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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분리, LG의 길 그리고 SK의 길 [thebell desk]

박상희 차장공개 2021-06-02 08:12:51

이 기사는 2021년 06월 01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대기업집단 순위를 살펴보면 국내 재벌가의 계열분리 역사가 읽힌다. 창업주가 설립한 초대그룹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대기업집단을 형성하는 게 일종의 법칙처럼 자리 잡았다.

삼성그룹에서 한솔·신세계와 CJ그룹 등이 순차적으로 계열분리에 나섰고 현재 범 삼성가(家)를 이루고 있다. 현대가는 2000년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사태를 겪으며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등으로 분화됐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동생과 조카가 이끄는 HDC·KCC·한라그룹 등은 현대가 방계로 분류된다.

LG그룹은 계열분리를 가장 솔선수범한다. GS·LS·LIG·LF·아워홈·희성그룹 등이 LG그룹에서 갈라져 나왔다. 장자승계 전통에 따라 세대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형제들이 계열사로 분리 독립하는 전통을 유지해왔다. 적절한 계열분리는 LG그룹이 70년 넘게 별다른 분쟁이나 갈등 없이 평화롭게 경영권 승계를 이어온 비결로 꼽힌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사례가 있다. 바로 재계 순위 3위 SK그룹이다. SK는 계열사 수가 148개로 가장 많고 공정자산총액이 240조원에 이른다. 오너 2세인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는 아직까지 계열분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최 회장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소버린 사태를 겪는 등 외부 세력 공격으로 인한 경영권 분쟁이 발발하기도 했지만 다른 재벌가처럼 친족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SK의 전신인 선경은 최 회장의 큰 아버지 고 최종건(1926~1973) 회장이 창업했다. 최 창업주가 1973년 별세하자 사업을 함께 하던 동생 고 최종현 회장(최태원 회장의 부친)이 회사를 맡았다. 최종현 회장이 1998년 별세하면서 최 회장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그룹을 승계했다. SK는 창업 이래 두 번의 승계과정에서 다른 재벌가들과 달리 잡음이 전혀 없었다.

최 회장은 취임 20주년을 맞은 2018년 친족들에게 SK㈜ 주식 329만주를 증여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9600억원 가량이다. 재계는 20년 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해준 가족들에 진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연 그런 의미만 있었을까. SK그룹은 SK㈜를 중심으로 한 지주사 체제다. SK㈜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일각에선 SK㈜ 주식의 증여를 친족들에게 계열분리는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효과도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SK㈜ 주식을 증여받은 이는 모두 18명인데, 여기엔 계열분리설의 주인공이었던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등도 포함됐다.

최신원 회장은 10년 전인 2011년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뿌리 찾기와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SK그룹도 이제는 사촌간 계열분리를 할 시기가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SKC 경영을 책임지던 최신원 회장은 자회사 SK텔레시스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2011년말 기준 40.78%의 지분율로 개인 최대주주에 올랐다. SK텔레시스를 계열분리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SK텔레시스의 수차례 유상증자 행보는 주지하다시피 검찰의 수사로 이어졌다. 최신원 회장은 현재 2000억원대 횡령 및 배임혐의로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SK그룹의 2인자로 불리는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SK텔레시스 유상증자 건과 관련해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SK그룹이 추후 계열분리에 나설지 여부는 예단할 수 없다. 국내 재계 총수가 대부분 3·4세 경영에 이르렀는데 반해 최태원 회장은 오너 2세다. 최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중간지주사를 통해 사실상 SK케미칼과 SK가스 등을 독자경영 하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은 이같은 이유로 2018년 증여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경영권 승계에 정답은 없다. LG그룹은 세대 교체시마다 계열분리를 앞세워 경영권 분쟁 여지를 없앴다. SK그룹은 계열분리 대신 총수가 승계 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해준 친족에게 주식 증여로 화답했다. 중요한 것은 계열분리가 있든 없든 집안 내부에서 분쟁이나 갈등 없이 승계가 이뤄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SK그룹의 추후 경영권 승계가 어떤 모습으로 이뤄질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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