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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이라고 하는 새로운 정석(定石) [WM라운지]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 연구소장공개 2016-03-30 11:19:00

이 기사는 2016년 03월 28일 1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의 한 수가 아니라 그 수밖에는 둘 데가 없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의 대국에서 유일한 1승이었던 제4국에서의 소위 '신의 한 수'라고 불렸던, 백 78수에 대해 이세돌 9단이 한 말이다.

바둑의 역사는 아주 길다. 바둑은 중국 전설상의 성군인 요임금이 아들 순임금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만든 교육도구라고 하지만 실제 그의 재위시기가 기원전 24세기로 추정되니 솔직히 믿기 어렵다. '맹자'에 "지금 바둑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잘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 등 논어나 맹자에 바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최소한 2500년은 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번 세기의 대국에서 인간의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이 겨우 1승을 하면서 결국 1승 4패로 인공지능에게 패하자, 2500년의 인류의 경험과 지혜의 무력화와 미래에 대한 많은 걱정과 우려, 더 나아가 공포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세계 사람들 중 특히 한국사람들의 충격이 큰 듯했다. 대국장소가 한국이고, 인공지능과의 대국자가 한국기사였으니 어쩌면 당연할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아니 창조자와 피창조물의 위치가 어쩌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이자 충격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대결은 줄곧 있어왔다. 그중 서양장기라고 하는 '체스'는 이미 1997년 IBM의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가 체스 세계챔피언이 었던 러시아의 '가리 카스퍼로프'를 이긴바 있다. 이후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바둑에 도전장을 던져 지난해에(2015년) 유럽챔피언인 판후이 2단을 5대 0으로 이긴바 있다. 바둑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적은 체스의 챔피언을 이긴데 이어 바둑의 세계 최고수를 이겼다는 점 자체가 인간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본질은 다른데 있는 듯하다. 바둑에는 인간들만의 맛과 멋이 있고, 그것을 승화한 예술의 경지를 어떻게 기계가 능가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혹은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바둑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다케미야가 보여 주었던 '우주류'(宇宙流)니, 기세(氣勢)니 하는 멋과 느낌을 기계는 알까? 조훈현의 제비처럼 날쌘 '발빠른 행마'를 과연 인공지능은 감지할까? 약점이 없이 두둑한 이창호의 '두터움의 미학'을 과연 컴퓨터가 느낄 수 있을까? 대략 이런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그런 멋이 승화되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바둑세계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소위 정석(定石)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방법론을 기둥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정석(定石)이 무엇인가? 바둑에서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고 인정한 일정한 방식으로 돌을 놓는 법'을 정석이라고 한다. 즉 정석은 바둑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수 천년 동안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바둑의 정수인 셈이다. 그래서 바둑에 처음 입문하면서 잡는 책이 바둑의 정석을 설명한 책들이다. 포석이며, 행마며, 끝내기까지 정석의 세계는 깊고도 넓다. 그런데 알파고는 그 정석의 세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알파고의 기풍(棋風)은 우주류도 실리도 아니었으며, 발빠름과 두터움의 어느 한쪽에 서있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인류는 바둑을 두면서 새로운 정석을 만들어 냈다. 시행착오와 새로운 시도가 축적되어 오늘날의 정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알파고 승리의 파장에는 인간이 수 천년 간 축적해온 경험과 지혜의 산물인 바둑정석의 본질적인 재평가도 있을 것이다. 이번 인류와 컴퓨터의 대결이 시사하는 바는 너무나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밀려온다는 사실과 그에 맞게 적응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세상에는 언제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도 해법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인류의 평균수명이 2배이상 늘어난 '기적의 100년' 20세기에태어난 세대들은 노후준비에 있어서도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는 자식농사가 노후준비이던 시절이 있었다. 절대불변일 것 같았던 그 부동의 공식도 이젠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연금제도의 역사가 30년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식농사 다음으로 선호되었던 전통적인 노후대책은 '자산의 연금화'전략이었다. 즉, 스스로가 생애소득을 차곡차곡 모아서 자산으로 구축한 후 그 자산을 스스로 연금화하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먼저 금융자산을 스스로 연금화 하는 전략이다.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본인의 저축금액을 은행에 예치하여 그 이자로 노후생활비를 충당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제약이 따른다. 먼저 금융자산의 이자소득이 노후생활비가 되려면 꽤 큰 규모여야 한다는 사실과 적당히 높은 이자율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금리 10% 시절에는 과거 10억 원의 저축이 있는 은퇴자는 원금 훼손 없이 매월 833만 원의 이자수익으로 아주 풍족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1.5%의 초저금리 시대에는 67억 원이 있어야 매달 833만 원의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10억 원도 큰돈인데, 67억 원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모아둔 돈이 10억 원이라면 이자수익으로만(금리 1.5%시, 월 이자 125만 원) 가지고 '자산의 연금화전략'은 불가능하다. 결국 저축한 원금을 허물어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을 연금화하는 방법이다. 아파트나 상가, 혹은 오피스텔을 구입하여 거기서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노후 생활비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절대 저금금리시대가 되면서 빠르게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 오피스텔의 임대수익률은 5.42%로 2010년이후 최저수준이다. 반면 평균매매가격은(2016년 1월) 2억1973만 원으로 지난해 1월에 비해 97만 원이나 올랐다. 가격은 오르고 수익률은 하락한 셈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오피스텔 한 채를 가지고 있다면 매달 99만 원의 임대수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러나 상업용부동산의 가장 큰 위험요인인 공실(空室)에 대한 부담과 임대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으로 이 역시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결국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석(定石)을 찾아야 한다. 인류역사상 수만년간 이어온 가장 전통적인 노후대책의 정석인 자식농사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30년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 연금역사에서 '스스로 구제했던' 자산의 유동화 정석도 절대저금리시대에 이미 무력화되었거나, 앞으로 유효한 수단이 아닐 공산이 크다.

그래서 요즘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우리나라 노장년층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자산 중에 과다한 부동산비중'문제를 오히려 장점이자 대안으로 만든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 60세이상 가구주의 부동산비중은 자신의 총자산중 81%에 이른다. 50%도 채 되지 않는 미국 등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다. 그만큼 노후생활에 있어서 현금흐름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이 큰 것이다. 이달에 정부의 '내집연금 3종 세트'까지 보태져서, 40~50대 중년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보완책까지 마련되었다. 최근 누적가입자수가 3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주택연금은 마르지 않는 샘물, 자식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수돗물"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는 아니어도 주택연금은 3층 연금전략(국민,퇴직,개인연금) 위에 한 층 더 올릴 수 있는 '4층 연금전략'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우리가 추구하고 마땅히 노력해야 할 것은 가장 교과서적인 3층연금전략이라는 것을. 특히 그 중에서도 본인의 의지가 꼭 필요한 개인연금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노후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세돌 9단이 "신의 한 수가 아니라 그 수밖에는 둘 데가 없었다"라고 한 것처럼, 노후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사람은 주택연금 등을 활용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연금이라는 새로운 정석(定石)으로 안정되고 윤택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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