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중석 여사 16주기, 범현대가 잇는 '정주영 정신' 정주영식 도전정신 산실인 청운동 정주영 명예회장 자택에 범현대가 모여
강용규 기자공개 2023-08-17 10:48:34
이 기사는 2023년 08월 17일 07: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범현대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족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개인적 일정과 상관없이 1년에 2번 한 자리에 모인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기일인 3월21일과 그의 아내 변중석 여사의 기일인 8월17일이다. 이들이 모이는 곳은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택이다.2001년 86세의 나이로 타계한 정주영 명예회장은 그의 반평생에 해당하는 43년을 청운동 자택에서 변중석 여사와 함께 보냈다. 2007년 변중석 여사도 세상을 떠나 이곳은 거주자가 없는 곳이 되었으나 아들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대를 이어 소유하고 있다. 범현대가의 '정주영 정신'은 여전히 계승되는 것이다.
변중석 여사의 16주기 기일을 하루 앞둔 16일 오후 6시쯤 범현대가 일원들이 속속 청운동 정주영 명예회장 자택으로 들어섰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회장, 정몽일 현대미래로그룹 회장 등 정 명예회장의 아들들은 물론이고 장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등도 참석했다.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조카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현장에 나와 기자들의 취재를 도왔다.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자들이 워낙 많이 와서 통제가 힘들었다. 차 바퀴에 발이 깔려 병원으로 실려간 기자도 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격세지감을 느꼈던 것일까. 이날 현장에 나온 기자들은 10명이 채 안 됐다.
청운동 자택에서의 제사는 취재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주요 인사들이 입구의 철문을 10미터가량 지나 자택 대문 앞에서 하차하는 만큼 말을 붙일 기회가 없다. 사실상 사진기자들의 무대이며 글 쓰는 기자, 속칭 펜기자들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날 펜기자들이 기자를 포함해 소수나마 자리한 것은 이 가족모임에 깃든 '정신'을 글로 전달하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범현대가는 2015년 변중석 여사의 8주기부터 2018년 8월 11주기까지 4년간 정 명예회장과 변 여사의 제사를 한남동에 위치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자택에서 치렀다. 장소를 변경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재계에서는 고령인 정몽구 명예회장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청운동 자택으로 다시 장소를 바꾼 것은 정의선 회장이 자택 소유권을 넘겨받은 이후인 2019년 3월부터다. 이 역시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의선 회장이 '정주영 정신'을 더욱 깊이 되새기고자 한다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범현대계열 기업 관계자들은 청운동 자택을 놓고 '이봐, 해봤어?'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로 대표되는 정주영식 도전정신의 산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곳은 단순히 정주영 명예회장이 오래 살았던 곳이 아니다. 그의 다양한 사업적 결단들은 물론이고 정계 진출이나 소떼 방북 등 그가 연출해 낸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모두 청운동 자택에서 결정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매일 새벽 5시에 청운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하고 계동 현대사옥까지 40여분을 아들들과 걸어서 출근했다. 정의선 회장은 이와 같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범현대가 3세이자 옛 현대그룹의 적장자다. 그가 청운동 자택으로 제사 장소를 되돌린 것이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범현대가 경영인들은 정주영식 도전정신을 요구받는다. 특히 국내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과 조선산업을 이끄는 정기선 사장의 경우 더욱 그렇다. 현 시점에서 정의선 회장과 정기선 사장은 코로나19에 이은 신냉전과 인플레이션으로 침체된 한국경제의 반등을 주도하는 핵심 경영인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3년 6월 수출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한민국의 수출은 3073억달러로 전년 상반기보다 12.3% 줄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기존 수출 효자업종의 수출액이 모두 줄어든 가운데 자동차는 전년 동기보다 46.5%, 선박은 11.8%씩 늘며 수출액 증가율 1, 2위 업종에 올랐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친환경차 전환과 차량의 소프트웨어화, 자율주행기술 고도화 등 변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정기선 사장의 HD현대그룹 역시 친환경 스마트선박과 자율주행선박 등의 선박기술 변화를 주도하며 중국 조선업계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도전을 '해 보면서', '시련을 겪더라도 실패는 없어야' 한다.
이날 정의선 회장과 정기선 사장은 같은 차를 타고 청운동 자택에 도착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상을 조문하고 함께 온 것 같다"고 귀띔했다.
두 3세 경영인은 차에서 내려서도 쉬지 않고 대화하며 자택 안으로 들어섰다. 단순히 동선이 같아서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할 이야기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이들의 대화 속에 할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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