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채무인수' 덫에 빠진 삼성물산 일반 신용보강과 동일 효력…인천 옥골 4080억 채무 떠안아
길진홍 기자공개 2012-03-30 09:02:42
이 기사는 2012년 03월 30일 09: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물산이 인천 옥골 도시개발사업 시행사 채무 4080억원을 떠안았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과정에서 제공한 조건부 채무인수 약정을 이행한 것으로 대주단이 시행사 기한이익상실을 통지하자 이를 받아들였다.삼성물산이 부동산 PF 개발사업에서 시행사 채무를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무인수 금액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장 건설사 중 최대 규모로 파악된다. 신용보강 부담을 덜기 위해 채무인수에 ‘조건부' 옵션을 달았으나 사업 지연과 시행사 부실이 겹치면서 우발채무 현실화를 피하지 못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유사 지급보증인 조건부 채무인수가 현실화되면서 삼성물산이 PF 대출의 신용보강 의사결정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급보증 피해 '조건부 채무인수'...부메랑
인천 옥골도시개발사업 시행사인 메타티엔씨는 지난 2010년 2월 4500억원 한도의 대출을 일으켰다. 은행 대출과 자산유동화사채(ABS)로 각각 3500억원과 1000억을 조달했다. 만기가 오는 2014년 8월까지로 금리가 7%대 중반에 매겨졌다.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은 시행사 부채 원금에 조건부로 채무인수를 약정했다. 시행사가 기한의 이익을 상실할 경우 관리형토지신탁 우선수익권을 취득한 뒤 채무를 중첩적으로 인수하는 조건이다. 채무인수 시기를 늦추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대주단 반발로 철회했다.
삼성물산의 채무인수는 신탁 우선수익권 취득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일반 채무인수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시행사 채무불이행 사유로 대주가 우선수익자 지위를 포기하면 시공사가 이를 양수해야 한다. 수익권은 시공사에 넘어가지만 대주단이 근질권을 설정해 채권을 보전한다.
메타티엔씨의 경우 일반 대출 계정에서 이벤트가 발생했다. 시행사가 자금난으로 여신거래 약정을 위반, 채무불이행에 빠져 PF 사업장까지 영향을 미친 경우다. 일반 건설사들이 시행사에 지급보증 또는 연대보증 등을 섰다가 시행사 부실로 채무를 인수하게 된 것과 같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삼성물산은 조건부 옵션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했으나 채무인수를 피하지 못했다. 시행사 채무를 인수해 우선수익권자 지위를 확보했지만 근질권 설정으로 재산권 행사에도 제약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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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결의 없이 부실 PF 사업 신용보강
PF 대출 신용보강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삼성물산이 시행사 채무를 떠안게 된 배경은 주택시장 침체에서 찾을 수 있다. 사업이 가시권에 들기 전에 주택시장이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렸고, 토지매입이 지연되면서 시행사 부실이 커졌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개발사업 신용보강에 관한 삼성물산의 의사결정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물산은 금융위기를 전후해 PF 대출에 대한 지급보증 또는 채무인수 형태의 신용보강을 극도로 회피했다. 다만 사업위험이 덜한 재건축 재개발 사업에 한해 이사회 결의로 지급보증을 섰다.
일반 개발사업의 경우 제한적으로 조건부 채무인수를 허용했다. 조건부 채무인수는 이사회가 아닌 집행위원회 결의로 주로 처리됐다. 신용보강의 강도에 따라 의사결정 시스템이 구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업위험이 큰 개발사업의 신용위험이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허가 위험이 큰 도시개발사업과 일반 개발사업에 조건부 채무인수가 집중됐다.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수천억원 규모의 PF 사업에 신용보강이 추가된 것이다.
삼성물산은 인천 옥골 도시개발사업 외에도 서울 천호지구 도시개발사업(4100억원 한도 대출)과 수원 신동지구 도시개발사업(2251억원), 부천 성진지역조합(1480억원) 등에 조건부 채무인수 약정을 맺고 있다.
이들 사업장에 제공된 조건부 채무인수 효력은 일반 채무인수와 다르지 않다. 인천 옥골 도시개발사업처럼 사업 장기화와 시행사 부실로 인한 우발채무 현실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사업이 비교적 안정적인 재건축·재개발에 대해 깐깐한 이사회 결의를 거치면서 우발채무 현실화 가능성이 큰 개발사업 PF에 대해서는 정작 관대한 셈이다.
삼성물산은 그러나 회계처리에 있어서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삼성물산 PF 잔액은 1조3391억원으로 조건부 채무인수가 들어간 PF 대출의 경우 모두 우발채무에 계상했다. 반면 재개발·재건축 관련 지급보증은 우발채무에서 제외했다. 삼성물산 스스로도 조건부 채무인수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내부 의사결정 체계와 회계 장부상 우발부채 위험 인식의 불일치는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줄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크레딧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의 보수적인 자금운용 스타일을 고려할 때 시행사 채무인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단기적으로 재무건전성에 큰 충격을 주지 않겠지만 악성 PF 사업장 관련 조건부 채무인수는 삼성물산이 풀어야 할 몫"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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