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인수전, 생크션 리스크 떠오른 산기법 개정안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문구 추가 속도전…법 개정으로 분쟁 양상 달라져
이영호 기자공개 2024-12-26 07:54:25
이 기사는 2024년 12월 23일 13: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회에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기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는 단서 조건을 신설하는 게 골자다. 때마침 진행 중인 고려아연 인수전과 맞물리면서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고려아연을 둘러싼 생크션(sanction, 제재) 리스크도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고려아연 등이 보유한 기술을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한데 이어 관련 법 개정까지 추진되면서 향후 MBK파트너스의 해외 매각은 원천 차단하는 모습이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차지한다면 불확실성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산기법은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지난달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산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에 대한 처벌 대상과 형량을 확대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해외자본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할 때 산자부가 '국민경제적 파급효과'를 검토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문구를 두고 산자위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안보에 끼치는 영향을 따져 정부가 M&A 가능 여부를 판단했다. 국민경제적 파급효과는 그 범위나 파급력을 판단하기가 모호하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의 판단에 지나치게 힘이 실린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달 28일 열렸던 산자위 임시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인물은 김종민 의원(무소속)이다. 당시 회의에서 김 의원은 "(국민경제적 파급효과처럼) 두루뭉수리하게 포괄적으로 법을 만들어 놓으면 행정부에 입법권을 가져다주는 셈"이라며 "외국인 투자를 받을 때 늘 정부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고 개방 통상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 측은 개정안이 국민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추가 토론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개정안 계류를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정안은 산업특허소위를 거쳐 법안심사소위까지 올라간 것으로 파악된다. 발의 한 달 만에 법사위 단계까지 진행됐다는 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라는 게 국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시기상 산기법 개정안은 고려아연 인수 이슈와도 맞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 처리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배경으로도 지목되는 배경이다. 산기법 개정안에 발맞춰 시행령도 개정되는 수순이다. 새 시행령에는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에 제동을 걸 트리거 역시 마련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영풍·MBK 연합이 주주총회 표결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했더라도 정부가 제동을 거는 시나리오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의결권 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진 최윤범 회장 측에서 법 개정을 통한 장외 변수를 만들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산기법 개정 작업이 초고속으로 진행되면서 산기법 시행령 개정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본다"며 "이와 함께 앞서 고려아연이 신청한 국가핵심기술 지정 결과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MBK의 경영권 분쟁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고려아연과 자회사인 켐코(KEMCO)가 함께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하면서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 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때, 또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할 때는 미리 산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한 뒤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정부 승인 없이는 해외에 매각할 수 없게 됐다. 최근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된 점을 고려하면 고려아연의 해외 매각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그 이후를 도모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사모펀드 특성상 펀드 만기에 대비해 투자회사 지분을 매각 및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딜 자체에 여러 제약이 커지면서 출구전략을 짜는데 어려움이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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