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1월 22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A 기업 발행주식의 60%가 거래되는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은 6000억 원, 이 기업의 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오너 지분 30%에 대한 M&A 시장에서의 가치는 1조 원.# 1%도 되지 않는 지분을 보유한 경영자가 사업 방향과 전략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B 기업. 보유한 자산만 팔아도 시가총액 몇 배의 현금이 창출되는 기업.
A 기업과 B 기업의 예는 극단적이다. 경영자가 지분을 많이 보유해도, 그리고 너무 적어도 주식시장에서 가격 왜곡 현상이 심해진 경우로 우리나라 기업 그리고 주식시장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이 두 기업의 공통점은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주가보다 경영권에 대한 가치가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선진국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대략 10~20% 정도면 적절한 것으로 보고 주가도 그 차이만큼 간격을 두고서 움직인다고 한다. M&A 매물로 나온 지분 가격의 실질적 벤치마크가 주식시장에서 형성된 주가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주식시장의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같은 기업의 주주인데도 불구하고 경영자가 보유한 한 주와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인 주주의 한 주의 가격 차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장기 투자는 시장 가격이 주식의 정확한 밸류에이션에 근접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정확한 밸류에이션이란 저평가된 주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유한 주식의 가치에 어느 정도 수렴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기업의 빈틈 없는 본질적 가치를 시장이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식 투자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네덜란드 틸부르대학의 교수인 동시에 필립스인터내셔널의 부사장인 에릭 베르메울렌(Erik Vermeulen) 씨는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특수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는 최대주주가 아닌 소수지분을 보유한 경영자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게 한국 기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에서의 주주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과거 수많은 석학들이 한국의 재벌 문화를 거론하며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해소되지 않은 진행형의 문제로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시장의 주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변하는 해외 기업 사례를 소개했다.
같은 선상의 고민으로, 가치 투자를 지향하는 숨은 고수인 모 운용사 대표는 한국에서 '장기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경영권 지분 대비 디스카운된 자본시장의 주가가 본래 가치로 수렴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트렌드 혹은 성장 잠재력에 포커스를 맞추는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니면 '저평가가 너무 심해서 기술적으로라도 오를 수밖에 없는 주식'에 투자하는 정도라고 한다.
국내에서 장기투자 문화의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다. '망하지 않는 기업에 오래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단순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주가를 본래 가치로 올려주지 못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이 지론에 대한 설득력을 희석시킨다. 혹시 과거 라자드 시절 대박을 터뜨린 한국 기업의 주식은 고성장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럼 앞으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수익률 부진과 자금 이탈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존리 대표에 대한 변명인 동시에 우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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