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2월 13일 08: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최근 현대차 오너 일가가 소유 중이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자본시장에서 거래한 모습을 지켜보며 떠오른 사자성어다. 한번의 매각 시도가 실패했지만, 결국 지분권자가 원하는 조건에 거래가 이뤄졌다.
처음 블록세일 시도가 실패로 끝났던 날, 단독주관을 맡았던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이하 씨티그룹) 관계자들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을게다. 누가봐도 매매가 가능하리라 여겨졌던 할인율이었다. 시중에 유동성도 넘쳐난다. 게다가 클라이언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아니던가.
벌지브라켓(bulge bracket)의 영예를 누려온 씨티그룹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커다란 오점을 남길 순간이다. 씨티그룹은 당연히 현대차로부터 해고될 것이라 여기고 체념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는 씨티그룹에 한번 더 기회를 줬다. 특유의 우직함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안전에 대한 신뢰을 얻지 못하면 팔기 어려운 물건(자동차)을 만드는 기업이라 그런지, 은근하지만 묵직한 신뢰감을 준다.
권토중래(捲土重來). 한번의 기회를 더 얻은 씨티그룹에게 실패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실권주는 모두 떠안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사생결단(死生決斷), 배수의 진을 쳤으니 결과는 안봐도 뻔하다.
첫 거래 실패 직후로 다시 돌아 가보자. 현대차가 씨티그룹에게 기회를 한번 더 준 것은 백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주관사 수임을 가로채려던 투자은행들도 박수를 친다.
만약 여느 기업들이 했을 법한 방식으로 주관사를 바로 교체했다면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바뀐 주관사 입장에선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일이니 당연하다. 또 전임자가 실패했으니 후임자는 내심 편안하다. 실패하더라도 앞선 실패 사례가 버퍼 역할을 할 것이다. 그만큼 덜 절박할 것이란 얘기다.
반면 다시 기회를 부여받은 씨티그룹보다 더 절박한 곳이 있었을까. 이번에도 실패하면 당분간 국내 자본시장에서 고개를 못들고 다닐 상황에 처할 게 뻔하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두번의 실패는 없었다.
일을 맡겼으면 일단 믿어줘야 한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법도 진중해야 한다. 그게 사람을 부리는 정공법이다. 우보천리(牛步千里). 답답해 보여도 그게 가장 믿을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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