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공급계약' 에이프로, 뭘 노렸나 계약금액·판매처 등 핵심 내용 미공개…성장성 어필, LG엔솔과 결속 과시 효과
조영갑 기자공개 2021-08-13 07:30:35
이 기사는 2021년 08월 11일 09: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코스닥 상장사 '에이프로'가 공시한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폴란드 향 공급계약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통상적인 공시와 달리 계약금액 등 핵심 내용이 빠져 있는 탓이다. 비슷한 시기에 LG엔솔과의 계약을 공시한 디에스케이와 다른 행보다. LG엔솔이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에이프로가 추가 성장 모멘텀을 확보했다는 평가와 함께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에이프로는 지난 6일 LG엔솔의 폴란드 종속법인 LG에너지솔루션 브로츠와프(LG Energy Solution Wroclaw sp.z o.o.)와 2차전지 활성화장비 공급계약을 맺었다. 브로츠와프는 LG엔솔의 유럽 거점 기지다.
계약은 8월 6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다. 눈에 띄는 것은 계약 만료일까지 구체적인 공시를 유보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계약공시의 핵심 정보인 계약 규모, 조건, 판매처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양사가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만 공개했을 뿐이다. 에이프로는 공시유보의 사유를 경영상 비밀유지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에이프로의 이번 '블라인드' 공시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비슷한 시점에 LG엔솔 향 공급계약을 공시한 디에스케이는 확정 계약금액(165억원), 판매 공급지역(폴란드) 등 주요 내용을 모두 밝혔기 때문이다. 공급 계약기간이 1월 말로 에이프로와 같기 때문에 에이프로, 디에스케이 모두 동일한 라인에 장비를 공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NDA(비밀유지계약)와 관련된 공급 계약은 공시에서 제외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항인 계약금액을 가리고 시장에 공개한 것은 양사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사가 설정한 공시유보 종료일에 구체적인 사항을 알려도 되지만, 앞서 공시한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LG엔솔은 폴란드 돌니실롱스크(dolnośląskie)주 브로츠와프(Wrocław)시를 거점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2018년부터 EV(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돌입한 브로츠와프 공장은 지난해 말 기준 연 70Gwh(기가와트시) 생산능력(CAPA)을 보유 중이다. LG엔솔은 최근 기존 라인을 증설하면서 생산능력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관이번 계약은 증설라인에 투입되는 장비로 파악된다.
더불어 LG엔솔은 이른바 '제2거점' 건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총 100GWh까지 확대, 국내외 경쟁사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목표다. LG엔솔은 내수 중심인 중국 메이커를 제외하고,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이다. 2거점은 생산효율과 물류 등의 이점 때문에 브로츠와프와 인근 부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LG엔솔은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LG엔솔 관계자는 "유럽 2거점 관련해서는 (질문을) 확인해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 핵심 장비로 꼽히는 활성화 장비(충방전기) 등의 계약금액, 규모, 부대조건 등의 '디테일'이 들어가면 영업기밀을 스스로 노출하는 꼴이다. 이에 정보 노출을 우려한 LG엔솔의 비공개 요청이 있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 공시상 계약액을 비공개로 하려면 당사자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이프로 입장에서도 부수적 효과가 있다. 공시했다는 것 자체가 대규모 계약이란 의미인 탓이다. 한국거래소 코스닥 공시규정에 따르면 최근 매출액 대비 10% 이상의 계약이면 공시 의무가 발생한다. 에이프로는 지난해 49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단순 계산하면 이번 계약 규모가 49억원 이상이란 얘기다. 에이프로 관계자는 "NDA에 따라 구체적인 계약금액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에이프로는 지난해 고객사 투자 지연으로 인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2년간 600억원 대의 매출액을 유지하다 400억원대로 감소했다.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도 2019년 15.41%, 11.25%였으나 지난해 2.23%, 1.91% 하락했다. 연초 5만4900원이던 주가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반등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적인 공시로 파문을 던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공시를 내는 데 합의했다는 점은 에이프로의 장비가 LG엔솔의 '전략품목'임을 방증하는 것"이라면서 "LG엔솔은 경쟁사들에 에이프로가 자사의 끈끈한 협력사라는 것을 알리고, 에이프로는 향후 공급 확대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장에 알리는 효과가 있는 공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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