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경영수업 중]달라지는 리더상, 변화하는 경영수업①과거 도제식, 근면성실 강조…현재는 글로벌 감각과 다양한 경험 중시
조은아 기자공개 2023-09-18 07:40:30
[편집자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계자를 잘 키워내는 건 수성을 위한 최고의 과제다. 국내 재계 역시 마찬가지다. 창업주 세대부터 현재의 3~4대에 이르기까지 좋은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개인은 물론 그룹 차원에서도 공을 들여왔다.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상이 바뀌면서 경영수업의 양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더벨이 과거 국내 주요 그룹의 경영수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고 현재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2일 08시0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대에 따라 리더십도 바뀌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그룹을 이끄는 총수에게 필요한 덕목 역시 달라지고 있다. 맨손으로 그룹을 일군 창업주, 그를 보좌하며 함께 그룹을 키워낸 2세, 축적한 부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삶을 살아온 3~4세들의 경영관이 다른 것도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여기엔 각각 달랐던 경영수업도 영향을 미쳤다.후대로 내려올수록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받으며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친다. 과거보다 경영수업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요즘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과거처럼 아버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으면서 경영수업을 받는 후계자는 많지 않다. 오히려 경험을 쌓기 위해 일부러 '변방'을 택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장단점은 명확하다. 대가 내려갈수록 핵심사업에 대한 이해도나 그룹 내 장악력은 비슷한 시기 아버지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성과 포용성은 갖출 수 있다.
◇도제식 교육…추진력과 카리스마가 최고 미덕이었던 1~2세대
2세대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도제식'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다. 창업주 특유의 추진력을 바로 옆에서 고스란히 보고 배웠다. 사세 확장 과정에서 카리스마가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기도 했다. 회장님 곁을 늘 지켰던 후계자는 자연스럽게 존재감과 함께 장악력을 키울 수 있었다.
엄하게 자랐다는 것 역시 일종의 미덕으로 통했다.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으로 잘 알려져 있는 현대가가 대표적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매일 새벽 5시 청운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했다. 일찌감치 후계자들에게 근면과 성실을 가르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배경으로 엄격한 가정교육을 꼽는 시각도 많다.
삼성그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학창시절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확실한 건 근면함과 성실함, 튀지 않는 조용함 등 이른바 '인성'에 기반을 둔 가치들이 예전만큼의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글로벌 경험을 비롯한 다양성, 포용성 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경험 중시, 유학은 필수
유학이 필수가 됐다는 점 역시 달라진 점이다. 창업주 세대에겐 현실적으로 해외 유학이 쉽지 않았다. 그룹을 다 키우고 난 뒤 해외대학의 명예박사 등 '간판'을 통해 학업을 향한 열망을 뒤늦게서야 채울 수 있었다. 반면 풍족한 환경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받은 다음 세대들에겐 유학이 필수였다. 3~4세들 대부분은 국내 명문대에서 학사를 마친 뒤 유학길에 올라 해외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 역시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유학을 마치자마자 돌아와 주력 계열사에서 바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구매실에 각각 입사했다. 두 부서 모두 회사의 핵심 조직이다.
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인물로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김 부회장 역시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돼 초창기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뒤 한국에 귀국해 병역 의무를 마치고 28살의 나이에 한화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지금까지 그룹을 떠난 적이 없다.
반면 HD현대그룹의 후계자인 정기선 사장은 김 부회장과 달리 본격적인 경영 행보는 다소 늦게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학군사관)로 군 복무를 마쳤고 동아일보에서 인턴 기자로서의 경험을 쌓기도 했다. 부친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기회로 삼으라며 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지만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하다 현대중공업에 부장으로 재입사했다.
최근엔 김 부회장처럼 바로 그룹에 입사하기보다는 정기선 사장처럼 학업을 마친 뒤 글로벌 시장 경험과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 외국계 투자회사나 컨설팅 회사에 몸담는 사례가 더 많아지는 추세다.
◇더욱 다양해진 경영수업…일부러 '변방' 경험도
최근 들어선 행보들이 더욱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분위기가 그만큼 자유로워진 데다 기업 경영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이 한층 중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남 인근씨는 지주사 SK㈜나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내로라하는 계열사가 아닌 비상장사 SK E&S를 선택했다. 에너지 사업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원 회장의 차녀 민정씨 역시 SK하이닉스에 몸담다가 휴직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역시 학창시절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다양한 경영수업이 종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 역시 달라진 점이다. 일찌감치 언론 대응법 등 미디어 트레이닝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임직원은 물론 대중에게도 과거와 같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한때 나이많은 부하 임원에게 존대말을 쓰는 게 미담처럼 내려오던 시기도 있었지만 요즘은 당연한 일이 됐다.
신사업 발굴이 핵심 역할로 떠올랐다는 점 역시 과거 세대와의 차이점이다. 과거 창업주가 창업, 2세가 수성에 힘썼다면 다음 세대들은 다시 필연적으로 새 먹거리 발굴에 힘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하는 '멘토'들을 따로 두고 있다는 점 역시 달라진 점이다. 김희철 한화임팩트 대표이사 사장은 김동관 부회장의 태양광 멘토로 통한다.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 역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최측근이면서 정기선 사장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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