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05일 09: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911 이전에 미국이 외부의 공격을 받은 적이 한 번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이다. 2334명이 전사했고 민간인도 103명 희생되었다. 미국은 이날을 ‘치욕의 날’로 규정하고 태평양전쟁을 시작했다.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진 사건이다.영화도 많지만 도대체 일본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흔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격으로 이해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물론 한국, 대만, 만주를 찬탈했던 당시 일본 정부와 군부는 제국주의의 맛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 원폭을 얻어맞고 무조건 항복을 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게 된 이유는 나름 있었다.
모든 것은 일본의 중국 침략인 중일전쟁(1937~1945)에서 시작된다. 일본은 거대 중국을 침략해서 전쟁을 벌일만한 보급 능력이 없었다. 일본은 원래 모든 것이 부족한 나라다. 전쟁 물자인 석유, 철강, 석탄 등 자원을 외부에서 수입해서 썼다. 특히 일본은 석유 사용량의 94%를 만주, 영국령 태국,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국에서 수탈 또는 수입했다. 수입 물량 중 무려 80%가 1차 대전 후 불간섭 원칙과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던 미국에서 왔다. 그런데 일본이 나치독일과 동맹을 맺었고 미국은 일본에 자원 수출을 중단했다. 일본이 중국의 보급선을 끊기 위해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합의하에 베트남을 침공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은 우선 소련, 몽골과 전쟁을 벌였다.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은 부족한 물자를 동남아에서 조달하기로 마음먹고 베트남 전체를 장악했다. 그러자 미국은 석유 수출을 중단하고 미국 내에 있는 모든 일본 자산도 동결해버렸다. 영국(말레이시아)과 네덜란드(인도네시아)도 동남아 석유 금수 조치를 취했다. 필요량의 94%에 달하는 석유가 조달 불능이 된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미국은 일본에게 중국으로부터 즉각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일본도 미국과 전쟁을 하는 부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미국의 해군력을 무력화 시키는 전략으로 시간을 벌어 동남아 전역을 장악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한번 해 볼만해 질 것으로 생각했다. 끝까지 싸워서 미국을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기정사실을 배경으로 버티면 미국이 할 수 없이 물러날 것으로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진주만 공습과 거의 동시에 일본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뉴기니제도, 솔로몬제도, 필리핀, 괌을 침공해 점령했다. 미국 석유가 없어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을 잘 못 알았다.
일본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진주만이 소환된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의 미국 기업 인수때 그랬는데 미쓰비시가 록펠러그룹을 인수하고 소니는 컬럼비아영화사를 인수했다. 그때부터 외국기업의 미국기업 인수를 엄격하게 심사하는 엑슨플로리오법이 다시 활성화 되었다. 오바마행정부때 중국 FGC의 독일 반도체 제조사 아익스트론의 미국 내 영업 인수가 금지당했고 트럼프행정부때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시도가 불발로 돌아갔다. 민주, 공화 구별이 없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2023년 12월에는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기로 해 미국 정부가 심사 중이다. 일본제철은 중국 회사들과 유럽의 아르셀로미탈에 이은 조강 생산능력 글로벌 4위의 제철회사다. 포스코는 7위다. US스틸은 한때 세계 최대의 기업이었다. 애플이 역사상 최초의 시총 1조 달러짜리 회사이듯이 US스틸은 역사상 최초의 시총 10억 달러짜리 회사였다.
US스틸은 지금은 미국 내에서도 3위에 불과하지만 역사적 상징성이 있고 특히 진주만을 연상시키는 일본 기업의 인수라는 점에서 미국 내 저항을 일으켰다. 일부에서 국가안보 차원의 우려와 노조원들에 대한 차별대우 위험을 놓고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 주로 반대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일본은 예외로 취급된다. 이른바 프렌드쇼어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본제철은 규모를 키워갈 것이다.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해서 건설했던 우리의 포스코는 국가기간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소유분산기업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그 역사와 포스코 공장들이 아직도 국가보안시설이라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위상과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포스코는 최근 전형적인 민간기업에서 볼 수 있는 지배구조 문제에 휩싸여 역사적 정체성을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신지정학, 신중상주의 시대에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수은 공급망 펀드 출자사업 'IMM·한투·코스톤·파라투스' 선정
- 마크 로완 아폴로 회장 "제조업 르네상스 도래, 사모 크레딧 성장 지속"
- [IR Briefing]벡트, 2030년 5000억 매출 목표
- [i-point]'기술 드라이브' 신성이엔지, 올해 특허 취득 11건
- "최고가 거래 싹쓸이, 트로피에셋 자문 역량 '압도적'"
- KCGI대체운용, 투자운용4본부 신설…사세 확장
- 이지스운용, 상장리츠 투자 '그린ON1호' 조성
- 아이온운용, 부동산팀 구성…다각화 나선다
- 메리츠대체운용, 시흥2지구 개발 PF 펀드 '속전속결'
- 삼성SDS 급반등 두각…피어그룹 부담 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