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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발 해운업 재편]한국 해운업, 글로벌 파고에 흔들린 70년①'최후의 승자' 하림그룹까지…팬오션·HMM 흥망성쇠와 해운업 나비효과

허인혜 기자공개 2023-12-29 08:14:45

[편집자주]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품은 데 이어 HMM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컨테이너선 1위사와 벌크선 1위사가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국내 해운업 70년 역사 이래 가장 큰 해운그룹이 탄생했다. 해운업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하림그룹과의 만남으로 사업간 합종연횡도 전망된다. 글로벌 해운 시장도 변화가 예고된다. 더벨이 국내 해운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새롭게 짜여질 미래를 여러 방면에서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7일 12: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2년 5월 16일에는 부산항에 있던 모든 배가 뱃고동을 울렸다. 지금의 팬오션인 범양상선이 주문한 국내 최초의 1만톤(t)급 이상 대형 상선 '팬 코리아호'가 진수되는 날이었다. 이날 이후 한동안 전국 극장에서 대한뉴스로 이 진수식을 상영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 팬오션은 이 배를 받은 지 1년 만에 선박 건조비가 넘는 돈을 번다.

이때만 해도 5색의 축포로 축하를 받았던 팬오션은 하림그룹의 인수까지 세 번 주인이 바뀐다. 시련은 팬오션만 겪은 게 아니다. 팬오션과 한솥밥을 먹게 될 HMM 역시 흥망성쇠를 거쳐 하림그룹의 품에 안겼다.

시련이 없다면 재편도 없다. 닭고기 전문 기업으로 시작한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그룹을 목전에 두기까지 한국 해운사 70년의 파고가 깊었다. 팬오션과 HMM에 녹아있는 국내 해운업계의 역사를 들여다 본다.

◇호황·고속성장 연료로 '쾌속선' 탔지만

우리나라는 반도지만 북쪽 길이 막혀 섬나라에 가깝다. 바닷길과 하늘길이 아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중에서도 바닷길은 국내 경제를 좌우한다. 국내 수출입 물량의 99%가 바다를 통하기 때문이다.

중요성에 비해 시작은 좀 늦었다. 국내 해운산업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대한해운공사는 1949년 설립됐다. 당시 보유선박은 24척, 규모는 3만8000t(G/T·총 선박중량) 수준이었다. 국내 1위 컨테이너사 HMM의 선복량이 약 8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육박한다. 소박한 출발이었다.

2010년대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HMM
팬오션과 HMM은 1960~1980년대 국내 해운산업의 고도 성장기에 출항한다. 해운사들은 글로벌 시장 호황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재료로 자랐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해운업에 진출하며 규모가 크게 늘었다. 삼미그룹과 쌍용그룹, 국제그룹 등이다. 현대상선(HMM)과 범양상선도 출사표를 냈다. 팬오션이 1966년, HMM이 1976년 출범했다.

1980년대 들어 글로벌 해운불황이 시작됐다. 오일쇼크 여파였다. 정부는 1983년부터 2년간 해운사를 35곳으로 줄이는 대대적인 흡수합병을 주도한다. 팬오션과 HMM은 이때도 살아남았다. 2000년 원유수요가 급증하면서 30년 만에 찾아온 정점을 만난다. 5대 해운사로 불린 현대상선, 한진해운, 범양상선, SK해운, 조양상선 모두 창사 이래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다.

호황기는 2005년까지 이어진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지며 운임이 폭락하고 물량이 뚝 떨어졌다. 1980년대 찾아온 글로벌 해운 불황과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위기까지 10년 주기로 찾아온 불행의 여파는 나비효과가 돼 현재의 해운사 지형도를 만든다.

◇'나비효과'된 한진해운 파산·STX그룹 해체

기업의 운명은 산업의 명운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해운사들은 풍랑에 따라 쾌속으로 달리기도, 흔들리기도 하는 배의 운명을 닮았다. 바닷길이 늘 평화롭지만은 않듯 난파선이 된 해운사도 있다.

몰락한 해운사들은 팬오션과 HMM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HMM은 국내 1위 해운사 자리를 꿰차게 됐다. 팬오션은 1980년대 해운업계 불황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두 번의 손바뀜을 겪는다.

해운산업의 역사로 불렸던 한진해운은 글로벌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한진해운의 출범은 1977년이지만 1988년 대한해운공사를 합병해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긴 해운사로 꼽힌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국내 최초 컨테이너선사로 설립했다. 중동항로와 북미 서안, 동안항로를 개척하고 국내 1위, 세계 7위까지 오를 만큼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7년 청산절차에 돌입했다. 조양호 선대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아 재건을 꿈꿨지만 역부족이었다.

파산 전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사진=한진해운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 강덕수 전 회장의 STX그룹 해체도 아쉬운 역사다. 2001년 쌍용중공업을 사들여 STX그룹을 일으킨 뒤 대동조선과 팬오션 등을 인수해 10년 만에 재계순위 10위권으로 키웠다. 그러나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글로벌 위기가 발목을 잡아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4년 해체를 맞았다.

◇'최종 승자' 하림 품에 안긴 HMM과 팬오션

주인은 바뀌었지만 명맥은 이어졌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국내 1위를 차지한다. 팬오션과 HMM이다. 그리고 이 두 기업을 품은 곳이자 우여곡절 속 최종 승자는 하림그룹이다. 해운업 역사 70년 만에 가장 큰 해운기업의 탄생이다.

팬오션의 불행은 1980년대 해운업계 불황으로부터 출발한다. 정부의 해운사 통폐합 과정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부실 해운사 여섯 곳을 인수했다. 이때부터 부실 채무가 쌓여갔다. 1987년 오너 리스크까지 불거지자 결국 사세가 기운다.

이때부터 외환은행의 관리를 받았던 팬오션은 1992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10년간 구조조정을 단행해 2002년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2004년 STX그룹에 인수되며 사명을 범양상선에서 STX팬오션으로 바꿨다.

STX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팬오션 매각을 추진했으나 불발됐고 법정관리를 거쳐 흑자전환한 뒤 재매각에 도전했다. 2014년 11월 하림그룹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한다. 1조600억원의 입찰가를 써낸 하림그룹은 단독 입찰자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이듬해 2월 본계약을 체결하며 하림그룹의 첫 번째 해운사가 됐다.

STX팬오션 당시 벌크선. 사진=팬오션
하림그룹은 이달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인수가로 6조4000억원을 제시했다.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하림그룹은 벌크선사 1위 팬오션에 이어 컨테이너선사 1위인 HMM까지 품게 된다.

HMM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해운업 침체로 2016년 채권단 관리 체제로 전환된 바 있다. 관리 체제 아래서도 성장은 계속해 왔다. 2020년 사명을 현대상선에서 HMM으로 바꾼 뒤 선복량 72만TEU를 기록하며 글로벌 선사 8위에 랭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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