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 변천사]SK의 '수펙스 추구'는 어떻게 변했나최종현 선대회장이 고안한 'SKMS', 행복경영 위한 지침으로
김위수 기자공개 2022-06-09 17:29:15
[편집자주]
시대가 달라지면 기업가정신도 달라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기업과 사회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할 것. 이것이 바로 '신기업가정신'을 선포한 이유다. 더벨은 신기업가정신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은 대기업의 기업가정신을 살펴보고 미래에 한국 재계가 걸어갈 길을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6월 03일 08: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인 '수펙스(SUPEX·Super Exellent)'는 SK그룹의 지향점이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고안한 수펙스 추구법은 섬유 회사였던 선경(현 SK)을 재계 2위로 올려놓은 기반으로 평가된다.최종현 회장의 수펙스 추구는 이윤 극대화에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 수펙스 추구를 통해 글로벌 일류 기업을 만들고 기업을 키워 국가에 보탬이 되려는 사업보국을 이루려고 했다. 최종현 회장 작고 후 SK그룹의 총수가 된 최태원 회장도 수펙스 추구와 사업보국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불가능한 목표를 가능하게, 지금의 SK 만든 원동력
형인 고(故) 최종건 회장을 도와 선경을 운영해오던 최종현 회장(사진)은 1973년 최종건 회장 별세 후 경영권을 승계받아 홀로 선경을 이끌기 시작했다. 당시 선경은 섬유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견기업에 불과했다. 최종현 회장이 선경을 에너지·화학분야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예측한 이유다.
최종현 회장은 선경이 글로벌 일류 기업이 되려면 통상적인 수준의 목표 설정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다른 기업들이 세우는 목표를 상회하는 지점을 지향점으로 잡고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수펙스 추구'는 지금의 SK그룹을 만들어낸 핵심 경영이념으로 평가받는다.
'선경경영관리체계(SKMS)'에 수펙스 추구 개념이 정립된 것은 1990년이다. SKMS는 최종현 회장이 선경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한 경영관리 체계다. 1979년 첫 발표됐다. 기업이 존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최종현 회장은 강조해왔다. 당시 선경이 맞닥뜨린 변화는 세계화였다. 최종현 회장은 치열한 세계화 시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류 수준의 경영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 SKMS를 마련했다.
SKMS에 수펙스 추구법이 구체화되기 전에도 최종현 회장의 경영방식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높은 목표를 설정,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수펙스 추구 정신이 내재돼있었다.
1980년 유공을 인수하며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견기업이었던 선경의 유공 인수는 그야말로 재계를 놀라게 한 대사건이었다. 최종현 회장은 훗날 "1975년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계획을 처음 밝혔을 때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그런데 그것을 매일 생각하니까 아이디어가 나오고 방법도 나왔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목표를 이룬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해 1등 사업자로 키워낸 일 역시 수펙스 추구 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사안이라는게 내부의 판단이다. 실제 선경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최종현 회장은 미래 먹거리로 이동통신 사업을 낙점하고 1984년 미국 미주 경영기획실 산하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해 관련 정보와 기술을 습득했다. 준비를 거듭한 끝에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으나 특혜시비가 일었다. 결국 최종현 회장은 사업권을 스스로 반납하기로 결단했다.
최종현 회장은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내부의 불만을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선경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며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수펙스 추구로 이어진 SKMS는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유공, 한국이동통신, 하이닉스 인수 등 그룹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꼽힌다.
◇일류를 위한 수펙스 추구, 구성원 행복 위한 수단으로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어 1998년 SK그룹의 총수가 된 최태원 회장도 선친의 경영이념을 그대로 승계했다.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수펙스 추구의 첫째 목적이 이윤 극대화였다면, 최태원 회장의 수펙스 추구는 행복 극대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됐다.
구성원의 행복 추구는 SK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일이었다. 최 회장은 구성원들이 행복을 추구할 때 자발적·의욕적 두뇌활용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수펙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봤다. SK가 수펙스 기업이 되면 구성원들이 행복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2020년에는 더 대대적인 보완이 있었다. 경영철학에 '구성원의 지속적 행복'을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반영했고,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사회적 가치로 정의했다. 이해관계자의 범위도 고객·주주·사회·사업 파트너로 확장했다.
구성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SKMS는 SK그룹 기업문화에도 반영됐다. 자유 좌석제, 유연근무제를 일찌감치 도입했고 일부 계열사에 한해서는 부분적으로 주 4일제를 시작했다. 임원 직급제도를 폐지하고 스마트 오피스 도입을 확대하는 등 보다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나서고도 있다. 또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구성원들과 직접 소통하며 행복에 대해 논의하는 행복토크를 100회 넘게 진행하기도 했다.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경영철학에 따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SK그룹 계열사들은 봉사활동, 기부와 같은 사회공헌활동은 물론 사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최근 신기업가정신 선언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최태원 회장의 의지는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내려온 DNA기도 하다. 접근법은 다르지겠지만 기업가는 단지 돈만을 좇아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 최태원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며 선봉에서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라고 말한 최종현 회장은 사회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기업인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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