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theBoard interview]장병완 전 장관의 고언 "대통령이 세일즈맨 될 수 없는 상황 안타까워"제일기획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참여 정부 기획예산처 장관
김형락 기자공개 2025-03-12 08:18:02
이 기사는 2025년 03월 12일 07시3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장병완 전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직 생활과 중진(3선) 의원을 거친 기획·예산 전문가다. 1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뒤 참여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차관, 장관 등을 역임했다. 18~19대 국회(2010~2020년)에서 의정 활동을 폈다.지금은 제일기획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이사회 경영에 일조한다. 예산·재정 분야 전·현직 공직자 모임인 예우회 회장을 맡아 선후배들과도 소통한다. theBoard는 장 전 장관을 만나 이사회 중심 경영과 재벌 체제 개선 방안, 국내외 정세 대응 전략을 물었다.
- 의정 활동을 했던 20대 국회가 끝난 게 2020년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에서 손을 뗐다. 지금 '예우회' 회장을 6년째 맡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나 국가 재정 전략국 전·현직 공무원들이 모인 친목 단체다. 기재부 현직 공무원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지낸다.
국가 정책 방향이나 대외 전략 등이 재정에 담기기 때문에 국가 경영 전략 문제만큼은 정치를 그만둔 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 2022년 제일기획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처음 사외이사로 선임된 건가.
▲ 첫 사외이사 경험이다. 그 외에 다른 곳은 맡고 있지 않다.
- 제일기획은 국내 대표 광고 업체다. 평소 광고 산업에 관심이 있었나.
▲ 광고 산업은 정부, 국회 활동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라 마음 편하게 사외이사로 활동할 수 있다.
- 어떤 소신으로 사외이사 활동을 하나.
▲ '중간자' 역할을 한다. 정부나 정치권에는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기업에는 정치권이 바라보는 시각을 전달한다. 양쪽 의견을 접목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제일기획에서 사외이사 제안이 왔다.
우리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내부 거래로 계열사에는 우호적이고 비계열사에는 불이익을 준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대기업과 재벌그룹을 선호하는 상반된 시각도 있다.
정부나 정치권은 규제 위주 시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성장하는 경제 구조다. 대기업이 지금까지 해외 시장 개척을 담당해 왔다.
주먹구구식 경영이나 지배주주의 황제 경영. 이런 경영 스타일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재계 지도자나 지배주주도 과거와 같은 경영 스타일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하이테크(hightech)나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 이사회에서 사내이사, 사외이사가 가진 전문성이 다르다. 이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 선임 사외이사와 내부거래위원회 위원장, 상법·공정거래법상 필요한 의사 결정 기구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제 정책이나 공정 거래, 국가 재정 운영 분야 전문성을 기업 경영에 투입하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어떤 조언을 하는지.
▲ 경영 계획을 수립할 때 경제 전망에 도움을 준다. 경제 활동 인구는 줄고, 경제는 저성장 기조다. 전반적인 추세와 구조적인 문제들을 봤을 때 경영 계획을 탄탄하게 짚으면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 최근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국내 정세가 혼란기다. 기업에 대응 전략을 조언해 준다면.
▲ 국내 정치 상황은 기업 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다. 사실 정치나 정부가 기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했던 시기는 별로 없었다. 저성장 국면에서 인적 자원 활용 방안과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는 구조 개혁에 신경 써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하지 않겠나.
국내 정치 혼란이 대외 활동에 제약을 가져오기 때문에 경영 전략을 수립할 때 대외 불확실성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칠 부분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세일즈맨이 돼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여·야와 정부도 그런 역할을 하는데 정부나 정치권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리더 역할을 못 해주고 있다.
- 광고 산업은 국내 경기 부침 영향을 받는데.
▲ 제일기획은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 성장률이 더 높다. 해외 시장 비중을 늘려나가는 중이고 성장세도 가파르다.

- 최근 트럼프발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조언해 준다면.
▲ 한국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그동안 관세를 내리고, 무역 장벽을 없애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수혜를 누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각종 관세를 인상하면서 관세 전쟁이 시작됐고, 보호 무역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 기업들은 이런 대외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우리 사정을 알아달라고 해서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고, 우리가 당신과 같이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활로를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 적대시하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나.
- 기업이 가진 애로 사항은 무엇인가.
▲ 우리나라 공정 거래 제도에 문제가 많다. 시대에 안 맞는 제도를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한 회사가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세 회사가 70% 이상일 경우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관리한다. 그러면 기업 활동이 굉장히 제약된다.
전 세계에서 1등 아니면 2등만 살아남고, 2등마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한 회사가 50%를 (점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호 출자나 내부 거래로 외형을 부풀리는 불균형 성장 문제는 많이 시정됐다.
불신을 전제로 한 정책 양산은 지양해야 한다. 정치를 하면서도 공정위에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규제는 틀을 깨라고 지적했다. 후배들을 만나서도 공정 거래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 이사회에서는 어떤 사안을 중점적으로 살피나.
▲ 제일기획은 매출 70%가량을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성장할 때는 같이 성장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어려워지면 같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이사회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최고경영자나 고위 경영진에게도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 올해 제일기획에서 사외이사 첫 임기를 마무리한다.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 환경도 바뀌었다. 지배주주의 이익과 주주들의 이익, 국민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시각에서 이야기하면 사심 없이 받아들이더라.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 이사회 중심 경영이 더 잘 작동하고 발전하려면 어떤 점이 강화·보완돼야 할까.
▲ 사외이사가 기업 성장 방안을 고민하려면 경영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우리 기업 문화는 그렇지 않다. 사외이사보다 지배주주가 최고경영자 진퇴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기업 문화는 그룹마다 다르다. 어떤 그룹은 사외이사에게 내부자와 동등한 정보를 제공하며 조언을 기대하지만 외부자로 취급하며 정보 제공에 폐쇄적인 그룹도 있다. 사외이사에게 경영 정보를 더 투명하게, 더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 제일기획 사외이사 재선임 후보에 올랐다. 연임 이후 활동 계획은?
▲ 구조 개혁과 대응 전략을 세우는데 사외이사도 책임을 지는 한 사람이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
거버넌스 체제를 더 선진화할 필요도 있다. 기업이 거버넌스 문제에 열려 있을 때 대외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안 열리면 변화에 적응하는 게 느릴 수밖에 없다. 그게 앞으로 중요한 관심 사항이 되지 않을까 싶다.
- 거버넌스가 변한다는 건 어떤 걸까?
▲ 예를 들어 삼성의 경우 상속세라든지 세제하고도 관계가 있다. 어떤 경우 지배주주는 주가 상승을 반기지 않는다. 주가가 상승하면 상속세 부담이 굉장히 커진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들은 주가가 상승해야 투자 수익을 얻으며 공생하는 체제가 되지 않겠나.
지배주주의 이익과 일반 투자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기업이) 그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신 정부도 상속세 부담을 낮출 필요는 있다. 일반 투자자들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기업의 장기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씩 열린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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