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8월 16일 08: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핵심은 크림(크름)반도다. 크림반도는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제국, 베네치아 등을 거쳐 키예프 루스, 몽골, 오토만제국의 지배를 받은 후 1774년에 러시아제국 예카타테리나 대제가 오토만을 물리치고 타타르의 독립국으로 만들어주었다. 1783년 흑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에 편입시켰다. 러시아는 1856년에 크림 전쟁에서 패전하기는 했지만 크림반도를 뺏기지는 않았다. 1944년 스탈린이 20만 타타르인들을 내쫓은 이래 우크라이나계와 러시아계 주민들의 거주지다.소련 시절인 195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겼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합류했던 페레야슬라브(Pereiaslav)협정 300주년 기념이었다. 러시아가 그렇게 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몇 가지 가설만 있다. 60년 후인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반러 정치 혼란을 틈타 크림반도를 기습적으로 병합했고 ‘정신 차린’ 우크라이나는 이제 되찾겠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크림반도를 둘러싼 전쟁이 많았던 이유는 지정학적 가치 때문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통해 흑해를 장악할 수 있고 거기서 유전지대 카프카즈 지역과 지중해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정반대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크리미아 전쟁(1853~56)이 일어났다. 2차 대전 때 러시아가 100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지켜낸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는 카프카즈의 관문이고 카프카즈 장악은 중국과의 완충지대인 중앙아시아로 연결된다.
크림반도 땅 자체는 그다지 큰 가치가 없다고 한다. 거의 90%가 강우량이 적고 건조한 스텝기후 지역이어서 농업생산이 미미했다.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기후조건이다. 물 문제가 심각하다. 크림반도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지도를 자세히 보면 육지와 연결된 부분이 대단히 좁다. 물류 환경이 열악한 사실상의 섬이다.
그 대신 외부의 침략이 어려운 반대급부가 있다. 군사 요충지다. 5km 폭의 좁은 통로를 방어하기만 하면 된다. 러시아는 18세기 말에 튀르크를 제압하고 위치와 지형이 거의 완벽한 세바스토폴항을 건설해 흑해함대를 운영해왔다. 2차대전 때 나치가 세바스토폴을 점령하는 데 3만의 병력을 잃고 8개월이 소요되었고 전쟁 말기에 소련이 수복하는데도 한 달 동안 8만 5천의 병력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의 미시시피강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드니프로강은 크림반도에는 도움이 안되었다. 크림반도의 물 문제는 소련 시절 드니프로강 하류와 크림반도 북부를 운하로 연결해서 해결되었다. 물 공급의 85%를 담당한다. 물 문제가 해결된 이후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고 산업시설도 속속 들어섰다. 그러자 러시아는 크림반도 전부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자면 다리 하나로 연결된 크림반도를 육로로 연결해야 한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을 점령해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육지로 연결한 상태다.
2014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가 운하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250만 크림반도 주민들의 생활과 식량 마련에 차질이 발생했다. 농업생산도 90% 감소했다. 2018년에 크림대교가 건설되고 물류에는 숨통이 트였지만 물 문제는 해결이 난망으로 남았다. 급기야 물 배급이 시작되었다. 이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 중 하나다. 러시아군은 침공 후 최우선으로 운하를 점령했다.
최근에 러시아군이 문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군사적인 이유로 운하가 시작되는 카호우카댐을 파괴해서 대재앙을 일으킨 것이다. 1956년에 완공된 카호우카댐은 강에 설치된 6개의 댐 중 가장 하류에 있다. 드니프로강 하류의 생태계가 파괴된 데 더해 크림반도의 수원인 강의 수위 자체가 낮아져 버려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와 크림반도에 다시 물 문제가 발생했다. 댐 파괴행위는 국제법상 전쟁범죄이기도 하다.
크림반도 서쪽에는 상당한 매장량의 해저 유전이 있는데 서방이 개발하면 러시아산 석유 가격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러시아 석유 이권카르텔이 방관할 수 없다. 러시아는 현재 극심한 경제제재 하에 전쟁을 수행하느라 사우디와의 사실상 공조로 전 세계의 유가를 높여 놓았다. 미국의 비축유도 슬슬 바닥이 나고 있어서 인플레와 고금리는 진정될 기미가 없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정부에 모종의 전략이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바스토폴을 러시아가 계속 조차하는 조건으로 크림반도가 독립하는 것을 해법으로 거론한다. 오래전이지만 1991년 크림반도 주민투표에서 94%가 자치공화국 안을 지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제 3자의 생각이다. 2014년 병합 후로 러시아는 거의 백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인들의 정책 이주를 통해 크림반도 굳히기를 해놓았다. 우크라이나도 완전한 승리 없이 이 전쟁을 끝낼 수가 없을 것이다. 양쪽 다 더 이상의 출혈이 없는 어정쩡한 정전도 거론된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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