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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가 죽어야 PB비즈니스가 산다 [thebell note]

이승우 기자공개 2014-06-23 12:11:00

이 기사는 2014년 06월 18일 08: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 센터의 와인 아카데미·요리 강좌가 웬 말입니까.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 개인이 결성한 사모펀드는 또 어떤가요"

국내에서 PB 비즈니스라 하면 으레 이런 모습을 떠올리지만 한 외국계 은행 PB에게는 비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산전수전 겪으며 PB 업계에 이름깨나 날린 그라 사실 비꼼보다는 애정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요지는 이렇다. 부자들의 문화나 생활 방식에 관심을 가지되 거기에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VIP 룸(room)이라든지 금융회사가 운영하는 문화센터 등 금융과 무관한 것에 돈을 붓기 시작하면 PB비즈니스는 한도 끝도 없고 또 남지도 않는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라면 좋은 금융상품으로 고객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돈을 써야할 곳은 부자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을 접대하는 장소가 아닌 금융상품 개발·판매와 관련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생활은 관심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면 그만인 셈이다. 이를 깨달아서인지 최근 몇몇 시중은행과 증권회사의 VIP 센터·지점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PB 사업 수지타산에 대한 시행착오를 체험한 결과인데 좀 늦은 감이 있다.

그럼 좋은 금융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높은 수익을 고객에게 안겨주는 것이 최선일까. 앞선 외국계 PB의 답은 이렇다 "고객이 원하는 지역과 자산에 대한 모든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것". 즉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제때 그리고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하되, 이 상품에 대한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PB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금융회사 자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금융 자산에 대한 영역이 그만큼 넓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은 어떤가. 수수료가 많이 남는 전략 상품이 은행과 증권사 지점의 가판대에서 끊이질 않는다. 전략 상품은 현재의 시장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지만 결국 꼭지를 잡게 만드는 아이템의 전형이다. 아니면 특출난 신공을 지닌 개인 PB가 주식으로 사모펀드를 결성한다. 이 PB가 다른 하우스로 옮기면 고객들도 우르르 몰려 가다보니 기존 하우스에서는 어떻게든 잡으려 하고 새로운 하우스에서는 고액 연봉으로 대우한다. 신공이 지속된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사람의 일이라 그리고 시장 환경의 급변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가 많아 개인 PB가 전적으로 고객 관리를 한다는 게 위험할 수밖에 없다. 사실 개인 PB의 사모펀드는 재야의 '부틱'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 치명적인 것은 결국 리스크 관리가 금융회사 차원이 아닌 PB 개인에게 맡겨진다는 거다.

최근 신한금융그룹의 시도는 모범이 될 만하다. 외국계 금융회사처럼 전세계의 다양한 자산을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PB와 IB의 융합을 통해 회사 차원의 독창적 상품을 발굴해 나가고 있다. 다른 하우스에서도 부러워 할 정도의 독창적인 상품이 나오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개별 PB의 독창적인 상품 개발, 리스크 관리를 개인이 아닌 금융회사, 즉 조직 시스템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리서치에서 매크로를 분석하고 시장을 전망하며 트레이딩 파트에서 상품을 수집하고 세일즈 파트에서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종합 세트로서 금융상품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상품전략 글로벌 위원회 그리고 한국 위원회, 그리고 상품 세일즈 파트와의 공조 등 수차례의 촘촘한 과정을 거쳐 개인 고객용 상품을 내놓는다고 한다. 그 과정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매우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모습로 운영되고 있다. 개인 PB보다는 회사 전체 조직에서 금융상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PB비즈니스는 개인 PB 차원에서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개인과 조직 행동의 순발력과 민첩성의 차이가 있어 조직 차원에서 개발된 상품의 참신함과 수익률이 시장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자와 부처가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했나. 유교와 불교 철학 그 자체를 타파하자고 한 말이 아니다. 공자와 부처라는 인물, 그리고 그 관습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자는 구태에 대한 자극으로 보는 게 맞다. 개인 PB 능력에 의존하고 또 과대평가되는 국내 PB비즈니스 환경, PB가 죽어야 PB비즈니스도 살 수 있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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