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22일 07시2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별 후 이유를 곱씹느라 베갯잇이 젖는 기억이 누구에겐들 없을까. 연인 간의 헤어짐이 아니라도 딴에는 가까웠다고 여겼던 상대와의 이별은 늘 양가감정을 낳는다. 자기반성과 원망이다. 나는 왜 거기서 그런 말을 해서, 걔는 왜 그것도 이해를 못 해주고….혼자 지킬이 되었다가, 하이드가 되었다가 하다 보면 깨진 인연은 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남는다. 늘 다짐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경험해 본 갈등과 그렇지 못한 일은 대처할 때의 태도부터 가른다. 그래서 적당히 나쁜 일은 미리 겪어보는 게 낫기도 했다. 반대로 그 과정이 괴로워서 그냥 묻었던 이별은 다음에도 원인으로 불쑥불쑥 찾아왔다.
요지는 이별을 하더라도 왜 그랬는지를 따져보면 남는 점이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헤어짐도 그런데 기업과 기업 사이 이별은 말할 것도 없다. HMM과 하림의 이야기다.
최종 계약이 없었다지만 인연이 성사되려는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과 인력이 적지 않았다. 다른 시장 참여자들은 모르는 둘만의 속내도 서로 보여줬을 테다.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안된 이유를 돌아봐야 하는 사유는 차고 넘친다.
이별의 배경은 제각각이라지만 결국 입장차이가 원인이다. HMM과 하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모두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꿨다. 하림은 꽤 많은 걸 포기했다. 예를 들면 잔여 영구채의 처분이다. 정부 채권단은 2025년까지 보유 영구채를 주식으로 바꾸고자 했다. 지분율 하락이 예정됐고 수천억원 규모의 배당금도 포기해야 했다. 하림은 받아들였다.
채권단이 바라는 항목은 더 많았다. 일부러 어깃장을 놓지는 않았겠으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무리한 요구도 있었다. 경영권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정부 채권단은 매각 후에도 중요한 경영 사항은 같이 논의하기를 바랐다. 재무적 투자자(FI)인 JKL파트너스의 5년 내 엑시트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협상 테이블을 떠난 하림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 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하림이 적임자라 아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부터 걸림돌로 언급됐던 하림의 규모도 문제고 채권단이 더 보수적인 주장을 한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이만저만한 사유를 다 따져보더라도 매각의 조건은 기업에게 퍽 불리했다. 일각에서는 해진공의 존재 이유 등을 근거로 '팔기 싫었나'라는 추론까지 내놨다.
10대그룹만이 조건에 부합한다고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아직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주변에서 부채질을 하는데도 한사코 손사래만 친다. HMM의 매력이든, 매각의 조건이든 어느쪽도 확실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테이블에 남은 건 채권단이다. 다음 인연을 만나기 전 이별의 교훈을 다시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의지가 없다'는 오해를 또 듣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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