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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가 된 '삼성SDI' 사명 thebell note

원충희 기자공개 2020-09-18 08:19:45

이 기사는 2020년 09월 17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명에는 설립취지와 역사가 담겨 있다. 그래서 알파벳으로 구성된 기업명을 마주할 때마다 무엇의 약자인지를 물어본다. 삼성SDI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전자업계를 출입하기 전까지는 삼성SDI를 삼성SDS와 잘 구분하지 못했다. 둘 다 일반소비자들이 알기 어려운 B2B기업인만큼 낯선 게 사실이다.

삼성SDI에서 S는 삼성, D는 디스플레이 혹은 디지털, I는 인터페이스 또는 인터넷 컴포넌트를 의미한다. 1970년대 진공관과 흑백 브라운관을 시작으로 80년대 컬러TV용 브라운관 양산체제를 확립하는 등 이곳의 뿌리는 디스플레이 사업이었다. 그래서 회사명이 삼성전관이었고 1999년부터는 SDI가 됐다.

지금은 상호 외에 디스플레이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소형전지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코팅물질과 회로보호제 등 전자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로 탈바꿈한 상태다. 2000년 리튬이온 2차전지 사업에 진출한 이후 주력이었던 디스플레이 사업을 분리하고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등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한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

체질개선이나 사업다각화를 넘어 아예 DNA를 통째로 바꾼 셈이다. 국내 정상의 소재·배터리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변화무쌍한 50년을 보낸 삼성SDI의 상호는 이제 디스플레이를 의미하지 않는 고유명사다.

이런 연혁을 가진 삼성SDI에게 '보수적'이란 평가가 꼬리표처럼 붙은 것은 다소 의외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 경쟁사들이 막중한 부담을 감수하며 공격적 투자에 나서는데 반해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두고 속도조절에 들어가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적으로도 다른 기업에 비해 진행상황을 잘 오픈하지 않는 성향이 한몫했을 거라는 게 삼성 안팎 관계자들의 평이다.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중대형 전지의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두고 앞다퉈 고속주행에 나서는 경쟁사들과 달리 과속을 경계하는 모습이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다.

'보수적'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옹호하며 유지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흑백·컬러 브라운관에서 전자소재와 소형전지로, 전기차 배터리와 중대형 전지로, 시대와 그룹의 변화에 맞춰 자신의 업(業)을 바꿔온 이 회사의 반백년 히스토리를 알게 되니 보수적이란 한마디로 평하기가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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