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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사의 법칙]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방어' 도운 효성, 형제보다 사촌[우군]①사모펀드 인수 '좌시 안해'…사업적 셈법·형제의난 공통분모 '눈길'

김현정 기자공개 2024-11-04 08:11:09

[편집자주]

백기사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기업 측에 선 '우호적 지분 인수자'를 의미한다. 혈연이나 가문 간 끈끈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한 아군의 성격을 띤 백기사도 있고 치밀한 전략적 셈법으로 무장한 백기사도 있다. 결국은 경영권 인수를 노린 케이스도 존재한다. 당사자도 아닌 자가 대규모 비용을 감내하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THE CFO는 주요 경영권 분쟁 사례 속에서 백기사의 유형들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5일 15:10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백기사(White Knight). 중세 유럽의 결투재판에서 재판을 신청한 자(원고)의 편에 서 대신 싸워주는 전사를 뜻한다. 현대 자본시장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으로부터 경영권 방어를 돕는 쪽을 칭한다.

최근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에서도 백기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베인캐피탈을 비롯해 한화그룹과 트라피구라그룹, LG화학, 현대자동차 등이 넓은 범주 내 고려아연의 백기사 혹은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의 목적은 차익실현이 명백한 가운데 다른 곳들의 경우 고려아연의 편을 드는 이유가 다양하다. 오너 간 친분이 바탕이 된 경우도 있고 본인의 사업에 고려아연의 협력이 필요한 기업들도 눈에 띈다.

재계를 통틀어 보면 이와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사례들이 많다. 한국앤컴퍼니의 피 튀기는 경영권 분쟁에선 형제가 남보다 못한 적으로, 사촌이 구원투수로 부상한 게 대표적이다. 조현범 회장과 조현식 전 고문의 형제간 싸움으로 한국앤컴퍼니의 경영권이 사모펀드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조양래 명예회장과 함께 방계기업 효성그룹이 나서 분쟁을 일단락했다.

◇44년간 지분거래 거의 없던 효성그룹, 사촌기업 경영권분쟁 참전

효성그룹과 한국앤컴퍼니그룹은 44년 전 계열분리된 사이다. 1980년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명예회장은 건강이 악화하자 경영승계를 단행했고 이와 함께 효성그룹의 계열분리가 시작됐다. 기존 효성은 장남인 고 조석래 전 명예회장에게 물려줬다.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은 각각 차남(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명예회장), 3남(조욱래 DSDL 회장)에게로 돌아갔다.

이후 효성그룹과 한국앤컴퍼니그룹은 경영상으로나 지분상으로나 서로 관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국타어어는 빠르게 타이어 제조 기술력을 쌓고 사세를 확장하기에 바빴으며 효성은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 등에서 원천기술을 확보, 글로벌 리딩 소재기업으로 올라가는 데 전념했다. 2008년 한국타이어가 어려움을 겪을 당시 효성이 지분을 매입해 우호적 관계를 확인한 적은 있었다. 해당 지분은 효성과 한국앤컴퍼니의 연결고리로 상징됐는데 3년이 채 되지 않은 2011년 효성이 이마저도 전량 매각하며 깔끔히 정리했다.

이렇듯 적절한 선을 유지해온 방계기업 효성그룹이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건 작년 말의 일이다. 한국앤컴퍼니의 형제의 난은 2020년 6월 조 명예회장이 한국앤컴퍼니 주식 전부(지분율 23.59%)를 차남 조현범 회장에게 넘겨주면서 시작됐다. 조 명예회장의 승계 결정에 대해 조현석 전 고문과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후 조 전 고문은 2021년 주주총회에서 조현범 회장과 대결을 벌였지만 경영권을 가져오진 못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조 전 고문은 결국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조 회장이 단독대표로 한국앤컴퍼니 그룹 회장에 올라섰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좌)과 조현식 전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

조 회장의 승리로 분쟁이 일단락된 듯 했지만 2023년 3월 조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다시 구속되면서 조 전 고문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번엔 MBK파트너스를 등에 업었다. 작년 12월 5일 조 전 고문은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발표했다. MBK파트너스에 이사회 과반을 넘기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한국앤컴퍼니의 지배구조를 바로 세우고 기업가치를 제고할 계획이었다.

이때는 부친인 조 명예회장이 움직여 적극적으로 차남 편에 섰다. 조 명예회장은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잇따라 매입해 4.41%를 확보했다. 여기에 경영권 분쟁을 관망하던 효성그룹이 조 회장의 백기사로 등장했다. 조현범 회장의 사촌 형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효성첨단소재를 통해 한국앤컴퍼니 주식 74만주(133억원·0.75%)를 취득했다.

효성첨단소재의 지분율은 수치상으로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판세를 뒤엎기에 충분했다. 연이은 우군의 합류로 한국앤컴퍼니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의 무게 추는 조현범 회장 측으로 점차 쏠렸다. 조 회장과 조 회장을 지지하는 특별관계자의 총 지분은 결국 47%를 넘어갔고 경영권 방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조 회장에게 확실한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조 명예회장의 형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까지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떠돌았다. 작년 12월 22일 MBK파트너스와 조 전 고문 측이 공개매수 시한까지 목표 지분 확보에 실패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막을 내렸다.


◇'형제의 난' 당사자 '공통분모'…창업주가 일군 경영권 방어, '가문의 일'

사실상 사촌기업의 형제 간 싸움에 참전한 효성그룹도 과거 형제의 난을 겪은 적이 있었다.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이 2014년 형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고발했고 이후 치열한 법정 공방까지 이어지며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다.

2024년 3월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현재 형제 간 갈등은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지만 10년간 별려놓은 재판은 또 여전히 진행 중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세 형제 간의 우애를 지키고 서로 다투지 말라는 뜻의 유언장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형제의 난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입장에서 한국앤컴퍼니의 장·차남의 갈등이 남일 같지 않다고 바라봤을 것으로 얘기한다. 특히 조현준 회장이 조현범 회장 측에 선 것은 같은 경영 승계자의 입지를 갖고 있다는 공통분모에 근거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효성그룹이 사촌 기업의 형제간 싸움을 좌시하지 않은 건 창업주 시절부터 일군 한국앤컴퍼니의 경영권을 지키려는 범 효성가 차원의 대응이었다. 조 전 고문은 MBK파트너스를 개입시키면서 한국앤컴퍼니를 손에 넣게 되면 MBK가 이사회는 물론 대표이사 선임 권한까지 가져가는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조양래 명예회장이 2차 형제의 난에서야 조현범 회장을 지지하고 나서게 된 것도, 효성그룹이 등판하게 된 것도 모두 한국앤컴퍼니의 경영권이 조 전 고문이 아닌 MBK파트너스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범 효성가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사모펀드사가 개입한 적대적 M&A엔 언제고 가문이 뭉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조석래 고(故) 효성 명예회장(왼쪽)과 조현준 회장

효성그룹의 개입엔 사업적 셈법도 자리한다. 효성과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타이어코드→타이어로 이어지는 소재와 제품 공급망에서 핵심 파트너 관계에 있다. 한국앤컴퍼니는 효성첨단소재가 생산하는 타이어코드의 국내 최대 고객사다. 만일 MBK파트너스에 경영권이 넘어간다면 효성그룹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셈이다. 기존 한국앤컴퍼니로의 소재 공급이 줄어들 수도 있고 기존 협업에 대한 방향성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현재 효성첨단소재는 한국앤컴퍼니 지분 0.75%에 대해 '경영참여' 목적의 출자였음을 명시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종식 이후 두 회사 간 사업 협력은 더 공고해진 분위기다. 올 3월엔 한국타이어와 효성첨단소재가 협업해 만든 화학적 재활용 페트(PET) 타이어를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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