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와 생명, 한쪽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삼성 미전실 해체 2년]⑩당국 '일방향' 지배구조 재편 압박…'금융 포기 외에 답 없다' 해석도
김장환 기자공개 2019-04-18 08:15:24
[편집자주]
삼성그룹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지 2년이 지났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 이름을 바꿔가며 60여년 동안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전실의 해체는 삼성의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전실 해체 후 삼성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한계가 무엇인지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4월 17일 11: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조(삼성전자)와 금융(삼성생명)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같다."삼성과 오랜 기간 다방면에서 거래를 해온 투자금융(IB) 업계 고위 인사가 꺼낸 말이다. 업계 다수 관계자들 사이에서 삼성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해법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란 게 정설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책은 이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다.
당국 말대로 지배구조를 정리하려면 필요한 자금이 엄청난 수준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국이 법적으로 막혀 있는 사안들의 활로를 모색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없이 '알아서 해법을 찾아오라'는 메시지만 던지고 있다. 미래전략실이 사라진 지금 알아서 해법을 찾을만한 조직도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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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주사 지배구조 실현 가능성 낮아
경제당국 수장들이 그동안 언급해왔던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초점은 금산분리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분리하라는 취지다.
그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지주사 전환이다. 국회 계류 중인 보험업법이나 주요 경제 당국 수장들의 발언은 모두 이같은 배경을 담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중간지주사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중간지주회사로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을 나누면 삼성물산을 통해 실효적인 지배가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현재로썬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금융중간지주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 실현하려면 국회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한 때 이를 시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삼성 특혜법'이란 이유로 반대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삼성 지배구조를 이쪽으로 끌고 가려면 공정위가 해결책을 약속해야 할텐데 그런 것은 없다.
금융중간지주사 법이 통과되더라도 걸림돌이 있다. 금융지주회사법에는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회사의 지배주주가 돼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배주주가 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23%를 가진 최대주주이다.
삼성생명이 이를 해소하려면 삼성전자 지분을 2대주주인 삼성물산 보유 지분(4.65%)보다 떨어뜨려야 한다. 많게는 삼성전자 지분 4% 가량을 없애야 한다. 삼성전자의 현 주가(약 4만7000원)를 고려하면 시가로 10조원 넘는 주식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6일 기준 280조원 규모다. 4% 지분만 계산해도 12조원에 육박한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가면 좋겠지만 이를 실현할 만한 돈이 없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유동성은 지난해 말 기준 2조원 안팎에 불과하다. 외부 조달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삼성 겨냥한 보험업법 개정안 …수십조원 자금 필요
보험업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삼성을 겨냥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자산 대비 3% 이상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종전까진 취득가를 기준으로 3%룰을 적용했지만 개정안은 시가를 반영하도록 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확보한 삼성전자 주식은 5억2983만8713주 가량이다. 장부상 취득가는 5746억원이지만 원가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 주식 가치가 24조원대로 올라선다.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시 삼성생명은 15조원 넘는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 한다. 앞서 말처럼 삼성물산은 이를 가져갈 능력이 없고, 이 부회장 등 일가가 개인적으로 흡수하기에도 과도하게 큰 금액이다. 삼성생명이 해소해야 할 삼성전자 지분을 장중에 그대로 풀어야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 경우 이재용 부회장 등 특수관계자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15% 미만까지 떨어진다.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주총 특별결의안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인 33.34%대까지는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수십조원대 자금이 필요한 일이다.
◇생명-전자 분리…둘중 하나 포기하라는 말
삼성에 대한 정치권과 당국의 시선은 '금융 소비자의 돈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 아니냐'는 데에서 출발한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고리를 끊으라는 것이 골자다. 결론적으로 삼성생명의 지분을 팔아서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면 다양한 이슈에서 자유로워 진다.
삼성생명을 정리하게 되면 지배구조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자금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다. 삼성물산 등이 대규모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이를 삼성전자 지분 확대 실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건희 회장 등 총수일가 및 특수관계자가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은 약 47%로 8조원대다. 이 중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은 19.24%로 3조3000억원 정도다.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하면 매각시 이보다 훨씬 많은 대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도 삼성생명 정리시 증여·상속세 마련 부담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20.76%) 총 가치는 3조5000억원 가량이다. 경영권 수반 지분 증여시 붙게 되는 할증율이 15%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현 상태에서 물려받을 경우 2조3000억원대 세금을 내야 한다. 삼성생명 매각을 수반한 지분 증여시 할증을 안 받게 된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보유한 11조원 넘는 삼성전자 지분(4.18%) 증여·상속세도 해결해야 해서 많은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반대로 삼성생명만 지키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삼성의 상징과 같은 삼성전자를 외부에 매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 하나만 잃어도 그룹 자산(360조원)의 60%가 사라진다. 삼성전자를 정리할 경우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디스플레이 등 사업적으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자회사들도 포기가 불가피하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당국과 교착관계를 풀고 모든 걸 지켜내는 방안이다. 결국 이를 풀어내려면 대외협력 창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관을 통해 국회의 법안 통과를 적극 이끌어내고 공정위 등 정부와 협의를 거쳐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미전실 해체 후 삼성의 대관 업무는 크게 약화된 상태다.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도 없다. 지배구조를 풀라는 압박은 있지만 이를 해결할 조직은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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