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10월 16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장'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모임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재계에선 사장보다 높은 직위, 그룹을 총괄하는 경영인을 의미한다.회장은 상법상 직책은 아니다. 상법상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인은 '대표이사'라 부른다. 회장은 기업이 조직 관리를 위해 만든 '직급'이다.
'회장'은 일본식 직제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 기업의 직급은 회사마다 시대마다 달라졌는데 대체로 한국과 유사하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취체역-상무-전무-사장-회장으로 이어진다. 취체역은 한국 기업의 이사에 해당하는 직급이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식 경제를 답습해왔다. 일본의 자이바츠나 게이레츠가 한국식 재벌로 변이됐고 일본식 직제가 고스란히 넘어왔다.
미국식 직체에선 '회장'에 해당하는 직책은 사실 없다. 프레지던트(President)를 사장으로 번역하고 체어맨(Chairman)을 회장으로 번역하곤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니다. 프레지던트는 대표이사에 가깝고 체어맨은 이사회 의장으로 보는 게 더 명확하다. 빌 게이츠나 팀 쿡을 회장이라 부르기 보단 의장, 혹은 CEO라 부르는 게 더 맞다.
한국 재계에서 회장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사장은 맡겨진 회사만 책임지면 된다. 회장은 그 책임 범위가 훨씬 크다. 그룹의 명운을 좌지하는 의사결정의 최종 책임자다.
회장이란 타이틀을 두고 묘한 신경을 쓰기도 한다. 벤처 1세대인 파이컴 이억기 부회장은 창업주임에도 불구하고 퇴임 전까지 '부회장'이란 타이틀을 고집했다. 고객사에 '회장'이 계시는 데 한직급 낮춰야 한다는 얘기였다.
윤성태 휴온스 부회장도 오너 경영인이면서 '회장' 직급을 쓰지 않는다. 작고한 부친 윤명용 회장에 대한 존경을 담아 회장 승진을 고사하고 있다.
최근 정의선 수석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서 정의선 회장 추대에 동의한 결과다.
정 회장의 승진으로 눈길이 가는 곳은 삼성전자다. 이재용 부회장은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회장직을 맡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사실상 삼성을 이끌며 총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언제 회장이 될까.
회장 승진엔 여러 조건이 눈에 띈다. 나이도 한 잣대다. 2014년 당시 이 부회장은 46세였다. 현재는 52세다. 구광모 LG 회장은 42세이고, 정의선 회장도 50세에 회장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 회장으로 올라선 1987년 나이는 45세였다. 이 회장이 회장에 오를 나이 조건은 이미 충족했다.
일각에선 사법 리스크를 걸림돌로 지목한다. 사법당국은 국정농단 사건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논란의 책임자로 이 부회장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회장은 상법상 직책이 아니다. 사법 리스크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 보다 '이미지'를 감안해 고사한다고 보는 해석이 적절하다.
절차나 지분 문제는 없다. 이사회의 동의 절차면 족하다. 정의선 회장 승진에 주요 계열사들이 동의한 것처럼 이 부회장의 승진에 주요 계열사 이사회가 동의를 하면 된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지분 2.6%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지분이 없어도 회장으로 추대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유의미한 수준의 지배력도 보유한 상태다.
이 회장 승진은 본인의 선택 문제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고 이사회 동의, 혹은 지지 절차만 취하면 될일이다.
이 부회장에게 회장 직급은 상징적인 이벤트다. 본인에겐 무의미할 수 있다. 이미 충분한 지배력을 확보했고 주요 의사 결정에 관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회장 타이틀을 주저하는 것은 외부 시선 탓일 것이다. 기업인, 특히 삼성을 죄인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 정치적 분위기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부회장도 회장이 될 때가 됐다. 좀 더 당당하게 경영 철학을 말하고 비전을 말할 나이가 됐다. 삼성의 기업 가치를 한 단계 올리는 것에 이 회장의 이미지도 한 몫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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