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I펀드 '폭망 트라우마', 주저하는 '벤치마킹' [ESG 그린워싱 주의보]③차별화 ESG 지수 '유일무이', 운용사 거부 일색…ESG 투자확신 부족, 일단 시장 추종
양정우 기자공개 2021-06-25 13:07:44
[편집자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국내외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자금 조달의 주체인 기업은 ESG 등급에 사활을 걸고, 투자를 주도하는 운용사는 ESG 요소를 감안해 타깃을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물결이 워낙 빠른 속도로 이는 탓에 '위장 ESG'라는 빈틈도 생기고 있다. 더벨이 국내 ESG 시장에서 불거지는 그린워싱(green washing) 우려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6월 23일 14: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모펀드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본연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그에 걸맞은 비교지수(벤치마크)가 필요하다. 벤치마크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은 변동성 차이(active risk)가 펀드와 매니저의 성과를 측정하는 툴(tool)로 쓰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오직 ESG만을 고려한 벤치마크가 줄을 잇고 운용사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과거 인기를 누린 사회책임투자(SRI)펀드가 결국 폭망했던 터라 일단 ESG펀드도 소극적으로 운용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ESG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탓에 공격적 투자가 낭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KOSPI 200 ESG Index, 코스피 동일 궤적…ESG Leaders 150, 운용사 외면
한국거래소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국내 ESG 지수는 'KOSPI 200 ESG Index', 'KRX ESG Leaders 150', 'KRX Governance Leaders 100', 'KRX Eco Leaders 100', 'KRX ESG Social Index', 'KOSDAQ 150 Governance index' 등 총 6개다. 환경·사회·지배구조 테마를 모두 포섭하고 있는 건 KOSPI 200 ESG Index와 ESG Leaders 150뿐이다.
이 가운데 대표 지수로 꼽히는 KOSPI 200 ESG Index의 경우 사실상 코스피(KOSPI) 지수와 거의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두 지표의 흐름 추이를 비교하면 그래프 변곡점의 시점이 일치할 뿐 아니라 이격의 정도도 미미하다. 그도 그럴 것이 KOSPI 200 ESG Index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 1~2위가 코스피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나머지 핵심 유니버스 역시 NAVER와 카카오, LG화학, 삼성SDI, 현대차 등으로 코스피 상위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만일 공모펀드가 코스피 대신 KOSPI 200 ESG Index를 벤치마크로 삼더라도 운용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SG 간판을 내건 벤치마크 자체가 코스피 지수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운용업계에서는 그나마 KRX ESG Leaders 150가 코스피 지수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 지수는 투자 상위 '톱10'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없는 게 특징이다. 비교적 시가총액이 작은 HMM과 두산중공업, SK이노베이션, S-Oil 등을 핵심 유니버스로 선택했다.
하지만 유일무이하게 코스피 지수와 차별된 국내 ESG 지수가 있더라도 운용사에서 벤치마크로 낙점을 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현재 KRX ESG Leaders 150를 비교지수로 정식 차용한 펀드는 ESG 상장지수펀드(ETF) 1~2개뿐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서는 차별화에 성공한 ESG 지수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업계도 적극적 활용을 꺼리고 있다.
공모펀드의 평가 프로세스상 코스피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으면 운신의 폭이 크게 줄어든다. 전향적으로 ESG 우등생에 투자하려다가 자칫 비교지수 추종에 실패하면 낙제한 펀드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ESG 투자 성과, 국내 실증 데이터 부족…공격적 행보 유보, SRI 악몽까지
국내에서 ESG펀드의 벤치마크로 삼을 전용 지수가 드물고 그나마 명맥을 잇는 ESG 지수마저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장기적으로 ESG 투자가 더 큰 수익으로 환원된다는 신뢰의 기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장 한켠엔 과거 '사회책임투자(SRI) 버블' 탓에 톡톡히 대가를 치렀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SRI 펀드는 2005년~2007년 국내 주식형 펀드 열풍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2011년 시장(코스피)과 차별되지 못한 수익률을 기록하며 인기가 식기 시작했다. 2012년~2018년엔 오히려 시장보다 부진한 수익률을 거두면서 전체 펀드의 규모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18년 말 기준 국내 20개 SRI 펀드 중 절반 이상(11곳)이 벤치마크 수익률(연초 이후 수익률 기준)을 밑돌았다. 이들 펀드의 비교지수가 코스피였던 만큼 시장보다도 저조했다는 뜻이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글로벌클린에너지'는 10% 대의 손실을 기록했고 '하이사회책임투자', 'HDC퇴직연금좋은지배구조40' 등 주요 펀드가 벤치마크에 못 미쳤다.
엄밀히 말하면 SRI와 ESG 투자는 결이 다르다. SRI가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선한 기업에 투자한다면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의 경쟁 우위 덕에 중장기 수익률이 높을 기업에 투자한다. 그럼에도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초점을 맞춘 투자라는 건 어디까지나 동일하다.
국내 시장과 운용사는 해외와 비교해 아직 ESG에 대한 업력이 얕고 축적된 데이터가 적다. 이 때문에 ESG 투자가 중장기적으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하다. ESG가 글로벌 '핫' 트렌드로 자리잡고 뭉칫돈이 몰리다보니 일단 뛰어들면서도 ESG 철학에 맞춘 과감한 행보를 꺼리고 있는 셈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ESG 전용 지수가 설계되고 벤치마크로 활용되는 데 시장 참여자의 의지와 신뢰가 부족하다"며 "지난해부터 국내 ESG 투자의 성적이 시장보다 우위로 집계되고 있으나 반짝 성과일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ESG 투자가 남는 장사라는 실증 데이터가 어느 정도 축적돼야 공격적 '액션'을 취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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