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운용사 열전]베스타스 해외 투자의 '시작과 끝', 박병준 부사장건설사·자문사 출신 매니저…백지부터 일군 베스타스 해외 트랙 레코드
김수정 기자공개 2020-04-01 13:07:24
[편집자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잠했던 부동산펀드 시장은 2016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자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큰폭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르면 올해 부동산펀드 시장 규모는 1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더벨은 그동안 시장을 일궈온 부동산 운용사들과 그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키맨(Key man)들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3월 30일 13: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베스타스자산운용의 해외 부동산 트랙 레코드는 전적으로 박병준 부사장(CIO·사진)이 일군 성과다. 그가 합류한 이후 베스타스자산운용은 비로소 해외 부동산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5%에 불과했던 베스타스의 해외 부동산 비중은 박 부사장을 해외투자본부장으로 맞이한 지 1년 만에 60%에 육박했다.박 부사장은 건설사와 외국계 부동산 투자자문사, 자산운용사 등을 거치면서 일찍이 해외 부동산 개발·투자를 경험했다. 베스타스자산운용으로 적을 옮긴 뒤 백지 상태였던 해외 트랙 레코드를 빠른 속도로 채워 나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할 만하다.
앞으로도 그는 해외 위주로 투자 기회를 찾을 계획이다. 해외와 더불어 그가 소관하는 국내 부문에선 물류센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베스타스자산운용의 주요 주주로서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건설사에서 부동산 자문사, 그리고 운용사 '정착'
박 부사장은 국내 대형 건설사와 외국계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거쳐 자산운용사에 정착했다. 시공부터 투자 컨설팅 그리고 직접적인 투자에 이르기까지 부동산에 관한 광범위한 커리어를 쌓았다.
초창기 박 부사장의 사회 생활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여진 속에서 이어졌다. IMF 충격으로 멀쩡하던 회사가 쓰러지고 쟁쟁하던 선배들이 갑자기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평생 직장'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조직의 힘에 기대 연명하듯 직장생활을 하다가는 언제 나가떨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점점 '나만의 경쟁력 있는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런 상황에 우연히 어느 일간지에서 발견한 기사 하나는 변화의 불씨가 됐다. IMF 이후 속속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부동산 서비스 회사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이들 부동산 투자자문사들의 업무는 해외 투자기관이 국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매물 발굴부터 딜 설계까지 전 과정을 컨설팅하는 것이었다. 그로서는 완전히 생소한 분야였다. 처음엔 '이런 게 다 있구나' 싶었는데 기사를 읽을수록 그 분야에 매료됐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기사에 등장한 4개 회사의 대표번호를 알아내 무작정 전화를 걸고 이력서를 보냈다. 그렇지만 관련 경력이 전무했던 그가 기회를 주려는 곳은 없었다.
포기해야 하나 싶던 찰나 마지막 희망이던 CBRE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대학교 같은 과 선배인 문흥식 현 머큐리자산운용 대표가 당시 CBRE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게 행운이었다. 당시 문 대표가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기에 CBRE는 문 대표와 비슷한 스팩의 인력을 영입하려던 참이었다. 박 부사장은 2002년 3월 CBRE에 입사했다. 이후 3년3개월 동안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맥쿼리, 프루덴셜, HP, SC은행 등 대형 외국계 투자자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2004년 도입된 간접투자회사법은 박 부사장을 운용업계로 이끈 결정적 계기다. 해당 법이 제정되면서 국내 운용사들도 부동산 펀드를 설정, 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 무렵 외국 투자회사들의 국내 부동산 매입을 바라보는 시각은 '국부유출'로 굳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점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상황에 국내 기관들도 펀드를 통한 대형 부동산 투자가 가능한 여건이 조성됐다. 박 부사장은 CBRE에서 습득한 선진 부동산 투자 노하우를 국내 운용사와 투자자들에게 전수하기로 했다.
CBRE에서 박 부사장과 함께 활동하던 팀 전체가 2005년 6월 칸서스자산운용으로 이동해 부동산팀을 꾸렸다. 이들은 주로 국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처음으로 직접 크고 작은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박 부사장의 관심은 해외 부동산으로 빠르게 확장됐다.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10살 때부터 약 5년 간 미국 생활을 한 것까지 따지고 보면 박 부사장은 인생의 4분의 1을 가량을 해외에서 보냈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동경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결국 9개월 만에 칸서스자산운용을 떠나 미래에셋자산운용(당시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이머징 시장 위주로 해외 투자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미래에셋에서 그는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에 있는 오피스 빌딩인 '상하이 미래에셋타워'와 신천지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샤마럭스 서비스드 아파트' 투자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미래에셋을 떠나 삼성SRA로 이동하기까지 1년 반 가량은 국내 부동산 디벨로퍼 STS개발의 중국 자회사인 잠시 근무했다. 북경 테이파에 그는 대형 할인점 테스코의 물류센터·매장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심양·북경 지역 3개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LG전자에서는 회사 소유 부동산이나 신규 투자 부동산에 대한 관리 업무를 했다.
◇삼성SRA자산운용, 투자 커리어 '본격화'
박 부사장은 이후 삼성SRA자산운용에서 본격적인 트랙 레코드를 쌓기 시작한다. 미래에셋을 떠나 북경 테이파(TEIPA)와 LG전자를 잠시 거쳐 2011년 3월 삼성SRA자산운용(당시 삼성자산운용 부동산부문) 투자1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5년여 동안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과 유럽 투자를 총괄했다.
이 기간 천안·조치원 홈플러스와 런던 '30크라운플레이스', 잠실 '향군타워', 독일 스투트가르트 탈레스 본사, 프랑크푸르트 '실버타워', 보름스 보쉬 물류센터 등 투자를 주도했다. 삼성SRA의 첫 해외 블라인드 펀드인 '글로벌 코어 오피스 펀드'(GCOF) 1호를 5000억원 규모로 조성한 것도 그의 성과다. 이 펀드는 이후 2호까지 설정돼 운용되고 있다.
박 부사장은 잠실 향군타워 프로젝트와 영국 30크라운플레이스 투자를 삼성SRA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딜로 꼽는다. 잠실 향군타워 프로젝트는 삼성 계열사들이 온 힘을 집결한 몇 안 되는 협업 케이스다. 삼성그룹이 개발 법인을 만들어 재향군인회가 갖고 있던 땅을 매입했다. 삼성생명이 PF를 일으켰고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했다. 삼성SRA자산운용은 펀드를 조성해 준공 예정인 잠실 향군타워 B동 건물을 선매입했다. 준공 후 건물 전체가 삼성SDS 사옥으로 15년 임대되는 조건이 붙었다.
전체 프로젝트 매입가 4000억원 중 2000억원을 에쿼티로 조달했다. 펀드 조성의 첫 관문은 해외투자자 모집이었다. 당시 삼성SRA자산운용이 인가를 받기 위해 내세운 조건 중 하나는 해외투자자 비중 50% 이상을 3년 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 펀드 조성 금액의 절반을 해외 투자자로부터 받아야 했다.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과 접촉한 끝에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를 섭외했다. 당시로선 한국 투자 기회가 전무했던 CPPIB는 첫 한국 투자에 앞서 까다로운 심의와 실사를 6개월 간 이어갔다. 국내 LP들은 3개월도 안 돼 투자승인을 완료한 채 CPPIB를 기다려야 했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투자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총출동하는 프로젝트라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투자자들이 투자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임의로 특정 기관에 많은 양을 배분했다가는 원성이 나올 상황이었다. 그래서 세운 원칙이 지금까지 삼성SRA 펀드에 출자한 누적 금액에 비례해 투자 한도를 배분하는 것이었다. 당시 모 기관은 주어진 물량에 불만을 품고 '차라리 안 하겠다'고 가버렸다. 당시 담당자는 여전히 박 부사장에게 농담 섞어 이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30크라운플레이스는 삼성SRA자산운용이 분사 후 진행한 첫 해외 투자다. 상사였던 최영욱 당시 전무와 런던으로 출장을 떠났다. 당시 런던 시장에 나온 매물은 30개 정도였다. 처음에는 차를 타고 다녔지만 교통편이 열악하고 교통 체증이 심각해 나중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많은 건물을 둘러본 끝에 선택한 게 30크라운플레이스다. 런던 금융 중심지에 위치한 준공 3년차 새 건물로 글로벌 로펌 핀센트 매이슨을 장기 임차인으로 보유한 매력적인 자산이었다.
박 부사장은 특히 런던 동-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망 '크로스레일'의 역사가 도보 5분 거리에 신축될 예정이란 점에 주목했다. 런던의 낙후된 교통 환경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기에 이 같은 획기적인 교통 개선 가능성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SRA자산운용은 2013년 독일계 자본으로부터 이 건물을 2000억원에 사들였다. 해당 자산은 2018년 중국계 투자자에게 3000억원 넘는 가격에 팔렸다.
◇베스타스에서 '전성기'…과거 투자 엑시트 성공 사례 '속속'
설립 3년차 되던 무렵부터 삼성SRA자산운용에 대한 모회사 삼성생명의 리스크 관리와 통제가 점점 엄격해졌다. 초기엔 한 발 물러나 지켜보던 삼성생명은 투자 규모가 커지자 그간 진행한 투자들에 대한 중간 점검에 나섰다. 투자 건마다 샅샅이 실사를 진행하는 한편 향후 투자는 그룹 결재를 받아야 진행 가능하도록 투자 프로세스를 개편했다. 이후 투자할 때마다 모회사의 간섭을 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LP들과 실사까지 마친 딜이 그룹 승인을 받지 못해 타사로 이관되는 일까지 생겼다. 그가 삼성SRA자산운용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배경이다.
이직을 결심한 이후 국내 대형 운용사와 부동산 전문 운용사들로부터 러브콜이 왔지만 모두 뿌리치고 베스타스자산운용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외부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느냐였다. 또 하나 그가 베스타스자산운용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해외 투자 트랙 레코드가 백지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미 잘 하고 있는 곳에서는 잘 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맨땅에 헤딩' 식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베스타스자산운용에서 박 부사장은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2016년 이후 베스타스자산운용이 진행한 모든 해외 부동산 투자는 온전히 박 부사장이 일군 성과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첫 출근으로부터 일주일 만에 출장을 떠나 딜을 따왔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이 딜이 베스타스의 첫 해외 투자인 영국 아마존 물류센터 건이다. 이후 미국 시장까지 활동 무대를 넓혔고 유럽에서도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핀란드 등 전역으로 투자지역을 확대했다.
박 부사장은 "해외 레코드가 없었던 만큼 내가 합류한 이후 베스타스의 해외 성과는 오로지 내 트랙 레코드가 된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며 "부동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가 대표로 있는 점 등도 좋게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4년이 조금 지나도록 한결같이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고 성과를 우리 멤버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박 부사장은 처음 부동산 운용 시장에 발 들인 이래 누구보다 오랜 기간, 탄탄한 투자 트랙 레코드를 쌓아 왔다. 베스타스에서 조성한 펀드 중에선 아직 청산 사례가 없지만 이전 직장에서 수행한 투자들은 이미 엑시트 사이클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청산된 박 부사장의 프로젝트 가운데 손실을 남긴 사례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회사에 거액의 성과보수를 안겨주고 있다.
일례로 잠실 향군 프로젝트가 청산되면서 삼성SRA자산운용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액과 순이익을 기록했다. 성과보수를 받으면서 펀드 운용보수가 750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가량 급증했다. 향군 타워 B동은 지난해 NH투자증권-유경PSG자산운용 컨소시엄에 6000억원 초반 가격에 매각됐다. 보통 자산운용사들이 매각 차익의 10~15%를 성과보수로 수취하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SRA자산운용이 이 딜로 벌어들인 성과보수만 최대 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밖에도 30크라운플레이스와 탈레스 본사 등 투자에서 최근 엑시트와 함께 적잖은 매각차익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부동산 '방점' 지속…'아들도 다니고 싶어하는 회사' 목표
박 부사장이 선호하는 전략은 '코어플러스'에 가깝다. 투자 자산을 찾을 때 그는 가격이 적정 수준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누가 봐도 좋은 물건은 이미 비싸 수익률 면에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보완 가능한 부분이라면 일단 검토 대상으로 올린다. 박 부사장이 베스타스에서 진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인 세이프코플라자가 좋은 예다.
그는 이 건물을 사들인 이후 총 28곳인 임차인들의 재각각인 계약 기간과 임대율을 최적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더 나은 임대조건을 갖추고 나면 매각 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박 부사장은 "남들이 가치의 정점을 찍어놓은 걸 비싼 돈 주고 사는 건 내가 할 역할은 아니다"며 "약간만 손보면 코어가 될 수 있는 물건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엑시트다. 박 부사장은 항상 어떻게 엑시트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딜을 발굴한다. 미래의 엑시트 대상을 특정한 뒤 그들이 선호할 만한 자산인지 검토하기도 한다. 삼성SRA자산운용 시절 진행한 30크라운플레이스 투자를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박 부사장이 주목한 건 영국 현지 자본의 부동산 매각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한국보다 한 템포 늦게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설 조짐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이 같은 요인들을 감안해 현지에서 오피스 매물이 많이 나와 가격이 낮을 때 사서 중국·일본 자본이 본격적으로 유럽까지 진출하면 제값을 받고 매각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러한 청사진에 부합하는 자산을 찾았다. 실제 30크라운플레이스 엑시트는 이 계획대로 이뤄졌다.
엑시트 계획은 최소 펀드 만기 1~2년 전에는 매각 완료한다는 생각으로 잡는다. 그래야 시장에 갑작스런 악재가 나와도 대응 가능하다. 만기 2년 전 매각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준비하다가 변수가 발생하면 1년 정도 매각을 미루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만기가 임박해 매각을 추진하다가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 헐값에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펀드 만기를 연장할 수도 있지만 모든 투자자들로부터 만기 연장 동의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박 부사장은 "어떤 투자자한테 처음에 잘 설득해서 투자를 받을 순 있지만 엑시트가 잘 안 되면 그 다음부턴 그 투자자의 투자를 못 받는다"며 "항상 엑시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엑시트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자산운용업계의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그는 해외 위주로 대형 투자를 이어갈 방침이다. 해외투자 규모를 늘리는 동시에 물류에 특히 전문성을 쌓고 있다. 국내 투자는 물류센터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내 오피스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판단이다. 최근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SRA자산운용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첫 블라인드 펀드 조성에 나섰다. 연내 공모펀드 인가도 받아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양질의 투자처를 제공할 계획이다.
박 부사장의 중장기적인 바람은 '아들도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 베스타스자산운용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상반기 내 회사 자기주식을 추가 취득해 현재 5% 수준인 지분율을 10%대로 높일 예정이다. 이후 그는 등기임원이 된다.
박 부사장은 "과거 함께 일했던 후배들이 회사 초기 불확실성이 컸음에도 기꺼이 조인해줬고 회사와 대표는 우리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줬다"며 "이처럼 좋은 임직원들이 베스타스의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주 시드니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농담 삼아 '우리 회사로 오라'고 말하곤 한다"며 "그 정도로 좋은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박병준 베스타스자산운용 부사장 주요 약력
△1996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96년 한라건설
△2000년 삼성물산 해외영업기획부
△2002년 CBRE 코리아
△2005년 칸서스자산운용 부동산팀
△2005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야간 MBA
△2006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본사 부동산 투자1본부·중국사무소
△2009년 북경 테이파(TEIPA)
△2010년 LG전자 버티컬사업개발팀
△2011년 삼성SRA자산운용 투자1팀
△2016년 베스타스자산운용 투자부문장(CIO)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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