 그 타당성에 의문이 상당했다.

그랬던만큼 기초자산의 가치 산정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대부분은 이렇다. 수십년 경매 데이터를 토대로 작품의 시장성을 어필한다. 이미지나 제작연대, 크기 등이 흡사한 작품 낙찰 이력을 추려 적정 추정가 범위를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공동구매한 작품 가격이 그 범위 하단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가치평가의 적합성을 증명한다. 요약하면 회사가 비교적 싼 가격에 작품을 샀고 그보다 높은 가격으로 되팔아 수익을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내용이다.

수십 페이지에 걸쳐 이같은 내용이 적혀있는데 실제로 보면 한줄 한줄이 눈물겹다. 하지만 읽다보면 각사별 평가방식이 결국 대동소이한 것을 알 수 있다. 통계적 방식까지 사용해 타당성을 검토하기도 하는데, 그마저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미술품의 가치는 철저히 비이성적인 영역이다. 영국의 얼굴없는 화가 뱅크시가 소더비 경매에서 17억원에 그림을 낙찰받고 곧장 문서파쇄기에 넣어 그림을 조각낸 퍼포먼스가 유명하다. 그림 가격에 얼마나 비합리적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판화가 아닌 이상, 설사 판화라 해도 미술품은 완벽히 유사한 것이 존재하기 어렵다. 각 작품마다 겉보기와 또다른 소유 이력, 고유의 스토리가 있어 천차만별의 가치를 갖는다. 단순히 낙찰 이력을 가치평가의 척도로 삼기에 약해 보이는 이유다.

미술품을 나눠갖는 방식으로 일반인의 투자 접근을 넓히는 시도 자체는 창의적이다. 조각투자사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비이성'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도전이 무모한 반란에 그칠지, 금기를 깬 혁신적 발상이 될지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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