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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장, 정보 비대칭의 함정]힘 잃은 공연법, 제작사는 어떻게 정보를 숨겼나④관람객 수 공개 의무화에도 기업비밀 주장…제작사 반발 '계속'

이지혜 기자공개 2024-09-26 08:18:53

[편집자주]

뮤지컬 시장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부가 공연법을 개정하고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까지 만들었지만 정보 비대칭은 여전하다. 소량의 정보는 폐쇄적 네트워크 안에서만 돌고 그마저도 신뢰성과 객관성에 의문점이 많다. 대중음악과 비교해 뮤지컬 시장의 정보 접근성은 왜 유독 떨어질까. 투명성은 언제 개선되는 걸까. 정보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비대칭이 만드는 문제는 뭘까. 더벨이 뮤지컬 시장에 만연한 정보 비대칭 현상과 원인, 그로 인한 문제점 등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9월 24일 14: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뮤지컬 공연정보가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이제야 드러났을까. 공연법이 개정된 지 5년, 모든 제작사와 예매처가 공연정보를 KOPIS에 전송해야 한다는 원칙은 법제화했지만 제도가 자리 잡았는지를 검증할 수 있었던 수단은 없었던 탓으로 보인다. 애초에 법적으로도 미비한 지점이 많았다.

공연법상 KOPIS의 설립 및 운영 원칙과 시행령이 충돌하고 있는데도 이를 놓고 명확한 유권해석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시장에 유통되지 못한 공연정보는 검증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정확도와 신뢰도가 떨어지고 말았다. KOPIS 설립의 근본 취지마저 흔들린 배경이다.

◇공연법 시행령과 충돌, 관람객 수 '기업비밀' 논란

24일 뮤지컬업계에 따르면 KOPIS가 공연법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연법에 따르면 KOPIS는 공연의 관람객 수를 공개하는 게 설립목적이다. 공연법 제4조 1항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공중이 공연의 관람자 수 등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KOPIS를 운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재 KOPIS 홈페이지에서 관람객 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거의 없다. 공연통계 카테고리에서 △장르별 △지역별 △규모별로 총 티켓 판매 수와 판매액을 확인하는 게 사실상 최선이다.

KOPIS를 운영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분기별, 반기별, 연간 단위로 『동향보고서』를 발간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보고서에서 제공하는 정보도 적다. 공연 장르 별로 △티켓 예매 수와 △티켓 판매액을 공개할 뿐이다. 이런 데이터로는 개별 공연, 극장 규모별 티켓 가격을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

문체부와 예경이 공연법의 취지와 달리 관람객 수 등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작사 등 업계가 시행령을 앞세워 반발하고 있어서다. 공연법 시행령에 따르면 KOPIS 운영자는 집계된 공연정보를 인터넷 등에 1일 단위로 게시하되 뮤지컬 제작사, 공연장 등 공연정보 제공자의 기업비밀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뮤지컬 제작사 등이 관람객 수 등을 기업비밀이라고 주장하는 탓에 KOPIS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관람객 수는 사실상 티켓 판매량과 같은 의미나 다름없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런 해석을 놓고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A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연법이 상위법이기에 시행령은 공연법의 위임 범위 안에서 정하는 게 원칙”이라며 “티켓 등 문제를 떠나서 관람객 수를 공개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람객 수·티켓 판매량' 영업비밀로 보기 어려워

애초에 관람객 수, 즉 티켓 판매량이 기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B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연법상 기업비밀을 명확하게 정의한 규정이 없다”며 “기업비밀과 유사한 개념이 영업비밀인데 관람객 수, 티켓 판매량 등이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기업비밀과 법적으로 유사한 개념을 지닌 건 영업비밀인 것으로 파악된다. 영업비밀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됐다. 영업비밀로 인정받으려면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져야 하며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이거나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 정보여야 한다.

하지만 관람객 수나 티켓 판매량은 공공연히 알려진 정보다. 극장과 객석 수, 공연 기간이 노출되기에 최대 관람객 수 등을 추산할 수 있다. 공연 흥행 시 제작사가 관람객 수를 자발적으로 밝히는 사례도 많다. 애초에 KOPIS에 의무적으로 전송토록 법제화했을 만큼 비밀로 관리되지 않았으며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 경영상 정보라고 보기도 어렵다.

또 정보 보유자가 공연정보를 사용해 다른 기업과 경쟁하는 데 있어서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관람객 수, 티켓 판매량 등 정보가 제작사만의 독자적 비용이나 노력 등을 요구해 만들어진 데이터로 보기도 사실상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예매율·좌석점유율 공개 약속, 뮤지컬 업계는 여전히 반발

그런데도 KOPIS에 관람객 수 등을 공개하지 못하는 건 과거부터 지속됐던 제작사의 반발이 아직도 거센 탓으로 보인다. 2018년 발간된 『예술경영』에 따르면 정부는 그해 5월 말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활성화를 위한 공연법 개정안 공청회’를 진행했다.

당시 공청회에서 정부 측은 법이 시행되더라도 개별 공연의 예매율과 좌석점유율만 공개하는 등 내용의 타협안을 제시했다. 또 관객 수와 입장권 판매금액 등 제작사 입장에서 민감한 정보는 당분간 공개하지 않겠다고도 양보했다.


그러나 이 모든 타협안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KOPIS에는 개별 공연의 예매율과 좌석점유율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클래식과 국악 등 개인 아티스트 공연이 많은 업계에서는 해당 공연의 정보가 외부로 드러나면 아티스트가 명성에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며 “이를 근거로 정부도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정부가 내놓은 타협안도 이미 시장이 수천억원 규모에 이르렀던 뮤지컬은 예외였던 셈이다.

그런데도 대형 뮤지컬 제작사 등은 여전히 관람객 수 등을 공개하는 데 있어서 현재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문체부 등이 추진하는 간담회도 진통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뮤지컬 제작사 등이 기업비밀 등을 근거로 공연정보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며 “공연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정부가 내놓은 타협안도 거부했는데 시행된 이후에도 KOPIS 데이터를 관리하지 않아 결국 정보 왜곡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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