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7월 12일 08: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쑥대밭이 됐다. 와해 직전의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는 7대 CIO인 강면욱 전 본부장이 지난해 7월 돌연 사표를 낸 후 1년 넘게 비어있다. 최근에는 CIO 직무대리와 뉴욕사무소장마저 잇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주식운용실장, 해외증권실장, 해외대체실장 등 투자를 책임지는 실무진의 자리가 공석이라는 점은 더 문제다.
국내주식 운용과 리서치, 포트폴리오 관리 등을 책임지는 주식운용실장도 김종희 채권운용실장이 겸임 중이다. 채준규 전 주식운용실장은 2015년 삼성물산 합병 당시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 내용을 조작한 사실이 최근 내부감사에서 드러나 해임됐다.
최근 사의를 표명한 조인식 CIO 직무대리는 해외증권실장을 겸하고 있다. 해외증권실은 해외주식·채권, 외환, 외화단기자금 등의 운용을 책임지는 곳이다. 국민연금은 2023년까지 해외주식 투자 비중을 전체 투자의 30%까지 늘리기로 한 바 있다. 해외 인프라와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해외대체실도 최형돈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상반기에 기금운용역 38명을 뽑으려 했으나 지원자가 적어 20여명 충원에 그쳤다. 대체투자 집행은 최근 6개월간 마이너스(-) 5000억원이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책임질 사람이 없고 실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올해 4월까지 기금운용 수익률은 연환산 기준 1.66%에 불과했다. 지난해 7.28%에 크게 못 미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기금운용본부장을 새로 뽑기 위해 공모를 진행했지만 치유가 쉽지 않은 깊은 상처만 입었다.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는 서류 및 면접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석연치 않게 탈락해 '코드 인사' 논란을 촉발했다. 이 과정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덮기 위해 오히려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연출했다.
이 모든 것이 전 정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개입 혐의로 국민연금 조직 전체가 적폐 시비에 휘말린 것과 무관치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도구를 활용해 민간 기업의 지배구조를 손보려는 당국의 의지를 국민연금이 거부할 방법이나 명분은 없어 보인다. 곽 전 대표가 석연치 않게 탈락한 배경도 여기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공모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누가 되더라도 공정성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국민의 노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 기금은 '정권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돈'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치 않은 모양이다. 과거 정권에 비해 좀더 교묘하게 국민연금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목적은 연금재정의 장기 안정과 미래 원활한 연금 급여 지급을 위해 운용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제1 덕목은 '운용능력'일 수 밖에 없다. 운용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영입하기 위해 벽을 허물어야할 당국이 오히려 새로운 장벽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요즘 TV를 통해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다. 광고에 나온 시민들이 '죽을 때까지, 국가가 보장하는 안전한 연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자, 이미 그런 연금을 갖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국민연금이 바로 그런 연금이라고 말이다.
실력있는 사람들 모두가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광고를 하는게 맞는지 수익자로서 화가 치밀 뿐이다. '허위, 과장 광고'라고 신고라도 해야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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