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사의 법칙]1,2위사 경영권 분쟁 '진정한 승자'였던 넷마블[전략적 제휴]IP 공유로 사업적 이득, 기업가치도 껑충…현재까지 지분 보유 중
김현정 기자공개 2024-11-15 07:45:49
[편집자주]
백기사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기업 측에 선 '우호적 지분 인수자'를 의미한다. 혈연이나 가문 간 끈끈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한 아군의 성격을 띤 백기사도 있고 치밀한 전략적 셈법으로 무장한 백기사도 있다. 결국은 경영권 인수를 노린 케이스도 존재한다. 당사자도 아닌 자가 대규모 비용을 감내하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THE CFO는 주요 경영권 분쟁 사례 속에서 백기사의 유형들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2일 11:25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영권 분쟁이란 극한의 상황 속에서는 방어 입장의 기업이 그의 편에 선 백기사로부터 무게있는 부채감을 안기 쉽다. 이는 백기사가 추후 해당 기업과 함께 하는 사업에서 유리한 키를 쥐게 한다.넷마블은 넥슨과 엔씨소프트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엔씨소프트 측 백기사로 나서서 큰 이득을 봤다. 엔씨소프트는 그동안 절대 외부와 공유하지 않았던 지적재산권(IP)을 넷마블이 이용토록 했고 넷마블은 이를 바탕으로 회사의 최대 흥행작을 출시할 수 있었다. 넷마블은 ‘리니지2 레볼루션’를 통해 한동안 막대한 매출을 올리며 모바일 게임의 역사를 새로 썼다.
지분교환 당시 넷마블이 발행한 신주를 엔씨소프트가 비싸게 인수한 것도 훗날 넷마블의 IPO(기업공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여러 수혜를 근거로 넥슨-엔씨소프트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진정한 승자는 사실상 ‘넷마블’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두 회사는 2021년 지분계약을 종료해 마음대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게 됐지만 현재까지도 서로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는 2015년 당시 1위사 넥슨의 독주에 맞선 양사 ‘동맹의 증표’로 자리하고 있다.
◇넥슨-엔씨소프트,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게임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렸던 고 김정주 넥슨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각각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 컴퓨터공학과 86학번으로 동문 선후배 사이였다. 30년간 우정을 바탕으로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대표는 동종업계 회사를 키우면서 자주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2012년엔 축구게임 '피파'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EA(일렉트로닉아츠)를 함께 인수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8045억원에 인수했다.
양사의 행보는 우리나라 게임 산업 역사상 최대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양사의 지분동맹엔 글로벌 기업 도약을 위해선 규모의 경제가 필수라는 판단이 자리했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일렉트로닉아츠(EA), 벨브 등 글로벌 게임사와 경쟁하고 더 나아가 유수 기업을 인수하려면 국내 게임사 간 힘을 합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EA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적이 좋지 않았던 EA에 M&A 얘기가 돌자 주가가 급상승했고 EA 이사회는 매각 안건을 부결시켰다. 이렇게 공동 목표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사이에도 금이 갔다. 양사간 대표 협업 사례였던 '마비노기2'는 1년여만에 개발이 중단됐다.
이후 엔씨소프트의 주가폭락은 넥슨과의 갈등이 격화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넥슨의 지분 매입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졌고 경영권 분쟁이 촉발되기 직전인 2014년 10월엔 주당 가격이 13만원대까지 떨어졌다. 2012년 한 주당 25만원에 매입한 주식이었다. 넥슨 입장에서 투자금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 셈이었다. 엔씨소프트 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넥슨은 2015년 1월 경영권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넷마블, 경영권 분쟁 '최대 수혜자'로
당시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은 15.08%,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 지분은 8.93%로 김택진 대표가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김택진 대표는 회사를 빼앗길 위기의 상황에서 넷마블을 백기사로 끌여들였다. 넷마블은 ‘서든어택’이란 게임 판권을 두고 넥슨과 극심한 갈등을 겪은 기업이었다. 김택진 대표는 적의 적을 통해 경영권 방어에 나선 셈이었다.
2015년 2월 넷마블이 엔씨소프트 지분 8.9%를 3911억 원에 취득하고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의 지분 9.8%를 3803억 원에 사들였다. 거의 4000억원에 이르는 대형 거래였지만 실제 오가는 현금은 거의 없는 ‘주식 맞교환’ 형태였다.
넷마블 지분까지 합쳐서 김택진 대표의 우호지분은 18.83%까지 높아졌다. 넷마블의 가세로 넥슨은 2015년 10월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엔씨소프트와 이별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자는 엔씨소프트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진정한 위너는 넷마블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무엇보다 사업적 성과가 컸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의 간판 게임 '리니지'나 '아이온' 등의 지적재산권(IP)을 손에 넣게 됐다. 엔씨소프트가 아무에게도 열어주지 않았던 인기작들을 독점 공급할 권리를 획득했다는 건 넷마블로서는 해외 게임시장 공략에 '천군만마'와 같은 무기를 얻은 것과 다름없었다.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모바일게임 시장에 뛰어들고 싶지만 노하우가 부족했다. 인기 IP 부재가 항상 약점으로 지목돼 왔다. 엔씨소프트의 강력한 IP를 공유받은 뒤 2016년 12월에 출시한 '리니지2 레볼루션'과 '블레이드앤소울 레볼루션' 등 모바일게임들은 한동안 넷마블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특히 리니지2 레볼루션은 게임 출시 1개월만에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넷마블을 '돈방석'에 앉혔다. 2015년 1조729원의 연매출을 냈던 넷마블은 리니지2 레볼루션 출시(2016년 12월) 이듬해인 2017년, 2조1755억원의 연매출을 내는 데 이르렀다.
2017년 5월 넷마블이 국내 게임사 중 최대 규모인 ‘시가총액 13조7000억원’으로 코스피에 상장할 수 있었던 것도 엔씨소프트와의 지분교환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당시 모바일게임 성공이라는 훈풍도 컸지만 엔씨소프트가 지분교환 당시 넷마블의 지분가치를 높게 책정한 게 영향을 크게 미쳤다.
그 때 업계에선 엔씨소프트가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넷마블 지분을 비싸게 쳐줬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2014년 3월 중국의 텐센트가 넷마블 유상증자에 참여할 당시 넷마블 주식을 1주당 708만원가량으로 평가했는데 2015년 2월 엔씨소프트는 넷마블 주식을 1주당 1302만원으로 책정했다. 일 년 만에 기업가치가 2배가량으로 뛴 것이다. 이는 하나의 거래로 인정돼 넷마블의 상장 당시 유리하게 작용했다.
현재도 넷마블과 엔씨소프트는 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리니지2 IP로 사업이 엮여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상당한 규모의 지분을 상호 보유 중이다. 한 쪽 주가가 떨어지면 다른 쪽도 평가손실을 보는 관계다.
다만 최근 몇년간 양사 주가가 부진한 탓에 조단위 평가손실이 쌓였다. 승승장구하던 리니지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엔씨소프트의 실적은 크게 악화됐다. 2021년 2월엔 104만원가량 했던 주가는 현재 20만9000원으로 떨어졌다. 이에 넷마블이 보유한 엔씨소프트 지분가치(8.88%)는 2조원을 넘어섰던 화려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4040억원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넷마블 주가 흐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2020년 9월경엔 넷마블 주가가 20만원이 넘으면서 엔씨소프트 지분가치(6.9%)가 1조1900억원에 이른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3000억원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11일 넷마블 주가는 5만6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두 회사는 2021년 3월 주주계약을 해지해 지분을 매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서로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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