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2월 18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KCGI가 한진그룹을 상대로 오너 경영인을 후선으로 물리고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자는 주주제안을 내놓았다. KCGI의 제안대로 한진칼 이사회가 구성된다면 국내 재계 역사상 처음으로 적대적 경영권 찬탈을 노리는 외부세력이 합법적으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이사회를 장악하는 사례가 된다. 또 국내 항공업 역사상 처음으로 적대적 M&A 세력이 국적항공사의 경영권을 획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KCGI의 액션 플랜에는 반도그룹이 참여했고 오너 일가 중 한명인 조현아씨가 동참했다. 이 외에도 일부 주주들이 KCGI의 제안에 동의, 주총에서 표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KCGI의 한진그룹 경영권 공격은 문재인 정부 들어 스튜어드십코드 등으로 갈수록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는 펀드자본주의의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기업을 세워 매출을 만들어내고 수익을 올리는 기업가 정신도 중요하지만 일부분 자본시장의 도움으로 커온 기업은 자본시장에 그 대가를 반대급부로 내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주주행동주의'에도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하지만 KCGI와 한진그룹간 주총 표대결에 앞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2000년대 중반 국내 재계에서 한창 이슈가 된 '소유-전문 경영인간 우월성 논란'이다. 과연 주주행동주의가 내세우는 전문적 경영 집단이 긴 세월 가족 경영으로 기득권과 책임감을 다져온 오너 경영인보다 더 나은 경영성과를 낼 수 있는가. 일반 주주를 우선하는 펀드자본주의 세력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세력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의식이다.
상당히 많은 투자가들과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KCGI와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행보에 공감하고 동의를 보내지만 재계 또 다른 많은 관계자들은 그 반대편에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수개월 전 만난 한 기업 오너 경영인은 책임있고 능력있는 아들이라면 경영권을 물려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문경영인을 모셔 기업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은 반재벌정서가 강한 국내에서 일견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한꺼풀만 더 벗겨 생각해보면 외부 집단도 능력이 있을 수 있으나 책임감 있고 경험있는 오너 경영자 역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뜻도 동시에 갖고 있다.
외환위기 후 자본시장 개방이 본격화 하자 SK그룹은 2000년대 중반 해외 헤지펀드 세력의 경영권 공격을 받았다. 소버린 사태다. 이 사건 이후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오너 경영과 비오너 경영의 효율성 논쟁이 일었다. 여기저기서 소액주주 운동이 나왔고 지배구조 펀드 및 행동주의 펀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집중 타깃이 된 기업 중 10여년이 지난 지금 더 나은 경영성과를 보여준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당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상장 기업의 약 40%는 '소유(오너)+전문 경영 통합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 오너 홀로 기업 CEO를 맡아 경영하는 비중은 대략 40%였다. 나머지 약 20%는 전문경영인이 오너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확언할 만한 결과가 나온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소유(오너)+전문 경영 통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 더 나은 성과를 보여줬음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오너 경영만이 만능도 아니고 전문경영인 집단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결과인 셈이다.
비자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국내 굴지의 자동차 그룹, 수많은 비리에 연루돼 검찰 수사가 끊임없었던 국내 최대 재벌그룹. 이들이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냈음은 행동주의 펀드나, 펀드 자본주의 세력의 논리와는 배치되는 결과들이다. KCGI의 지적을 무시해서도 안되겠지만 조씨 오너 일가 경영이 '죄악'이라는 극단적인 시각 역시 기업 지속가능성에 그리 큰 도움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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