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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영화 뒤에는 기업은행이 있다 ①영화 극한직업 수익 4배…2012년 1월 문화콘텐츠금융부 신설, 은행업계 유일

이은솔 기자공개 2019-09-06 09:40:46

이 기사는 2019년 08월 30일 11:1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저녁에는 매일같이 약속을 잡아 공연계 사람들을 만나고, 핫(hot)한 최신 공연 정보를 수집한다. 주말에는 밤 12시마다 영화관객수를 새로 고침하며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지 점쳐본다. 영화 제작자도, 공연 기획자도 아닌 이 사람들은 은행원이다.

IBK기업은행에는 어느 은행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부서가 존재한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투자를 전담하는 '문화콘텐츠금융부'다. 2012년부터 문화콘텐츠 투자를 시작한 기업은행은 굵직굵직한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입소문이 난 독립 영화까지 잘 되는 영화에는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며 업계의 큰 손으로 등극했다.

현재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는 연평균 25편의 영화에 200억원 내외를 직접 투자하고 있다. 아울러 벤처캐피탈에 지분을 출자하는 방식의 간접 투자도 종종 진행한다. 상반기 개봉한 영화 기생충에는 유니온콘텐츠투자조합을 통해 1억 2000만원을 간접 투자했다.

올 1월 개봉한 극한직업은 1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역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톱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고, 유명 감독도 아니었던 만큼 이 정도 흥행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들은 극한직업에 직·간접투자를 합쳐 8억원을 투자해 300%가 넘는 대박을 쳤다.

지난해에는 신과함께 1, 2편에도 총 20억원을 투자해 100%의 수익을 얻었다. 영화는 도합 26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제작비가 워낙 높아 극한직업보다는 수익률이 낮았다. 안전한 대형 영화에만 투자한 것도 아니다. 소공녀, 리틀포레스트 등 작품성을 인정받아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독립영화들도 기업은행의 투자를 받고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다음 타자로는 최근 개봉한 유열의 음악앨범을 기대하고 있다.

극한직업 포스터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 조폭 영화도,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복잡한 문화 투자의 세계

콘텐츠 투자는 성공하면 수백 퍼센트의 대박을 내는 만큼 실패했을 경우의 손해도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 전 시나리오와 감독, 배우 등을 꼼꼼히 검토하는 단계가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하다. 은행은 주로 영화 초반보다는 후반부에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CJ, 쇼박스 등 대형 배급사들이 자체적으로 투자해 촬영에 돌입하고, 중반 이후부터 외부 투자를 조달한다.

기업은행은 5~6단계를 거쳐 종합적으로 콘텐츠를 심사한다. 1차 검토를 통해 몇 가지 작품을 선정하고, 부서 전체가 시나리오를 읽고 의견을 교환한다. 이후 투자제안서를 작성하고,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투자 실무 협의회를 열어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국책은행인 만큼 수익성 외에 선정성, 폭력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폭력적 장면이 들어간다면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극 전개상 필수적인지 검토한다. 가령 영화 악인전에 등장하는 잔인한 장면은 극중 범죄 조직 보스인 마동석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투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유명 감독의 작품이라도 묘사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잔인한 경우에는 투자를 반려했다. 이외에도 주제가 정치적이거나 다수가 공감할 수 없을 경우에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다.

기업은행 트랙레코드


◇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콘텐츠 시장…인맥·정보가 핵심

대박 난 작품에는 좀 더 투자할 걸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사람 욕심이다. 강경모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차장은 "마음 같아서는 100억원 짜리에 100억원 다 투자하고 싶지만, 안 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별로였는데 영화가 잘 나오는 경우도 있고, '이건 무조건 된다' 싶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흥행에 참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충무로의 특성상 한 번 재밌다는 소문이 돈 감독의 작품에는 투자자가 몰린다. 극한직업이 그런 케이스였다. 하지만 제작비는 정해져 있는 만큼 투자 가능한 금액에 한계가 있었다. 강 차장은 "그래서 평소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분이 있던 제작자에게 비교적 빨리 연락했고, 덕분에 부분 투자자 중 가장 많은 7억원을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문화콘텐츠 투자는 불확실성에 베팅해야 한다. 한 번 공개되면 상품성을 잃는 문화콘텐츠의 특성상 투자자도 완성본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맥 관리와 정보 수집이 생명이다. 김규목 문화콘텐츠금융부 팀장은 "문화콘텐츠 투자는 실물을 보기 전에 결정해야 하는 아파트 청약과 똑같다"고 설명했다.

문화콘텐츠금융부 팀원들은 시나리오 뿐 아니라 감독의 전작, 배우 평판, 업계에 도는 소문까지 온갖 정보를 수집한다. 강 차장은 업계에서의 인맥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맨 정신에 전화해 이 영화 잘 나왔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잘 나왔다'고 하는데, 저녁에 만나 술 한 잔 하고 물어보면 '사실은...' 하면서 솔직한 얘기가 나온다."

문화콘텐츠 투자에서 전문성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누구나 보고 평가할 수 있어서 투자가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장 형성 초기 단계고 실패 시 리스크가 커 신중함이 요구된다. 투자자는 대중의 마음을 읽고 업계 인맥 관리를 통해 정보력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작품성, 흥행요소, 작품 외부 리스크까지 관리해야 한다. 문화콘텐츠 금융에 가장 먼저 뛰어든 기업은행이 이 분야를 꽉 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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