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득한' 마라톤 플레이어 김영기 신한BNPP 본부장 [매니저 프로파일]강력한 한방 아닌 안정적 수익 추구, 간판 '좋은아침희망펀드' 4년 수익률 30%
김시목 기자공개 2020-03-10 07:44:10
이 기사는 2020년 03월 06일 08: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단기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률을 올린 운용역은 많다. 하지만 꾸준하게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낸 실력자는 손에 꼽힌다. 특히 대형 운용사에서만 자금을 굴리는 매니저로 좁히면 수는 더 줄어든다. 20년 이상 커리어 대부분을 주식만 바라본 김영기 BNP파리바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사진)은 겸손함 일색이지만 그 자부심만큼은 남다르다.김 본부장의 투자 철칙은 단순명확하다. 단기 고수익보다 꾸준한 장기 성과를 지향한다. 가치투자를 원칙으로 하되 중소형보다 대형가치주를 중심으로 한다. 대형가치주 역시 상황에 따라 비중을 빠르게 조정한다. 구조적 성장주와 업종 톱픽(Top pick)에 대한 선제 투자와 가격 메리트 기반의 안정적 수익 실현은 트레이드 마크다.
특유의 스타일과 확신은 펀드 성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과 그의 위상을 높인 ‘좋은아침희망펀드’의 수익률은 금융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큰 부침이 없었다. 책임 매니저로 펀드를 전담했던 2010년 이후 4년간 누적 수익률은 30%에 달했다. 이후 매년 주식형 펀드 수익률 상위권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공모 펀드를 대부분 후배들에게 넘기고 조단위 기관 자금에 집중한다. 연기금 및 공제회, 보험사 등 십수년 간 그를 거쳐간 큰 손들은 여전히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 한 대형 기관에는 연평균 수익률 6%대를 사수하며 믿음에 화답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이름 석자가 담긴 공모 펀드 출시란 큰 꿈도 조각 중이다.
◇성장 스토리: 공부 잘하던 모범생, 방황 끝에 안 주식
김 본부장은 어린 시절 공부 잘하는 소위 ‘모범생’이었다. 위로 누나만 넷이라 집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 역시 자연스레 즐겼다. 자칫 공부만 잘 할 뻔 했던 성향이 자연스럽게 친구는 물론 형, 동생들과 원만히 교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시끌벅적하거나 산만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과 비교하면 튀진 않았지만 조용히 존재감을 길렀다.
1988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특출난 결과였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잘하는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금방 극복할 줄 알았지만 방황은 꽤 오래 이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고 회상한다. 특히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의 방황은 별다른 계기없이 입사한 곳에서 끝났다. 첫 직장으로 택한 대한투자신탁(현 하나금융투자) 초반에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1997년 초년생 시절 두 달 간의 투신협회(현 금융투자협회) 펀드매니저 수료 1기 과정을 마치고 길고 길었던 암흑이 걷히는 느낌을 받았다. 단번에 펀드 매니저란 직업에 매료됐다.
대한투자신탁에서 처음부터 주식 운용 외길만 걷진 않았다. 1996년 입사 후 2001년에는 경제학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짧지만 채권매니저도 했다. 2001년부터 리서치 센터에도 몸을 담았다. 그는 리서치 센터에서의 4년을 평생 자신의 커리어 토대를 쌓은 시기로 기억한다. 주식 종목에 대한 깊이 있는 스터디와 그만의 내공을 기를 수 있었다.
그는 외형상 대한투자신탁에서 하나UBS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등 다수 금융투자회사를 옮겼다. 대한투자신탁이 하나금융지주 산하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레 하나UBS자산운용으로 옮긴 점을 제외하면 이직이 드물었다. 하나UBS자산운용과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으로의 복귀 결정은 CIO(최고투자책임자), 전략본부장 등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 본부장은 “대학시절 그동안 잘했던 공부가 하기 싫어지면서 정말 끝없는 방황의 연속이었다”며 “투신협회 수료 과정이 별거냐 할 수 있지만 큰 트리거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주식 매니저를 하면서 점점 자신감도 붙었고 인사이트(통찰)도 생기면서 정말 별뜻없이 시작했던 일이 정말 천직이라 여길 정도로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투자 스타일 및 철학: 안정적 장기 성과 추구
김 본부장의 투자 스타일은 세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액티브 스톡피킹(Active stocking picking, 개별종목 선정)과 철저한 보텀업(Bottom up)이다. 구조적 성장주와 업종 톱픽에 대한 선제적이고 장기적인 종목을 선별한다. 이 같은 투자 방식은 15년 이상 대표 매니저로 오랜 기간 업계 상위 플레이어로 자리잡는 동안 새긴 원칙이다.
동시에 패시브 에셋올로케이션(Passive asset allocation) 전략도 병행한다. 매크로에 따른 과도한 업종 베팅과 종목 선정을 지양해 변동성을 통제한다. 가격 메리트 기반으로 역발상 투자를 펼치는 점도 그의 주무기다. 히스토릭 밸류에이션 밴드(Historic valuation band)를 활용해 최악의 국면에서 저점 매수로 역발상 투자를 단행한다.
그는 “화려한 단기 성과보다 꾸준한 장기 성과를 내는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다”며 “가치투자를 원칙으로 하되 대형가치주 중심으로 종목을 선정하고 이 경우 역시 박스권이라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비중을 조절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랜 기간 대형 운용사에서 대표 매니저로 자산을 운용하면서 터득한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업종 중립을 유지하는 철저한 분산투자를 전제로 한다. 업종 내 톱픽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는 판단이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이 인하우스 리서치 인력과 실무진에 상당한 힘을 들이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펀드 성과가 직결되는 부분이 바로 리서치에서 올라온 톱픽 선정으로 확신한다.
김 본부장은 “짧지만 강렬했던 리서치 경험이 주식 매니저로서 기본을 쌓았던 시기”라며 “심플하게 보면 ‘안정적인 장기 성과’ 창출 수요는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으로 복귀하기로 했을 때 큰 동기는 전략본부장이라는 새로운 길이었지만 결국 운용 파트가 내 길인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트랙레코드1 : ‘좋은아침희망펀드’ 꾸준한 장기 수익
김 본부장은 대표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연간 1조원 이상을 운용했다. BM(벤치마크) 대비 단 한 번도 언더퍼펌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꾸준함의 대명사로 통한다. 특히 대형 보험사 변액펀드의 경우 BM 대비 20% 아웃퍼폼하기도 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공모 펀드들이 코스피 대비 초과성과를 내는 중심엔 그가 있었다.
‘좋은아침희망펀드’는 그의 분신과도 같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성장형 운용팀장을 맡으면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용을 맡았다. 이후 4년간 그가 직접 책임 매니저를 맡았다. 펀드를 이끌던 시절 수익률은 한때 연간 30%에 달했다. 그 맡기 전에도 이후에도 하우스는 물론 업계 간판 펀드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앞서 하나UBS자산운용 수석운용역으로 몸담으며 내놓은 ‘블루칩바스켓’, ‘FC에이스(하나UBS First Class Ace)’ 펀드 역시 그의 히트 상품들이다. 특히 ‘FC에이스’ 펀드는 2005년~2007년 펀드를 운영하면서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수익률이 47%, 67% 수준을 기록했다. 2006년의 경우 한 자릿수 수익률에 그쳤지만 BM 대비 선방한 결과였다.
최근 김 본부장은 연기금 및 공제회, 보험사 등 큰 손들의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데 집중한다. 운영 중인 공모 펀드들은 후배들이 분담해서 맡는다. 그가 운용하는 기관 자금은 1조5000억원을 상회한다. A 기관은 1조원 넘는 자금을 맡겼다. 연간 수익률은 6.72% 수준, 5년 누적 수익률은 30%를 상회한다. BM 대비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김 본부장은 “화려한 수익률에 대한 레코드보다 대형운용사의 대표매니저로서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해 온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대부분 액티브 펀드들이 시장대비 부진했던 최근 3년 성과에서도 돋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연기금 및 공제회 등 기관 자금을 운용하면서 연평균 시장대비 6%, 총 20% 가까운 초과수익을 시현했다”고 덧붙였다.
◇트랙레코드2 : 간판 펀드의 부침 ‘많은 성찰’
‘좋은아침희망펀드’가 그의 상징과도 같은 건 마냥 성과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으로 옮긴 후 2007년 1조원을 웃돌던 펀드 설정액이 최근에는 수년간 공모 펀드 둔화와 맞물리면서 1000억원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그의 손을 떠나 후배들이 운영하고 있지만 김 본부장에겐 그 자체로 아쉬움이 크다.
‘좋은아침희망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 펀드 규모는 조단위에서 일시에 3000억원으로 급락했다. 당시 그는 시장에 거스를 수 없는 역부족을 경험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2005년 본격적으로 주식 매니저의 길을 가면서 가능성과 확신을 가졌지만 나름의 시련을 안겨준 시기이기도 했다.
2008년은 시장 전반이 극도의 암울한 시기였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하락한 것은 물론 전 운용사와 펀드 등에 예외가 없었다. ‘좋은아침희망펀드’도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 그나마 BM 대비 상대적으로 선방한 결과가 위안거리였다. 다행히 악재가 가라앉으면서 2009년 이후 ‘좋은아침희망펀드’는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는 “시장이 크게 소용돌이 치면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경험을 뼈저리게 했다”며 “’좋은아침희망펀드’가 대표펀드이자 애정이 가는 이유도 대표 매니저로서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모 펀드 외 기관자금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그때 경험은 평생 돈주고 살 수 없었던 학습”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평가 : 혹독한 리서치 역량, 좁지만 깊은 관계
김 본부장은 업계에서 깐깐하고 신중함이 진득한 인사로 묘사된다. 사실 그가 만들어낸 꾸준한 성과의 비결 역시 이런 성향 덕분이란 평가가 많다. 단기 최상위 수익보다 어렵기로만 따지면 꾸준한 장기 수익이 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기관 돈을 맡긴 큰 손들 역시 김 본부장의 이런 성향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안에서는 리서치 경험을 기반으로 후배들에게 요구 사항도 많고 눈높이도 상당하다. 사실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분석을 인하우스 애널리스트들에게 강력히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는 대형 운용사 중 인하우스 애널리스트들의 출중한 자질과 역량이 김 본부장 효과란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업계 동료들의 경우 철저한 분산투자 기반의 안정성 선호 매니저로 평가한다”며 “금융을 비롯 내수주 투자에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도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눈높이나 기대치가 높다보니 후배들이 어렵고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매니저나 애널리스트 모두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 스스로는 본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공적인 부분에서 만큼은 혹독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의외로 털털한 성격이라고 자평한다. 성향상 새로운 인물과 계속해 교감하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운용과 관련해 타인을 통해 획득한 정보는 대부분 거르는 편이기 때문에 일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맥까지 모두 배제하진 않는다. 그가 거친 대한투자신탁, 하나UBS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에서 쌓은 관계들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특히 대한투자신탁 시절에 다양한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직간접 경험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반추한다. 홀로 시간을 보낼 때는 책을 읽거나 미국 드라마 시청에 흠뻑 취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통틀어 대한투자신탁 선배들이 제 피와 살”이라며 “특정 인물이 아닌 선배들이 가진 각각의 장점들을 체화할 수 있었던 게 큰 도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굳이 따지면 오지랖이 넓은 편이 아니고 끈끈한 관계를 더욱 깊게 가져가는 편”이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이 줄면서 혼자 취미들을 가져보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계획: ‘김영기’ 담긴 펀드, 가치투자 지속
올해 52세인 그는 가장 잘하는 주식 운용을 최소 70세까지는 하길 원한다. 어디에 적을 두던 주식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나 뜻만큼은 분명하다. 앞서 대형사 대표 매니저로 15년, 본부장으로서 8년차인 지금도 내리막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성장 중이란 평가를 받길 원한다. 최근 50대 후반에도 1조원 이상 자금을 굴리는 매니저들도 다수 등장했다.
‘김영기’란 이름이 담긴 펀드를 시장에 내고 싶다는 포부도 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트랙레코드를 쌓아 온 대형사 간판 인사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지금은 공모 펀드 운용보다는 기관들이 맡긴 조단위 자금 운영에 집중하고 있지만 현재 성과라면 언제든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확실했다.
김 본부장은 가치투자 토대의 철학과 원칙을 지켜온 만큼 워렌 버핏의 투자 스타일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지지한다. 그가 아끼는 책들 중 다수가 워렌 버핏과 관련된 도서들이다. 심지어 외부의 눈에서 본 워렌 버핏과 관련된 책마저 독파했다. 그 역시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지런한’ 가치투자를 하고 싶다는 뜻이 명확했다.
김 본부장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앞으로도 꾸준히 가고 싶다는 바람”이라며 “가장 먼저 있는 생각은 70세까지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하는 주식이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할 수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이름이 담긴 공모 펀드를 통해 시장에 다시 한번 매니저로서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은 생각이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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