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워치]'계열분리 숙제' 정유경 회장, 신세계 지분확보 전략은매입시 필요자금 1560억, 4년 전 대비 1/3…주담대 여력 충분
고진영 기자공개 2025-01-16 07:19:47
[편집자주]
소유 구조와 이사회로 대변되는 지배구조는 기업 정체성을 보여준다. 국내 재계는 창업 세대를 거쳐 3세, 4세로 경영 승계가 이어지며 지배구조가 바뀌었다. 유망 산업에서 새로운 오너십이 탄생하기도 한다. 소유 분산 기업들도 각자 지배구조를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theBoard는 주요 기업 지배구조 변화를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1월 15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명희 총괄회장의 이마트 지분을 전부 매수하기로 하면서 계열분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생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배경이다.깔끔한 계열분리를 위해선 정유경 회장이 어머니로부터 신세계 지분 10%를 마저 확보할 필요가 있다. 직접 사들일 것인지 증여받을지가 문제인데, 매입을 선택할 경우 주가가 저공비행 중인 지금이 유리해 보인다.
◇'유류분 리스크' 안고 있는 상속
현재 신세계 지분은 정유경 회장이 18.56%(182만7521주), 모친 이명희 총괄회장이 10%(98만4518주)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남매간 계열분리가 시간 문제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정유경 회장은 어떤 식으로든 어머니가 가진 지분을 넘겨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용 측면에서 더 나은 방식은 증여나 상속이다. 세법에 따라 30억원을 초과하는 재산엔 최고세율인 50%를 매기는데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 주식일 경우엔 20% 할증을 붙이고 있다. 또 상장주식의 주식평가액은 증여일이나 상속개시일 전후 2개월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
전일 종가(13만1700원) 기준으로 이 총괄회장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약 1297억원, 이에 따른 증여·상속세는 778억원 수준이다. 세금만 따지면 매입시 이명희 총괄회장에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보다 많지만 종합적 비용은 상속이 낫다. 또 매입의 경우 어차피 이 총괄회장이 받은 대금이 정용진 회장 등에게 상속되므로 다시 상속세를 내야하는 부담이 있다.
다만 상속엔 불확실성이 따른다. 유증이나 증여에 따라 정유경 회장이 신세계 지분을 전부 받는다 해도 다른 가족이 유류분, 즉 최소한의 상속분을 주장할 권리가 있어서다.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받고 이 몫에 대해선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가령 이명희 회장의 재산에 대해 상속이 개시된다면 상속권이 있는 가족은 남편 정재은 명예회장, 자녀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이다. 이론적으로 유류분반환청구가 벌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정용진 회장이 이마트 지분을 증여가 아닌 매입을 통해 확보했기 때문에 정유경 회장의 방어 수단은 더 제한된다.
시장 관계자는 “정 회장 남매가 이미 계열분리에 대한 합의를 마쳤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하지만 잠잠하다 싶으면 상속 분쟁이 일어나는 재계에서 100% 장담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삼성일가 사례를 보면 애초 시장에선 고(故)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이재용 회장이 몰아받을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지배구조 핵심인 삼성생명 지분은 이재용 회장이 절반을 가져갔으나 나머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등은 법정비율대로 나눠가졌다.
구체적으로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이 9분의 3을, 이재용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각각 9분의 2씩 상속받았다. 이미 승계구도가 결정됐던 것과 별개로 지분 상속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가족간 다툼이나 갈등을 염두에 뒀다는 평이다.
◇신세계, 분할 이래 최저 주가…매입비용 '뚝'
따라서 정유경 회장의 경우에도 신세계 지분을 전부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매입으로 볼 수 있다. 비싸지만 잡음 없이 확실한 길이다. 관건은 재원 마련인데, 주택담보대출 활용이 유력하게 짐작된다.
앞서 정유경 회장은 약 4년 전에도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자금을 융통했었다. 당시 이명희 종괄회장이 정용진 회장에게 이마트 주식 229만1512주(8.22%), 정유경 회장에게 신세계 주식 80만9668주(8.22%)를 증여하면서 각각 1917억원, 1045억원의 증여세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남매 모두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세금을 분할납부하는 방법을 썼다.
정유경 회장의 경우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40만주와 50만주 총 90만주를 용산세무서에 납세담보로 제공했다. 또 2021년 30만주를 담보로 400억원, 2022년엔 이 대출을 갱신하면서 28만주를 담보로 주고 400억원을 더 빌렸다. 2023년 6월엔 다시 800억원에 대한 담보대출을 갱신하고 그 외에 34만주를 담보로 400억원을 추가로 대출했다. 총 1200억원이다. 정 회장의 보유지분 18.56% 가운데 18.49%가 담보로 묶여 있다.
작년부턴 담보대출계약이 모두 해소되고 용산세무서와 50만주에 대해 체결한 납세담보제공 계약만 남아있는 상태다. 약 133만주(13.48%)의 지분을 더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입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여겨진다.
매입 적기는 언제일까. 현재 신세계 주가는 2011년 이마트와 기업분할한 이래 최저 수준이다. 법인세법상 친족 간 거래에 붙는 20% 할증을 반영해 계산하면 1560억원에 모친 지분을 가져올 수 있다. 2021년 주가가 32만원을 웃돌던 시기를 기준으론 3800억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만큼 주담대 조건도 불리해질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 이슈다.
같은 기간 16만원 수준이었던 이마트 주가 역시 6만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정용진 회장은 주식매입에 2141억원을 쓸 예정이지만 4년 전 매입했다면 5000억원 넘게 필요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주가 기준으론 증여세만 3000억원대에 달하니 지금이 싸게 살 기회라면 기회였던 셈이다. 정용진 회장의 이번 매입 결정과 무관치 않다고 짐작된다.
다만 신세계 관계자는 "아직 정유경 회장의 지분매입 계획 등과 관련해 알려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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