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매각 불발 이유는 기업가치·거래가격 산정 이견… 협상기간 '주가 하락' 영향
정호창 기자공개 2016-06-15 08:00:27
이 기사는 2016년 06월 14일 15: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그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제일기획 매각이 불발된 이유는 인수합병(M&A) 거래의 기본조건인 지분 매매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인수후보인 프랑스 퍼블리시스와 입장차가 컸기 때문이다. 협상 기간 중 매각 추진 사실이 시장에 알려져 증시에 상장된 제일기획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퍼블리시스는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삼성그룹과의 지분 거래 후 제일기획 주식의 추가 취득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 최대한 낮은 가격에 지분을 매입하길 원했다. 반면 삼성그룹은 최근 주가 하락을 반영해 거래가격을 산정할 경우 제일기획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헐값 매각' 또는 '주주가치 훼손' 논란 등이 제기될 우려가 있어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그룹은 13일 제일기획 매각을 위해 프랑스 퍼블리시스와 진행해 온 협상이 결렬됐으며, 매각을 재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1월 시장에 매각설이 불거진 후 5개월 만에 제일기획은 다시 온전히 삼성그룹 품으로 복귀하게 됐다.
◇주가 하락에 발목 잡힌 거래
삼성그룹이 협상 결렬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투자은행(IB)업계에선 거래 쌍방의 지분 매매가격에 대한 이견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제일기획 기업가치(EV)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큰 차이를 나타내 협상이 줄곤 난항을 겪어왔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입장차는 제일기획 주가의 불안한 흐름에서부터 비롯됐다. 지난 2월 초까지 2만 1000원 내외에서 움직이던 제일기획 주가는 매각설이 불거진 후 하락세를 타기 시작해 1만 5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제일기획이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 매각 후 경영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상장기업 M&A에서 기업가치(EV)와 지분 거래가격 산정의 기준이 되는 주가가 급변하면서 양측의 셈법도 달라졌다. 퍼블리시스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를 기준으로 주식 매매가격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그룹은 매각 추진 사실이 시장에 알려져 주가가 일시적으로 급락한만큼 대규모 변동이 발생하기 전 주가를 기준으로 거래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맞섰다.
퍼블리시스는 삼성그룹 계열사라는 '프리미엄'이 반영돼 제일기획 주가가 높게 형성됐던 것이라는 논리로 상대 주장을 반박했다. 삼성그룹은 매각 이후에도 상당기간 그룹 일감 수주가 보장될 것이므로 제일기획의 경영 안정성이나 성장성에 문제가 없어 일시적인 주가 하락은 가격 할인 요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양측이 이처럼 팽팽히 맞선 것은 각자 나름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다. 퍼블리시스는 삼성그룹이 보유한 제일기획 지분이 28.28%에 그쳐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에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퍼블리시스는 50% 이상 지분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제일기획 인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거래 종결 후 제일기획 지분을 최소 20% 이상 추가 취득해야 하는 퍼블리시스로서는 인수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삼성그룹이 보유한 지분 인수가격을 최대한 낮출 필요가 있었다.
삼성그룹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그룹의 사업재편 계획에 따라 제일기획 매각을 결정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 2만 원을 상회하던 주식을 20% 이상 낮은 가격으로 기준가를 산정해 거래를 진행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져 제일기획 지분 매각 주체인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주주들의 반발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제일기획 매각 결정과 관련해 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전횡'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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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주장 제일기획 몸값 차 1300억 이상
제일기획은 지난해 1272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현금 창출력을 나타내는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은 1664억 원을 기록했다.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며 지난 3월 말 기준 순현금 보유액은 3115억 원이다.
매각 추진 사실이 알려진 후 떨어진 주가를 감안해 주당 1만 7000원 기준으로 지분가치(시가총액)를 산출하면 1조 9557억 원이다. 순현금을 반영한 기업가치(EV)는 1조 6441억 원으로 계산된다. 이 경우 에비타 배수(EV/EBITDA)는 9.9배 수준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삼성카드가 보유한 제일기획 지분 28.28%의 가치는 5531억 원이다.
주가 하락세가 나타나기 전 평균치에 해당하는 2만 1000원 기준 지분가치는 2조 4158억 원이다. 이 경우 기업가치(EV)는 2조 1043억 원, 에비타 배수는 12.6배로 산출된다. 삼성그룹이 보유한 제일기획 지분의 가치는 6833억 원이다. 이전 계산과 1300억 원 가량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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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수 후 재매각을 목적으로 하는 사모투자펀드(PEF)의 M&A 거래 밸류에이션 평균치는 에비타 배수 8배 수준이다. 하지만 이 수치가 최근 꾸준히 높아지고 있고, 퍼블리시스와 같은 전략적 투자자(SI)의 경우 에비타 배수 11배 이상의 인수거래를 진행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일기획의 밸류에이션은 모두 M&A 시장에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한다.
관련 업계에서 제일기획이 올해 14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점을 반영해 밸류에이션을 산출할 경우 주가 2만 1000원 기준 에비타 배수는 11.6배 수준이 된다.
결국 퍼블리시스는 거래가격 기준을 상대방 기대보다 지나치게 낮게, 삼성그룹은 반대로 너무 높게 제시했기에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게 IB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양측은 제일기획 몸값 외에 거래 종결 후 삼성그룹 광고물량 보장 기간에서도 이견을 나타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일감을 5년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말 삼성그룹이 아이마켓코리아를 외부에 매각할 때 약속한 내용과 유사한 조건이다. 하지만 퍼블리시스는 향후 10년간의 광고물량 수주 보장을 요구해 삼성그룹이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 협상 결렬 사유로 지목되는 제일기획 내부 삼성 스포츠단 처리 문제는 매각 불발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IB업계 관계자는 "거래가격에 대한 입장차가 컸기에 스포츠단 처리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심도깊게 논의될 단계까지 나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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