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1월 01일 0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내 4대그룹 오너경영자 중 유일하게 직책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최태원 회장, 정의선 회장, 구광모 회장은 사측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의 총수로 표현한다.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은 작년 5월 서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단독 면담한 이후 영어로 발표할 때 'Hyundai Motor Group'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하지만 삼성은 이 회장을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알린다. 누가 봐도 이 회장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건설·금융 계열사 등 전체를 아우르는 그룹의 회장이다.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처럼 '삼성그룹'은 실존한다. 하지만 직책 표현에 다른 그룹과 차이가 있는 셈이다.
실제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은 공식적인 발표에서도 '그룹'이라는 단어를 자제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런 기조가 생긴 것일까.
삼성전자가 글로벌 고객, 미디어와 소통을 위해 만든 '삼성전자 뉴스룸'이라는 사이트를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언론 보도자료와 사내 홍보자료 등이 공개된다. 삼성그룹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가장 최근으로 나오는 건 2017년 11월 7일 삼성전자 대학생 기자단의 글이다.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자료는 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수원을 비롯한 전국 사업장을 개방하는 행사를 개최했다는 내용에 삼성그룹이 한차례 언급된다. 그 이전에 삼성그룹이 언급된 보도자료는 다수 있다. 뉴스룸 사이트 안에서 삼성그룹이 가장 오래전에 기재된 것은 1998년 1월 25일 배포한 '98 이웃사랑나라사랑 헌혈캠페인' 보도자료다.
왜 삼성은 그룹이라는 단어 사용에 조심스러운 걸까. 보도자료에 삼성그룹이라는 단어가 나온 2016년은 정치적 격변이 발생한 해다. 2017년은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이 해체됐다.
미전실이 사라지던 때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그룹의 해체라는 분석을 쏟아냈다. 지주사 또는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곳이 없는 상황에서 '그룹'이라는 단어는 부담스러운 존재였고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된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삼성은 그룹이라는 표현을 극도로 삼가야 하나'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그룹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까. 사우디 경제사절단에서 봤듯 이 회장은 삼성전자만이 아니라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다른 계열사의 사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다.
최근 재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컨트롤타워 문제와도 연결된다. 미전실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면서 '삼성맨 전체'를 묶을 수 있는 존재의 공백이 생겼다. 이를 메울 수 있는 기구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된다. 사업지원TF가 있지만 금융·건설까지 아우르던 이전과는 다르며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삼성을 감시하는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에서조차 수직적 지분구조 정리가 고난도의 과제라며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인정했다. 법률과 경영학의 전문가가 포진한 준감위는 그간 그 문제에 관해 치열하게 논의했지만 쉽게 풀기 힘든 과제임을 절감한 셈이다. 준감위의 고백을 엄살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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