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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리밸런싱 스토리]다른 그룹들과 달랐던 '투자 본능'③버는 돈보다 컸던 씀씀이, 리스크 관리 주력한 삼성·현대차와 다른 결과로

김위수 기자공개 2024-03-27 09:14:22

[편집자주]

SK그룹이 작년 말 대규모 인적쇄신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 재점검, 비용 감축으로 경영 고삐를 죄고 있다. 근래 최태원 회장의 '해현경장(解弦更張)' 발언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등판은 그룹의 위기의식을 대변한다. 과거의 성장 방식이 더이상 정답이 아닌 걸까. 확실한 건 SK그룹의 2024년은 예년과 다를 것이란 점이다. 더벨은 경영 시스템과 사업구조를 재정비하고 있는 SK그룹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5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이 재계 2위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할 때 '과감한 투자활동'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는다. 과거 선경그룹 시절에도 유공·한국이동통신 등 인수를 통해 세를 키웠다. 유공·한국이동통신은 SK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지목되는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의 전신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총수가 된 뒤에도 투자를 통한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하이닉스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감한 국내 사업 중심이었던 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뒤바꾸는 데 성공했다.

성공적인 M&A 이후 SK그룹의 투자 기조는 더욱 공격적인 방향으로 향했다. 특히 2017년 조대식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장동현·김준·박정호 부회장 등을 중심으로 최고위 경영진이 재편된 뒤 이같은 현상은 더 심화됐다.

◇SK그룹 공격적 투자, 현금흐름 고려 없었나

SK그룹의 최상위 지배기업 SK㈜의 연결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2018년부터 자본적지출과 배당금 지급 등 현금유출이 현금유입 규모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연간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 내에서 자본적지출(CAPEX)·배당금지급 규모가 제어됐다면 이 시점을 기점으로 버는 것보다 많이 쓰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SK그룹의 '공격 투자'가 본격화된 시점과 일치한다.

유입되는 현금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SK그룹의 씀씀이는 매년 커져가기만 했다. 이에 따라 현금유입과 현금유출의 괴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2018년 NCF와 자본적지출·배당금의 차이가 약 8600억원이었다면 지난해에는 9조8000억원으로 벌어졌다. 버는 것보다 약 10조원 많은 금액을 지출한 것이다. 재무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017년 말 연결 기준 22조원이었던 SK㈜의 순차입금은 2023년 말 58조원에 달하는 상황이 됐다. 6년 만에 순차입금이 36조원 늘어났다. 부채비율은 139.9%에서 165.8%로, 30%였던 차입금의존도는 40.7%로 상승했다.

SK그룹에 속한 개별 기업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SK하이닉스는 그룹의 먹거리인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8년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투자, 2021년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등을 성사시켰다. 키옥시아 투자에는 약 4조원이, 솔리다임 인수에는 약 11조원이 들었다.

SK하이닉스의 재무구조에 변동이 생긴 시점은 2018년 이후부터다. SK하이닉스는 2018년까지만해도 마이너스(-) 순차입금을 유지해왔다. 우량한 재무구조를 자랑했지만, 2019년부터 순차입금 규모가 급격히 확대됐다. 지난해 기준 순차입금은 2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34.3%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87.5%로 높아졌다. 차입금의존도 역시 같은 기간 9.2%에서 32.4%로 치솟았다.

배터리 사업 등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SK그룹 투자 선봉장에 섰던 SK이노베이션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은 2017년 기준 1조원 수준이었다. 2019년부터 CAPEX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며 유입되는 현금보다 많은 금액을 투자로 집행하기 시작했다. 2017년 1조원이었던 CAPEX는 2019년 4조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1조원을 기록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순차입금은 17조원이 됐다.

이처럼 투자규모가 점점 커지며 현금 유입보다 유출이 더 많아지고, 부족한 자금을 차입으로 메꾸는 과정이 반복되며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그나마 2022년 전까지는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형성돼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고금리 국면이 시작되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SK㈜의 연결 기준 연간 순금융비용은 2017년 7110억원에서 지난해 2조4635억원으로 246% 증가했다. 금리인상과 차입금 규모 확대가 겹친 결과다.

◇'속도전'보다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 삼성·현대차

그간 SK그룹이 유독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 역시 성장을 위해 상당한 자본을 투입해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인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2017년 9조원을 들여 하만 인수를 마친 뒤 눈에 띄는 M&A 행보는 없다. 대신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매년 수십조원을 CAPEX로 집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순차입금을 마이너스로 유지하고 있다.

현금흐름을 고려해 지출을 관리해 온 결과다. 특히 2020년까지는 CAPEX와 배당금의 합계가 NCF를 넘지 않도록 억제해왔다. 2021년에는 주주환원정책에 따른 특별배당의 실시로 CAPEX와 총배당금의 합계가 NCF 대비 5조원여를 초과했고, 2022년에는 CAPEX·총배당금이 NCF와 비슷한 수준에서 정해졌다.

단 지난해의 경우 CAPEX를 60조원으로 늘린 데 반해 실적저하로 NCF는 줄어들었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은 92조원, 총차입금은 13조원으로 나타났다.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79조원으로 부채비율 25.4%, 차입금의존도 2.8%로 재무압박이 없는 상태다.


배터리 자회사인 삼성SDI의 경우 삼성전자와는 다르게 지출이 현금유입 규모보다 작은 상태로 유지되지는 못했다. 배터리 사업은 아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CAPEX 규모가 NCF를 웃돌기는 하지만 SK그룹에 비해 투자에 신중하게 접근한 점은 눈에 띈다. SK이노베이션의 CAPEX는 6년간 11배 증가했지만 삼성SDI의 CAPEX는 같은 기간 4배 늘었다. 삼성SDI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71%, 차입금의존도는 17%로 배터리사 중 가장 견조한 편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별도 기준 순차입금이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 중이다. 현대차는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등 여신전문금융회사를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두고 있어 재무현황을 파악하려면 별도 기준 재무제표를 살펴보는 것이 낫다. 현대차의 CAPEX와 총배당금이 현금흐름내에서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큰 폭의 증가없이 매년 무리되지 않을 수준의 CAPEX가 집행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의 부채비율은 39.9%, 차입금의존도는 1.5%에 불과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중에서는 시장상황이 좋고 금리가 낮더라도 무리한 투자는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며 "빠른 사업 확장보다 리스크를 최대한 낮추는데 무게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SK그룹은 리스크 헷지보다는 사업 확장을 우선순위로 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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