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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경영수업 중]아버지와 다른 길 걷는 HD현대 정기선 사장④30년 만의 오너 경영 복귀…9년간 속전속결 경영수업

조은아 기자공개 2023-09-22 07:28:48

[편집자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계자를 잘 키워내는 건 수성을 위한 최고의 과제다. 국내 재계 역시 마찬가지다. 창업주 세대부터 현재의 3~4대에 이르기까지 좋은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개인은 물론 그룹 차원에서도 공을 들여왔다.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상이 바뀌면서 경영수업의 양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더벨이 과거 국내 주요 그룹의 경영수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고 현재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9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이 다른 3~4세 오너 경영인들과 가장 다른 점은 아버지와 떨어져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는 점이다. 부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사진)은 오너 2세 가운데 드물게 그룹의 대주주 지위만 유지하면서 '소유하되 경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30대에 현대중공업 회장까지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러났고 이후 정계에 계속 몸담았다.


정 이사장 시절과 비교하면 강산이 세네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만큼 시대의 변화도 컸다. 정 이사장이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의 한마디에 그룹의 최대 계열사 현대중공업의 새 주인으로 낙점됐다면 정 사장은 왜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정 사장 체제로 접어들면서 HD현대그룹은 사실상 오너 경영으로 완전히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복귀의 타당성을 증명해야 할 필요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HD현대그룹이 정기선 사장의 경영수업에 힘을 쏟았던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입사 5년차에 사장 오른 정몽준 이사장

정몽준 이사장의 승계 과정을 살펴보면 보는 눈이 많아진 지금에 와선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정 이사장은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선임됐는데 당시 나이 31세였다. 회사에 입사한 건 1978년으로 5년차에 사장에 올랐다. 초고속 승진이 흔한 오너 2세들 사이에서도 특히 더 파격으로 꼽혔다.

더구나 당시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의 조선사로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컸다. 매출이 현대자동차의 2.5배가 넘었고 포항제철(현 포스코)보다도 많은 돈을 벌었다. 아직 삼성전자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로 매출뿐만 아니라 고용과 수출에서도 국내 최대 수준이었다.

규모를 떠나 정 명예회장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계열사이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이 말그대로 '유에서 무를 창조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소에 즐겨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잘 보여준 곳이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정 이사장이 현대중공업 사장에 오르자 파격적이란 평가가 나온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어느 곳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1년 '신용은 현금처럼 분배할 수 없다'란 책에서 정 이사장에게 현대중공업을 맡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격이 찬찬한 애는 전자를 시키고, 대범하게 해보고 싶어 하는 애는 중공업을 시키고 성격대로 맡기는 거지." 이 한마디에 당시 경영 승계를 둘러싼 시대적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있다.

◇속성으로 경영수업 마친 정기선 사장

정기선 사장은 어떨까. 정 사장은 지난해 3월부터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사실상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경영수업을 대부분 마쳤다고 볼 수 있다.

정 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건 2013년이다.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으나 회사를 떠났고 2013년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재입사했다. 당시 선박영업뿐만 아니라 재무와 기획,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입사 후 대표이사에 오르기까지는 딱 9년이 걸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거칠 곳은 거의 거치며 배울 것도 대부분 배웠다.

특히 가장 중요한 영업 쪽에선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몸담고 있다. 정 사장은 현재 HD현대중공업에서 선박해양영업본부 담당사장도 겸임 중이다. 정 사장은 정몽준 이사장를 건너뛰고 오랜 만에 등장한 오너 경영인이다. 해외 선주사와 관계를 다지는 데 있어 유리한 고지에 올라있다. 다양한 부문을 거치면서도 영업 쪽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계열사 설립을 진두지휘한 경험도 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사장이 직접 선박 개조 및 유지보수 시장의 가능성을 눈여겨 보고 설립을 적극 추진한 곳이다. 아버지와 비교하면 강도높은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다.

정 사장은 여전히 HD현대글로벌서비스에서 경영지원 총괄사장을 맡고 있다. 대표이사에선 내려왔지만 회의에 대부분 참석하며 기업공개(IPO)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정 사장이 경영수업을 다소 혹독하게 받은 이유는 수십년 만의 오너 경영 복귀라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몽준 이사장이 1991년 회사를 떠나고 정기선 사장이 2013년 수석부장으로 회사에 돌아오기까지 HD현대그룹은 20년 이상 완전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다.

자연스럽게 이 기간 회사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회사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시도하는 등 그간의 정적을 깨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정기선 사장의 복귀와 거의 맞물린다.

정 사장 체제에 접어든 이후엔 아예 조선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HD현대그룹으로선 그룹의 대대적 변화와 함께 오랜 만에 등장한 오너 경영인의 경영수업에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초반 행보는 비슷, 역할 늘어난 정기선 사장

입사 이후의 행보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정몽준 이사장 역시 처음엔 전형적인 2세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유학을 떠나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0년 현대중공업 상무이사로 승진했고 1981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상무이사를 겸임했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은 1979년 만들어진 그룹의 참모조직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곳이다. 초고속 승진과 그룹의 핵심 업무 담당이라는 후계자들의 기본 조건을 일찌감치 충족했다.

정 사장은 2001년 연세대 상경대학에 입학했고, 전공으로 경제학을 선택했다. 경제학과로 진학한 건 경제학도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정 이사장은 기업을 슬기롭게 경영하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을 통찰할 수 있는 탄탄한 이론적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사장은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지만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다시 그룹에 복귀한 건 2013년이다. 중간에 잠시 그룹을 떠나 있었지만 이 역시 큰 틀에선 경영수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기회로 삼으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동아일보에서 기자로서의 경험을 쌓았고 유학을 마친 뒤 경영과 기업 전반을 보는 시각을 키우고 인맥을 쌓기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2년가량 근무했다. 이때 맺은 인연으로 그룹에 BCG 출신이 영입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이 오랜 기간 경영과 거리를 뒀던 만큼 멘토도 두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과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이 꼽힌다.

오너 경영인으로서 조선업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할도 한층 많아졌다. 그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HD현대는 자회사 관리 등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경영기획실을 통해 미래 신사업과 관련한 전략 및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기선(오른쪽 첫번째) HD현대 사장,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오른쪽 두번째) 머스크 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오른쪽 네번째) EU 집행위원장 등이 덴마크 코펜하겐 항에서 ‘로라 머스크호’ 명명식을 갖고 선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머스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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