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하는 가족신탁]연금도 상속도 어렵다…손발묶인 주택신탁④법인은 주택연금 신청 불가능…'채무신탁' 문턱에 상속도 어려워
황원지 기자공개 2024-06-21 08:28:03
[편집자주]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 되면서 가족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1년에 1조원이 넘는 속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신규 진출을 선언한 금융기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 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법안 개정이 이뤄지면 성장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벨은 국내 가족신탁 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법안 개정에 따른 방향성을 가늠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19일 07:30 theWM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속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주택이다. 작년 말 한국의 전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64%에 달한다. 미국 29%, 일본 37%와 비교하면 부동산 쏠림 현상이 강하다. 초고령화 시대 상속에서 주택신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하지만 실무에서 주택신탁은 활용도가 높지 않다. 개인만 가입할 수 있게 한 주택금융공사법에 막혀 주택연금과 동시에 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채무신탁도 막혀있어 주택신탁을 통해 상속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주택연금과 동시 가입 불가능...소비자 선택권 제한
주택신탁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주택연금과의 동시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은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활성화되고 있는 제도다. 보유한 주택을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맡기고 이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매달 월지급금을 받는 것이다. 부동산만 있고 사용할 현금이 없는 고령층이 사용하기 좋다. 국내 주택연금 누적 가입건수는 올해 4월 기준 12만6000명으로 매년 1만명 넘게 늘어나고 있다.
현행법상 주택연금과 주택신탁은 함께 활용이 불가능하다. 주택금융공사법에서 개인이 소유한 주택만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주택을 상속하면 법인인 신탁사가 소유자가 된다.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한 후에는 주택연금 활용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문제는 두 상품의 수요층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보통 고령층이 주택을 포함한 금전 등 모든 재산에 대한 상속 플랜을 짤 때 유언대용신탁을 사용한다. 하지만 주택연금에 가입할 계획이 있다면 주택은 신탁에서 제외해야 한다. 굳이 상속에 유언대용신탁을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떨어지게 된다.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한된 상태다.
재작년 정부가 신탁방식 주택연금을 허용했지만 소비자 불편은 여전하다. 2022년 10월 정부는 주택연금의 형태로 기존의 근저당방식 외에 신탁방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연금 신청자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가 연금을 보다 수월하게 상속받을 수 있고, 해당 주택에 대해 임대차가 가능하도록 허용한 셈이다. 하지만 이 방식 또한 주택신탁과 함께 가입할 수 없어 선택권이 제한된다.
2023년 10월 정부는 신탁업 혁신방안에서 신탁된 주택의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초 법안 개정이 무산되면서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주담대는 신탁 안돼…현실적으로 상속에 활용 어려워
또 다른 문제는 주택신탁을 실제 상속에 활용할 때 발생한다. 현재 유언대용신탁을 통한 주택 상속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주택이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신탁법에 따르면 신탁에 담을 수 있는 자산은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지상권·전세권·그 밖의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까지 7개로 제한된다.
이중 채무권 및 담보권은 없다. 현행법상 주택담보대출은 신탁이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실무적으로 주택신탁 활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예를 들어 아들을 두명 둔 부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부모는 10억원짜리 아파트를 5억원 대출을 낀 채로 첫째 아들에게 상속하려 주택신탁에 가입했다. 10억원의 자산인 아파트는 신탁을 통해 상속이 가능하다. 하지만 5억원의 채무는 신탁이 담을 수 없으므로 법정 상속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문제는 법정 상속에서는 상속인인 둘째 아들이 동의해야만 상속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채무 상속시 균분 상속이 원칙이다. 둘째 아들이 첫째 아들만 상속받는 것에 반대해 동의를 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법정 싸움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사후에 정확한 집행이 보장된다는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장점이 없어지는 것이다. 법정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수수료가 없는 유언장을 활용하는 게 낫다.
박현정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장은 “주택신탁이 가능하긴 하지만, 주담대 비율이 높은 현실을 고려하면 상속 때 문제가 생길 경우가 많다”며 “이에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신탁업 혁신방안에서 채무권 신탁을 허용해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개정이 안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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