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모니터/삼성SDI]4인의 사외이사, '노동·재무·법률·기술' 다양성에 방점②준법위 출범 후 노동 분야 '관료→진보성향 학자' 변화 눈길
김혜란 기자공개 2021-10-13 08:06:37
[편집자주]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 대기업은 개인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효율성만큼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더벨은 기업의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10월 07일 13: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SDI는 역동성이 강한 조직이다. 50여 년 전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으로 출발했지만 1997년 배터리 개발에 착수한 지 약 13년 만에 소형전지로 세계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기술 개발에 몰두,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중 중대형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고 있다.인사 면에서도 조직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올 초 주요 경영진과 사내이사를 전면 교체했다. 지난해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등에서 화재가 발생해 리콜 조치가 이뤄지자 쇄신 차원에서 단행한 인사다. 앞서 지난해엔 사외이사도 전원 새롭게 선임하며 주요 의사결정 라인이 완전히 달라졌다.
눈에 띄는 변화는 사외이사진이다. 지난 20년간 삼성SDI의 사외이사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2011년~2013년(3명)을 제외하고는 2002년 이후 4명을 유지했다. 2014년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이사 정원이 늘면서 사외이사도 5명으로 확대됐다가 다시 4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구성원 면면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관료 출신과 법조인 위주로 사외이사진을 짰다면 2012년 전후로는 색깔이 달라졌다.
기술 중심으로 경영의 방향성이 흘러가는 만큼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잘 아는 학자를 영입했고, 노조와의 문제에서 조언을 줄 수 있는 외부전문가도 이사회에 포진시켰다.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사외이사 구성에서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뚜렷하게 읽혔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법조인·관료 출신 위주의 구성→탈피 노력
지난해 상법시행령 개정으로 현재 사외이사 임기는 최장 6년으로 제한되지만 그 이전엔 10년 넘게 사외이사를 하는 사례를 재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삼성SDI에서도 장기 재직하는 사외이사가 많았다. 직군이 교수, 정부부처 출신 인사, 법조인 등으로 제한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간 재직한 배영길 이사는 인선 당시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였다. 최병윤 이사 역시 2000년부터 9년간 사외이사로 활동했는데, 그는 대구지방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장 등을 지낸 경제부처 출신 인사였다.
두 사람과 같은 시기 사외이사로 재직한 윤영대 이사는 통계청장,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전직 관료였다. 서울지법 부장판사 장준철 이사도 2004년부터 7년간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2008년까지 사외이사진은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인 정갑영 이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법조계에 몸담은 인물이거나 전직 고위관료 출신인사들로 채워졌다.
변화의 조짐은 2009년부터 보였다. 그해 여성인 김희경 상명대 금융보험학부 교수, 임진택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등을 영입해 금융 전문성과 성별 다양성을 보강했다.
2012년엔 노동부 차관 출신의 노민기 중앙노동위원회 비상임공익위원을 영입했다. 역시 관료 출신이긴 했으나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이사회에 심었다는 점은 의미 있었다. 그가 과거 삼성 백혈병 역학조사를 책임졌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력 탓에 '방패막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6년간 임기가 이어졌다.
2014년엔 김재희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기술 전문성을 보강했다. 조흥은행장을 지낸 홍석주 로커스캐피탈파트너스 대표 같은 비관료 출신 인사도 잇달아 영입했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교수를 영입한 점도 눈에 띈다. 삼성SDI가 영위하는 전자업종에 대한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로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기술, 재무, 금융, 회계, 노동, 인권 등 다양한 키워드로 이사진 구성
이들 사외이사는 임기 6년을 꽉 채웠다. 지난해 3월로 모두 임기가 만료돼 사외이사를 모두 새로 구해야 했다. 마침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시기와 맞물렸다.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지난해 2월 탄생한 외부 조직으로, 출범 이후 삼성 그룹에 노조, 시민사회와 소통 문제 관련해 전향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삼성SDI는 이사회 구성에서 준법감시위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권오경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김덕현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여성),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최원욱 연세대 경영대 교수 등 전자공학(기술), 재무, 법률, 노동 분야의 각 전문가를 이사로 영입했다.
삼성SDI는 2010년대 들어 이미 사외이사 구성원을 다양화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노동과 법률 분야 사외이사들의 경우 과거와는 결이 다른 인물을 선임했단 평가가 많았다. 일각에선 정권과의 소통에 주안점을 뒀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박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인사로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된다. 현대자동차 노사전문위원회 대표,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등을 지내며 노사 합의 도출, 노동이사제 설계 등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준법감시위가 주목하고 있는 노동 분야에서 기존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것으로 관측됐다. 실제로 그는 올 2월 이사회에 올라온 '충남삼성학원' 기부금 출연안건에 이례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매년 반대 없이 가결됐던 사안이나, 박 연구원은 통상적인 기부금의 성격과 다르다는 이유를 들었다.
김 변호사는 과거부터 삼성이 선호했던 법률 전문가지만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맡고 있는 인권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사회 내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변호인단으로 이름을 올린 이력도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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