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日 FI와 '맞손' 배경은? 냉철한 현실 인식 반영… '실익 극대화' 노린 전략적 선택
정호창 기자공개 2017-04-06 08:16:18
이 기사는 2017년 03월 31일 08: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업계 2위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재무적 투자자(FI)와 연대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배경이 주목된다.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SK그룹이 이번 딜을 둘러싼 복잡한 거래 환경과 '경우의 수', 인수 여력 및 필요성 등을 종합 분석, 현실적으로 가장 확률 높은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평하고 있다.
◇日 정서상 외국계 SI 인수 가능성 '희박' 판단
IB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전략적 투자자(SI)와의 제휴 대신 FI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인수 전략을 짠 것에 대해 '외국 SI 인수 가능성이 높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재계에 자국 반도체 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을 해외 기업에 넘기는 것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자국 언론의 입을 빌어 '도시바 반도체의 외국 기업 매각 반대'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각에선 기술 유출 가능성이 높은 중화권 업체로 매각 방향이 결정될 경우 '외환 및 대외 무역법' 등을 통해 일본 정부가 매각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인수합병(M&A) 업계 관계자는 "외부 변수의 영향이 전혀 없다면 자금력과 인수 의지가 높은 홍하이 그룹 등 중화권 SI와 손잡는 게 유리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중화권 후보는 숏리스트에 들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일본 정서상 웨스턴디지털(WD)과 같은 미국 기업이 유리한 판세지만 이들은 자금력에 약점이 있어 하이닉스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SK그룹 수뇌부들은 하이닉스 역시 외국계 SI에 대한 견제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 보고, 지분 일부라도 손에 넣거나 최소한 딜을 완주하려면 일본계 파트너와 협업하는 게 최선이라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재무 부담·리스크 감안시 '마이너 지분' 인수가 유리
관련 업계에선 이번 딜의 결과에 대해 일본 FI가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고, 잔여 지분 중 일부를 미국 업체나 SK하이닉스가 인수하는 형태로 마무리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현지 매각 분위기와 딜 사이즈 등을 감안하면 일본 자본이 경영권 지분이나 34%의 비토권 지분을 인수하고, 미국 기업과 하이닉스가 소수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가 유력해 보인다"며 "천문학적 인수 비용과 리스크를 홀로 감당할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SK그룹 내부에서도 도시바 반도체 지분 전체를 높은 재무적 부담을 안고 인수하는 것보다, 당초 계획처럼 20% 수준의 소수 지분을 확보하고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는 것이 합리적이란 의견이 우세했다는 후문이다.
SK그룹 사정에 밝은 M&A 전문가는 "실사 등을 통해 도시바 반도체 기술력 등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얻기 전까진 무리하게 경영권 인수를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게 SK 내부 분위기"라며 "컨소시엄을 구성한 FI에 주도권을 주고 소수 지분 확보를 노리는 인수 전략을 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분석도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차세대 제품인 3D 낸드플래시 부문에선 도시바와 하이닉스 등 제조업체간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라며 "일단 소수 지분을 인수한 뒤 향후 확실한 필요성을 느낄 때 FI의 지분을 추가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게 합리적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낮은 인수 실패 부담, 완주만 해도 '절반의 성공'
중화권 기업이 인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크게 불리할 게 없다는 점도 SK하이닉스가 공격적인 인수 전략을 들고 나오지 않은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이나 미국 기업이 도시바 반도체 새 주인이 될 경우 낸드플래시 시장의 경쟁구도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 존재하는 사업자는 삼성전자와 도시바, 웨스턴디지털(WD),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인텔 등 6개 업체다.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중 도시바 반도체 인수자가 나오면 사업자 수가 5곳으로 줄어들어 과점 구조가 보다 공고해진다. 일본 내에서 소화된다면 현재 구도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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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하이 등 중화권 기업이 인수후보에서 배제될 것이 유력해 보이는 현재 매각 분위기를 감안하면, SK하이닉스가 20조 원의 거액을 투자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바꿔 말하면 인수 실패 부담이 적은 셈이다.
반면 지분을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인수전을 끝까지 완주해 도시바 반도체 기술력과 실상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실사 기회를 얻는다면 SK하이닉스가 얻게 될 소득은 적지 않다. SK하이닉스가 미국과 중화권 SI 대신 일본계 FI를 컨소시엄 파트너로 선택해 인수전 조기 탈락 가능성을 낮춘 이유다.
시장 관측대로 경영권 지분을 일본 자본이 인수하고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SK하이닉스가 각각 20% 수준의 지분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를 얻는 셈이 된다. 사실상 시장 사업자가 한 곳 줄고, 향후 낸드플래시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더라도 최소한 도시바, 웨스턴디지털, SK하이닉스 3자간 출혈경쟁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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