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4월 16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퇴근할 때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어있는 시를 보면 온전히 감탄하기 힘들다. 작가가 무명이니 이게 정말 잘쓴 시인지, 그냥 문학적 소양이 얕아 뭘 읽어도 쉽게 감동받는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부터 한다. 대단한 작가의 이름이 달려있으면 별것 아닌 글 한줄도 심오해 보일텐데. 좋은 시를 지어놓고도 유명세가 없어 이런 회의에 시달리는 이들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예술만큼이나 이름의 가치가 크게 작용하는 곳이 부동산 시장이다. 얼마 전 호반건설 신사옥에 마련된 호반써밋 모델하우스를 취재차 방문했다. 세련되고 고급스럽기로는 알아주는 브랜드 파워의 아파트들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 말을 들어봐도 상위 건설사 아파트설계는 웬만하면 ‘거기서 거기’란다. 하지만 집을 아무리 잘 지어봤자 브랜드의 벽을 넘지 못하면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기는 요원한 일이다.
호반건설은 30년간 전국에 14만 가구를 공급했다. 작년에는 주택사업으로 시평 10위까지 올랐으니 아파트 짓는 노하우로 따지면 그만한 베테랑이 드물다. 그러나 이런 짬밥으로도 재건축 노른자위라는 강남권 수주에선 매번 문턱 근처도 못가보고 넘어졌다. 강남에 입성하려면 브랜드 위상이 높아야 하는데 이 위상이란 것이 강남에 들어가야 얻어지는 터라 좀체 비집고 갈 틈이 안보이는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오가 남다른 모양이다. 최근 신반포15차 재건축 수주에 뛰어든 호반건설은 경쟁사들이 놀랄 정도로 엄청난 조건을 내걸고 있다. 조합에 400억원어치에 가까운 무상품목뿐 아니라 0%대의 사업비 대출이자를 제시했다. 더 놀라운 대목은 이렇게 전례없는 파격적 조건에도 호반의 승률이 여전히 희박하다는 점이다.
“호반써밋이나 호반베르디움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뭐 얼마나 되겠어요?” 건설사 취재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강남권에선 당장 몇억 이득을 보는 것보다 브랜드 이름값이 최우선이라는 얘기다. “나중에 집값을 생각해도 그렇고 톱브랜드 아파트에 살아야 체면도 살죠.” 그가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호반이 맞붙는 상대는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이다. 특히 '래미안'을 앞세운 삼성물산은 5년만에 주택시장에 돌아와 왕의 귀환이라는 술렁임까지 일었다. 복싱으로 비교하면 도무지 체급이 안맞는 뻔한 싸움인 셈이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링에만 올랐다가는 호반이라는 이름을 뚜렷이 새길 수 없다.
복싱의 신이라는 무하마드 알리가 뭐라 했던가.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알리의 이름을 각인시킨 유명한 경기에서 그가 연달아 펀치를 날리며 외친 말이 있다. "내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이 뭐냐고!(What's my name? What's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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