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7월 28일 08: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만약 내가 몇 년 동안 아무런 통신수단 없이 외딴 섬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단 한가지 정보만 얻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구구성의 변화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황제로 불렸던 '빌 그로스'(Bill Gross)의 말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그 거대한 변화의 폭과 깊이가 매우 넓고 깊어서 그 어느 누구도 피해가기 어렵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이라서 매우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매우 위협적이다. 만혼(晩婚)이 저출산을 유발하고, 다인가구가 1인가구로 변화하는 등 사회적 관습이나 생활양태는 단기간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그래서 인구구조 변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 거대한 물결이지만, 일단 바뀌기 시작하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사회현상을 지배한다.
인구구조 변화의 핵심적인 두 축은 출산율과 사망률이다. 불과 50년전만 하더라도 인류의 고민은 높은 출생아 수로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식량을 걱정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낮은 출산율과 예상을 뛰어넘는 생존율, 즉 저출산과 고령화가 이제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나라의 걱정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그 동안 저출산은 그 본질적인 심각성에 비해 우려감이 덜 했다. 오히려 고령화에 더 많은 관심과 초점이 모아져 왔다. 그 이유는 고령화는 현재의 문제이고, 저출산은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고령화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당면한 과제이지만, 저출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의 보이지 않는 숙제라는 데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고령화는 '존재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 이여서 사회적 관심과 함께 개인적 관심이 크지만, 저출산은 '인간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고령화로 인구는 늙어가지만, 저출산은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대재앙이 올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소위 '58년 개띠'들이 출생아수 100만명시대를 열면서 1960년에는 4세이하 유년인구가 전체인구의 18.4% 였지만, 지금은(2016년) 4.4%로 줄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일생 동안 출산하는 아이의 수)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1.2명이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저출산과 고령화로 우리나라 인구지도는 50여년전 1960년 피라미드형(型)에서, 현재(2016년)에는 40~50대가 많은 다이아몬드형(型), 그리고 50여년뒤인 2060년에는 60대이상이 가장 많은 역삼각형 모양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는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100세시대연구소는 그동안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옥죄왔던 경쟁사회가 해체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고도성장기 한국은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였다. 빠른 경제성장은 모든 사회적 현상을 역동적으로 만들었고, 이것은 바로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거대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근원을 제공하면서 그동안 뜨거웠던 한국을 '쿨 다운(Cool down)' 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가장 강력한 경쟁구도였던 '3가지 경쟁체제'가 해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입시 경쟁체제의 해체'이다. 앞으로 5년후인 2020년이 되면 만 18세인구가 50만명으로 현재 대학정원(57만명)보다 적어지게 되어 경쟁 없이 그냥 대학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재수는 없어지고, 더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반수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2060년이 되면 18세인구가 30만명으로 줄어들어 4년제 대학정원 35만명(2015년 기준)보다 적게 되어 '전교 꼴찌'를 하더라도 4년제 대학을 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 대학은 구조조정을 필연적으로 할 것이고, 강의방식도 온라인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경쟁체제의 해체는 가정에서의 사교육비 감소로 이어질 것이며, 이에 따라 부모세대의 노후준비에 도움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취업경쟁 체제의 해체'이다. 일할 의사가 있는 생산가능인구를 '경제활동인구'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청년(15~29세)의 취업자수(창업+취업)가 380만명인데 반해 청년의 경제활동인구는 420만명이여서 약 40만개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그래서 청년실업이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6년후인 2022년에는 청년경제활동인구수가 370만명으로 줄어들어 일자리가 남아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실업'이라는 말도 없어지고, 어쩌면 면접도 안보고 청년을 모셔가는 기업이 나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된 직장에서 퇴직한 고령자들간의 취업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따라서 단순 저임금 노동시장은 고령자들이 상당 부분 채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도 현재의 일자리수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일자리수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재의 일자리수가 줄어들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주택구입경쟁의 해체'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구 중에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0가구 중 6가구에 불과하다(62%). 그러나 앞으로 가구구성원의 수가 빠르게 변하면서 이 양상도 바뀔 것이다. 올해(2016년) 3인 이상의 가구수는 860만가구에서 20년후인 2035년에는 700만가구로 줄어드는 반면, 2인 이하 가구수는 약 1000만가구에서 약 1500만가구로 크게 늘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택구입 의지와 경제력이 약한 1인가구의 경우 1990년 100만가구에서 2035년에는 760만 가구로(전체의 34%) 무려 7배나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잠재적인 주택구입의 수요층인 청년가구는 지속적으로 줄어 2035년에는 5.2%에 불과 할 것으로 보여 주택공급에 비해 수요가 줄어들어 경쟁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이러한 가구구조 변화는 소형주택으로 중심으로 이루어질 공산이 커 보이며, 그에 따라 주택가격의 차이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뜨거운 경쟁(Hot competition)'의 시대에서 '쿨 다운(Cool down)'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을 힘들게 했던 3대 경쟁체제가 붕괴될 것이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그러나 그 원인을 살펴보니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경쟁의 필요조건은 수요과 공급의 불균형이다. 그 동안 많은 수요를 채우지 못한 적은 공급 때문에 '한국형(型) 경쟁'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한 경쟁체제의 완화는 공급의 증가이지, 수요의 감소가 아니다. 저출산은 수요감소의 출발점이다. 저출산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경쟁체제의 해체는 결국 우리나라 전체의 경쟁력 약화와 경제력 둔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저출산으로 인한 경쟁체제의 붕괴는 예상치 못한 혁명적인 사회문화적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그래서 경쟁체제의 붕괴는 희망적이지만 슬픈 것이다. '슬픈 희망'(Gloomy Hope)이다.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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