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3월 05일 10: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일병원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지난 1월 서울회생법원 회생절차에 진입한 데 이어 딜로이트안진과 흥국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자율구조조정프로그램(ARS)을 진행하고 있다. 4월까지 부여된 ARS 프로그램의 기간은 제일병원에게 소중한 그야말로 '골든 타임'이다.일각에선 출산률 저하가 제일병원의 추락을 불러왔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려움은 내부에서 비롯됐다. 선대 이사장의 타계 이후 삼성서울병원의 위탁 경영을 받던 제일병원은 2006년 현 이재곤 이사장의 취임 후 대규모 외연확장을 시작했다. 본관과 외래센터의 리모델링은 물론 암센터와 건강검진센터의 신축도 이때부터 이뤄졌다. 당시 제일병원이 우리은행 등 은행권에서 일으킨 차입은 1000억원을 넘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확대한 부인암 분야는 이미 ‘빅4'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의 영역이 된지 오래였고, 도심 인근의 인구가 수도권 신도시로 빠져나가며 잠재적 고객인 배후인구도 크게 줄기 시작했다. 충분한 고민이 없었던 투자는 도리어 제일병원을 어렵게 만들었다.
건축비용으로 사용한 은행 차입은 금융비용의 증가를 불러왔다. 원금은 커녕 매년 수십억원의 이자를 지불하기에도 병원은 벅찼다. 여기에 이사장 일가는 매년 20억원이 넘는 돈을 병원에서 임대료 명목으로 가져갔다. 본관과 외래센터가 위치한 병원 부지 가운데의 소유권이 이사장 일가와 가족기업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의 정당한 행사라고는 해도, 금융비용 부담이 상당했던 병원에서 임대료를 꼬박꼬박 챙겨간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여성병원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속된 경영난과 이사장 일가의 전횡이 알려진 탓에 브랜드 가치 역시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의료계와 IB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우수한 의료진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너지는 제일병원을 떠나야했고, 가까스로 진료를 재개한 병원은 의사가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아직 제일병원에게 기회는 남아있다. 회생절차에 진입한 제일병원을 인수하겠다는 원매자가 시장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7년 호텔롯데를 새 주인으로 맞이한 늘푸른의료재단의 보바스기념병원이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좋은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
다만 그동안 인수의향자 대부분이 컨소시엄 형태로 제일병원에 접근했던 탓에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속된 경영난과 임금체불로 지칠대로 지쳐버린 병원 구성원들은 인수 이후 컨소시엄 참여자 간의 갈등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내비친다. 십시일반하여 국내 최초의 여성병원을 살리겠다는 몇몇 컨소시엄의 순수한 의도는 높이 살만 하지만, 병원 구성원과 채권자들을 안심시킬 경영계획과 비전도 함께 제시해야 마땅하다.
제일병원은 남은 한 달의 ARS 프로그램 기간동안 1300억원을 투자할 인수자를 찾을 수 있을까. 제일병원은 ARS 프로그램이 끝나면 성사 가능성을 알 수 없는 회생계획안 인가전 M&A에 돌입해야만 한다. 아직 결말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제일병원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오랜 전통의 제일병원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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